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 발간한 연구서가 일제 식민사관을 담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를 통해 발간한 연구서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역사연구와 독립운동단체들은 지난달 19일 식민사학 해체국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이 단체는 재단이 10억 원을 지원한 연구서에 한사군의 한반도 북부 위치설 등 일제 조선사편수회 시각이 그대로 반영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단은 뒤늦게 상고사연구를 활성화하겠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 역사공정이나 일본 교과서 왜곡 등 주변국과의 역사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오히려 집안 내 역사 갈등이 벌어졌다.

▲ 정형욱 아주대 교수
이에 대해 정형욱 아주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중 역사갈등에 대응하는 한국전략 비판(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선도문화16권)> 논문에서 이러한 갈등의 원인을 한국역사학계 내부에서 찾고 있어 주목된다. 주류사학파와 비주류사학파가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두 학파를 나누는 기준으로 고조선에 둔다. 주류사학파 대부였던 이병도는 한민족 고대역사활동의 영역을 한반도 내부로 축소했다. 이병도는 그의 일본 스승들처럼 고조선 이후에 등장한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설정했다. 이는 2세대 주류학파(서영수, 이기백, 노태돈, 김정배) 뿐만이 아니라 3세대 주류학파(오강원, 송호정, 오영찬)에 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정 교수는 “중국학계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한국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이 주류학파의 통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라며 “한사군에 관한 쟁점에 대해서도 식민사학의 견해를 상당 부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국 역사공정의 핵심정책이 한민족 활동무대를 한반도 남부로 밀어내 보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묘하게도 중국의 의도가 일본의 식민사관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라며 “한사군과 같은 중국식민지의 지배권은 이 지역에 일어나는 국가들에 대한 역사적 정통성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고조선의 중심위치와 한사군의 위치설정은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 강역에 대해 주류학파와 비주류학파의 지도가 다르다. 왼쪽은 비주류학파의 고조선 지도이다. 정형욱 교수는 “A지역은 비주류학파가 비정한 초기고조선의 영역과 세력권으로 주류학파가 주장하는 B지역에 비해서 그 영역의 폭이 상당히 크다”고 밝혔다. 오른쪽은 주류학파의 고조선 세력범위다. 정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된 공식적인 고조선의 영역지도이다. 주류학파의 학설로 반영하고 있다. 요서지역보다 요동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자료=정형욱 교수 제공)

반면 1980년 윤내현 이후 등장한 비주류학파는 우리 고대사의 시작과 초기 중심영역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부 중국과 내몽골을 포함한 요서지역에서 전개됐다고 주장한다. 비주류학파 학자로는 이형구, 복기대, 우실하, 박선희 등이 있다.

이들은 홍산문화 이후에 등장하는 하가점하층문화로 대표되는 요서지역의 청동기문화에 주목했다. 비파형동검, 적석총, 고인돌, 다뉴세문경 등 요동과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통해 이 지역의 문화가 고조선의 초기 문화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비주류학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문화요소를 보면 초원지대의 유목문화, 중원지역의 이주민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간단하게 한민족 문화의 전신으로 볼 수 없다는 주류학파의 반론을 실었다.

문제는 두 학파의 갈등 속에서 중국 역사공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하문명이 중국문명의 뿌리라는 이론이 굳어질수록 고조선까지 그들의 지류가 된다. 이는 한민족을 중화문명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정 교수는 “주류학파는 요하문명이 고조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에서 거의 방관하고 있다”라며 “주류학파의 통설을 수용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중국정부와의 협상과정에서 밀릴 수 있는 단초를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등재학술지 <선도문화> 16권
정 교수는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에 대한 고조선사를 중심으로 역사 논리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중국 식민지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학파는 비주류학파의 새로운 주장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비주류학파 또한 주류학파의 담론을 무조건 경시할 것이 아니다. 융통성 있게 융합할 때라고 정 교수는 주장했다.

정 교수는 “초기 고조선사에 관한 담론은 비주류학파가 강점이 있고 후기 고조선에 대한 담론은 주류학파의 담론이 설득력이 있다”라며 “정부가 두 학파의 담론을 동시에 수용해서 새로운 고대사 패러다임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3일 코리안스리핏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이 문제(주류와 비주류)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발표한 글이 없었다”라며 “양쪽의 논리에 대해 객관적으로 비교해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등재학술지 게재에 대해) 학문적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다”라며 “학계에서 토론하고 담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선도문화 16권>에는 정 교수 외에 9편 연구논문이 수록됐다.

▲5세기 후반 신라 사상계와 ‘나얼 (奈乙, 蘿井) 신궁神宮’ 건립(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의 ‘신성(神性)’ 개념과 신경과학적 접근을 통한 ‘신성 인식’에 관한 시론(試論)적 이해(이승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대종교 경전으로 본『환단고기(桓檀古記)』진위(眞僞) 문제(이근철 경기대학교), ▲고조선의 도읍지, 건국(建國) 년도, 국호 등에 관한 고찰(김진경 부경대학교), ▲상상과 유추를 통한 문학치료의 성취 배정순 경북대학교), ▲영가무도에 대한 문헌고찰 및 대체의학에서의 연구방향 정유창·김영희 경기대학교), ▲『정역正易』에서 본 ‘윷놀이’의 역학적易學的 의미(임병학 충남대학교)▲ 안중근의 종교사상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