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백제는 어떤 나라인가?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오늘날과 어떻게 다른가? 그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세계가 ‘금동대향로’ 안에 들어 있다. 그 향 줄기가 하늘에 닿을 때 우리는 알 수 있으리라. 하늘을 숭배하고 하늘을 닮고자 했던 우리 정신문화의 원형이 백제를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지속되었던 한민족문화의 고유한 원형들이 대부분 형성되었던 시기가 바로 삼국시대이기에 백제인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백제사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 문화사에 한 획을 긋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 당시에 갖고 있었던 우주관으로 표현된 소우주, 문화예술, 종교, 대외관계 등 백제시대 문화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백제금동대향로는 다양한 상징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왕을 상징하는 봉황, 백제 귀족을 상징하는 5악사, 백성을 상징하는 기러기 등이 그것이다. 기러기가 왜 백성을 상징하는 지는 기록에 나와 있다. 『삼국사기』권 제23 「백제본기」제1 온조왕 43년조(서기 25년)의 기록에는,

“9월에 1백여 마리의 기러기(鴻雁)가 왕궁에 모였다. 일관이 말하기를,
기러기는 백성의 상징이므로, 장차 먼 곳에서 귀순하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되어 있다. 고향을 버리고 남하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철따라 이동하는 기러기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또 5악사는 5부체제의 5부 귀족 또는 5부족을 상징한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을 중심으로 한 5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등의 상징체계는 음악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고대에는 제천의식이나 왕의 행차에는 물론 전쟁이나 수렵 활동을 할 때도 음악을 연주했다. 이는 소리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고대 정치의 이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가 5부 체제를 봉황과 5악사, 기러기의 가무 형태로 표현한 것은 백제인들의 정치적인 이상이 하늘의 질서에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천신을 맞아 함께 제례를 지내며 가무를 하는 동안 왕과 신, 그리고 귀족과 백성들 모두 하나가 된다. 즉 하늘로 피어오르는 한 줄기 향 연기를 통해 신과 인간, 왕과 백성, 귀족과 평민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한데 어울려 사는 조화로운 세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약 1,400년 전 백제시대가 단군왕검의 건국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대 국가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성수 체계를 갖고 있어 각종 상징물의 조형원리 등으로 삼았다. 백제의 경우 행정기구였던 5부와 5방, 대표하는 조형물인 정림사지 5층 석탑 등으로 볼 때 성수는 5의 체계에 든다. 이것이 바로 향로 속에 담긴 숫자 5의 상징성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5명의 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5개의 봉우리 등으로 구성됨으로써 백제의 고유한 5부체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향이 피어 오르는 구멍이 앞 뒤로 각각 5개씩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고, 5개의 음을 안다는 봉황에 이르기까지 향로 속 주요 조형물들은 숫자 5와 많은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숫자 ‘5’의 상징체계는 백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이념이자 세계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꼭지 정상에는 한 마리의 봉황이 턱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힘차게 날아오르려는 자세로 서 있다. 꼭지 밑의 뚜껑은 중첩된 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4~5단의 41곳의 능선을 가진 산과 33곳의 삼산형의 봉우리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 16명의 인물상과 39마리의 동물들이 곳곳에 위치해 생동감을 주고 있다. 5개의 산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 산 꼭대기에는 기러기 모양을 한 원앙새가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하늘로 오르려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산봉우리 곳곳마다 나무와 바위, 산길과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낙하하는 폭포의 물줄기, 잔잔한 물결의 파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호수가 펼쳐진다. 여기 동물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못해 이채롭기까지 하다. 동물들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호랑이, 사자, 사슴, 원숭이, 멧돼지는 물론 봉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도 함께 표현되어 있어 신화적인 요소도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뚜껑 아랫부분인 몸통은 연꽃잎이 8개씩 총 3단으로 되어 있고, 각 연꽃의 중앙과 연꽃잎 사이사이에 인물상과 사슴, 학, 물고기 등으로 추정되는 각양각색의 동물상 26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가장 밑 부분인 받침은 한 마리의 용이 우주의 기운을 받고 힘차게 승천하려는 모양을 하고 있다. 세 개의 다리는 바닥을 딛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다리 하나는 위로 치켜 올린 채 목을 곧추세우고 향로의 몸체를 이루는 연꽃의 줄기를 입으로 문 채 떠받들고 있다.

