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탄다.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으며 복잡한 생각을 하나둘 내려 놓는다. 온몸으로 거친 호흡을 느끼며 자신 속으로 녹아든다. 아리랑 고개 넘듯 산 중턱을 넘어갈 때면, 삶의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일깨운다. 걸음을 내딛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이 뼈에 사무치듯 전율한다. 정상에 서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나의 생명이 약동하는 찰나, 그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니까.

산과 내가 하나 되어 걷다 보면, 무릇 산행이 곧 우리네 인생길과 닮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산에는 세상 만물을 품은 듯 인생에 달관한 인자(仁子)의 기운이 서려 있다. 그래서 산길을 걷다 보면 자신도 인자처럼 절로 마음이 열리고 넓어진다. 산의 덕을 빌어 마음의 묵은 찌꺼기들을 덜어내기도 한다. ‘자연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는 옛말도 아마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 지난달 7일 일본호흡명상동호인 100여 명이 서귀포시에 있는 군산오름을 찾아 자연명상을 했다.

“자연 속에 들어오면 명상이 잘 됩니다. 지금부터 산 정상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산을 탈 때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첫째 침묵,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느끼기입니다. 우리 뇌는 느끼면 생각을 그칩니다. 그러면 감각이 열립니다. 걸으면서 산길에 닿는 발바닥을 느껴보세요. 바람이 볼을 스치면 바람도 느끼세요. 여러분이 가장 느끼기 쉬운 것을 느끼는 겁니다.”

지난달 7일 서귀포시에 있는 군산오름에서 자연명상 트레이너로 나선 권영주 교수(국제종합뇌교육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가 일본호흡명상동호인 100여 명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제주에 와서 처음 갖는 자연명상 시간, 본격적인 명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연을 느끼며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했다. 산 내음을 맡으며 흙길의 감촉을 느끼는 것부터가 명상의 시작이었다.

▲ 자연명상의 기본은 생각을 멈추고 자연을 느끼며 걷는 것이다. 자연을 느끼다 보면 순수한 마음이 열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

군산오름은 제주 360여 개의 오름 중 유일한 숫오름이다. 해발 334.5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백두산 천지보다 열 배 강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감도는 볼텍스 장소이다. 굴메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은 남쪽 해안가의 산방산과 함께 남제주군의 대표적인 오름이다. 오래전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상예공동묘지가 마련되는 등 많은 묘지가 들어섰을 정도다.

이날 자연명상은 군산 산책로에서 오름 정상까지 한 시간 남짓 산행, 정상에서의 명상 시간으로 진행됐다. 산에 올라갈수록 꽃샘추위를 날려버릴 만큼 체온과 마음의 열기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걸음을 멈추고 산 중턱에서 숨을 돌릴 때면 겨울 막바지의 칼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다다른 정상에서 보는 제주의 넓은 앞바다에 막힌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만만찮은 추위와 바람을 명상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 같은 시간이 오름 정상에서 이어졌다. 권 교수는 간단한 기체조로 일본 동호회원들과 함께 굳은 몸을 푼 후 바람명상으로 들어갔다. 제주에 많은 것 3가지 중 하나인 바람은 화산섬인 제주 자연의 특징이기도 했다. 

▲ 군산오름은 제주 유일의 숫오름으로, 명당으로 불릴 만큼 기운이 강력한 곳이다.

“아이~ 시원하다~! 바람을 받아들이세요. 춥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원하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볼에 시원한 공기가 와 닿고 있습니다. 바람이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바람결에 모든 걱정과 고민, 집착을 놓아버리세요. 원망도 분노도 집착이에요. 내 마음이 그것을 꽉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바람에 실려 보내세요. 나는 나의 주인이에요. 나는 선택할 수 있어요. 잡생각이 나면 다시 바람을 느끼세요.”

권 교수는 바람명상으로 회원들을 안내했다. 바람으로 가슴에 쌓인 무거운 감정 에너지들을 정화하는 내면의 청소시간이었다. 이어 웃음 수련, 에너지 느끼기, 자기 사랑하기, 일본에 생명 에너지 보내기 등의 명상을 통해 밝은 자신을 되찾는 시간이 마련됐다. 그는 “자연은 순수한 생명에너지다. 자연에 오면 감각이 열린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명상하는 진짜 이유는 몸과 에너지, 순수한 마음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생각이 그치면 생명력이 살아나면서 마음이 열립니다. 순수한 마음이 되었을 때 순수한 생명에너지와 교류하며 자기성찰을 할 수 있어요. 이것을 메타인지(Meta Cognition)라고도 하죠. 자기를 바라보는 힘이 커지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도 생깁니다. 그 힘을 깨우는 것이 바로 뇌교육 명상의 특징입니다.”

▲ 일본호흡명상동호인들이 바람을 느끼며 에너지 명상을 하고 있다(위쪽). 자신의 몸을 두 팔로 안으며 자기를 사랑하는 시간도 가졌다(아래쪽).

이날 자연명상을 체험한 타마다 루리 씨(신나가타 거주)는 “바람, 눈 등 제주의 다양한 자연 모습에 놀랐다”며 “산을 탈 때 다리 감각에 집중했다. 한 발짝씩 집중하면서 걸으니까 에너지가 느껴졌다. 대지와 교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아울러 “일상에서는 생각이 많고 걱정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자주 올라오는데, 명상하면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람명상으로 삶의 무게를 덜어낸 일본호흡명상동호인들의 표정과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져 있었다. 풀린 이들의 마음만큼 하산길 날씨도 풀려 따뜻함이 감돌고 있었다. 봄기운을 타고 피어난 노란 유채꽃처럼 이들의 마음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을 돌아봄으로 인생의 진정한 봄을 일구는 제주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 하산길 길가에 핀 제주 유채꽃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다음 주 4편에서는 세계적 명상가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과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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