여기서 봉황은 천계, 즉 하늘을 상징하고,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선인을 의미하는데, 고조선 이후부터 이처럼 깨달은 선인들이 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였다. 『삼국사기』기록에도 단군왕검을 선인왕검이라고 하여 단군을 선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백제도 그 전통을 그대로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첩된 산의 이미지는 ‘첩첩산중’, 즉 ‘심심산천’을 의미하고, 5악사와 그 중심에 서 있는 봉황은 신선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당시 최고의 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도라지타령’에 나오는 ‘백도라지(白道)’ 즉 ‘선도(仙道)’ 이야기와도 의미가 상통하는 내용이다.

여의주는 새, 악기, 향의 조화를 상징하고, 3층의 봉우리, 3층의 연꽃, 세 발을 땅에 뿌리를 둔 용 등을 본다면 이것은 분명 전통적인 삼수 체계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고유한 ‘천지인’ 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는 하늘의 전령사로, 봉황은 솟대 문화와도 연관성이 있다. 연못은 인간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신선들을 고대에는 선인들이라 불렀고 단군도 선인이었다.

상징체계를 통해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거기에 당시의 다양한 문화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에 따라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은 다른 왕족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개로왕은 전세가 불리해 지자 왕으로서 마지막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 결단은 왕인 본인은 도성에 끝까지 남아 싸우기로 했고, 태자(문주왕)만큼은 도성 밖으로 내 보내 훗날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그나마 이것이 개로왕을 역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개로왕 이후 백제의 역사는 문주왕 때부터 웅진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64년 동안의 웅진 시대에는 백제 왕실의 비극이 연이어 일어났다. 나라 안팎의 총체적 위기에 맞닥뜨린 성왕은 버려진 땅, 사비로의 천도를 결정한다. 이것은 최초의 신도시 개발 계획이었다. 거기에는 백제의 혼과 백제인들의 꿈이 서려 있었다.

거대한 대륙을 무대로 웅대한 기마 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고구려, 그리고 화려하고 국제적인 문화를 자랑하며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이에 비해 백제는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한반도에서 사라진 비운의 국가이며, 문화적으로도 후세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작은 나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다시 내려져야 한다. 20세기 위대한 고고학적 발굴인 무령왕릉이 그렇게 세상 속에 드러났고, 그 후에도 금속공예 작품의 최고라 할 만한 금동대향로,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 장엄구, 백제인의 미소라고 일컫는 서산 마애삼존불 등에서 보인 백제의 기상은 작은 나라가 아닌 ‘큰 나라’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 사라진 백제의 혼과 백제인의 꿈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백제를 두고 ‘잃어버린 나라’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백제가 삼국 중 가장 먼저 패망하면서 역사 인식이 폄하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에 남아있는 유적이 거의 없어 주변국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어 있는 부분도 상당하다.

그래서 고구려,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폄하된 백제,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백제가 후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작은 나라라는 우리 스스로의 인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주변국들의 역사왜곡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주변국에 많은 유물, 유적이 있는 백제를 향한 잘못된 외침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백제를 향한 올바른 역사적 인식 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큰 나라 백제의 위대한 역사가 제대로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빛은 우리를 환하게 비춰 주게 될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멈추지 않고 오늘로 흐른다. 그래서 역사는 강물처럼 흐른다고 한다. 물은 수용도 하지만 집어 삼키기도 한다. 역사를 어떻게 수용하고 인식해야 될 것인지는 오로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역사에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국학을 통해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목적이기도 하다.

 

 
민성욱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