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 동상(사진=박성수 명예교수)

다산의 실학정신 속에 깊고 따스한 인본주의가 깔려 있다. 며칠 전 신문에 실직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재취직의 문을 두들기는 광경을 보았다. 즉시 조선시대의 흉년 때와 같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있는데 춘궁기를 보릿고개라 하여 풀을 뜯어 먹은 것이다. 특히 흉년 이듬해 봄이 되면 굶주림이 심했다. 그럴 때면 농촌에서는 초근목피로 연명하게 되었는데, 초근목피의 종류가 150여 종에 달했다. 보릿고개와 초근목피의 슬픈 역사는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니 공복시대에서 오늘과 같은 포식시대飽食時代로 접어든 것은 불과 50여 년밖에 안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설마 이렇게 일찍이 실업자시대가 다가올지 몰랐다. 그러나 줄을 선 실업자의 사진은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열 번째 가는 경제대국이라 자랑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실속을 들여다보면 자살률이 세계 제1위요,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중국 다음인 세계 제2위라고 하니 이런 말을 듣고 선진국 운운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이 강남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길을 걸어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 폰을 켜고 다니는 것을 카메라로 찍고 한국인의 독서량은 1년에 단 8페이지라고 조롱하였다.

이런 나라에서 무엇보다도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홍익인간 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또 잊은 것이 있다. 애국심이다. 1910년 을사늑약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이었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선 사람의 수가 1,500만이었다. 이 통계는 침략자 일제가 낸 숫자이며 이 사실은 증언한 분이 한국의 양심 매천 황현이었으니 틀림없는 통계 숫자이다. 우리나라가 애국심으로 말하면 세계 제1위의 나라였는데, 100년 만에 서양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서구화되어 애국심이 무엇인지 잊고 만 것이다.
 
필자는 신문에서 실업자들이 줄을 선 사진을 본 바로 그날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유적지를 방문하여 실학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 박물관에 들어간 돈이 엄청나다는 말을 들으면서 다산 정약용이『목민심서』를 쓰고 『기민시』를 쓴 연유를 알았고 실학實學이 결코 우리나라 서구화의 맹아요 시작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산을 기억하라고 세운 박물관이라면 다산을 똑똑히 알고 설명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19세기 초 전남 강진으로 귀양 가서 19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다. 5백 년간 조선왕조 역사에서 한 사람 날까 말까 하는 대학자 다산을 유배지에 보내놓고 당쟁에만 여념이 없던 놈들에게 둘러 싸여 왕이 정치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의 나라 형편과 닮은 데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때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차마 볼 수 없는 흉년의 참상과 지방관들의 부정부패를 직접 목격하였다. 

다산의 “쑥을 캐네. 쑥을 캐네.“(채고采蒿)를 읽어 보라.

쑥을 캐네. 쑥을 캐네. / 아낙네들은 패를 지어 양 떼처럼 몰려다니네. / 저기 산언덕에도 퍼런 치마를 입고 / 흩어진 머리털을 날리면서 / 쑥을 캐어 무얼 하려는지 물어보았더니 / 대답 없이 눈물만 흘리네. / 집의 항아리 속에는 남은 곡식이 없고 / 들에는 싹 난 것이 하나도 없으니 / 여기 저기 쑥 무더기를 캐어 / 이것을 캐어 말리고 바래며 / 삶아서 데치고 간을 쳐서 / 밥 대신 죽 대신 끼니를 때운다네. / 이것조차 없다면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여기까지만 읽어도 왜 한국의 아낙네들이 아직도 봄에 길에서 쑥을 보면 캐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때 백성을 돌보아야 할 사또使道와 아전들은 기생들을 불러놓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흥겹게 잘 살았다는 것이다. 다산의 「기민시」는 공무원의 부정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사또님 네 집안에는 술과 고기가 가득하고 / 풍악소리 울리면서 명기 명창 화려하다 / 희희낙락 태평세월 즐겁기만 하고 / 대감님 네 그 모습은 우람하고 풍성하기만 하도다.

『춘향전』을 읽지 않아도 다산의 이 시 한 구절만으로도 흉년 때 고위공직자들의 비리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학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학문이었다. 실학에서 중요한 것은 굶어 쓰러지는 백성을 일으켜 세워 인간성을 살리는 것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 산과 들에 푸른 싹이 트지 않는 것은 하늘의 천벌이라 어쩔 수 없지만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 다산의 실학은 단순한 실사구시의 학문이 아니라 죽도 끊여 먹을 수 없는 인간들을 살려야 한다는 휴머니즘이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실학은 단순한 서구화를 지향하는 학문이 되었을 것이다.
 
실업자의 행렬을 사진에 뜬 신문(중앙일보 14. 3. 20 12면) 하단 지면에 엄청난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자그맣게 “금감원 간부 7명이 1조 8,335억원을 사기 대출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그날 규제 완화를 위해 저녁도 거르고 장관들과 갈비집 주인까지 불러다 놓고 끝장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날 근 2조 원이나 되는 부정을 저지른 금감원 고위 공직자들이 잡힌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어디 있는가. 이 기사를 자그맣게 낸 신문사나 이 기사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독자들이 문제다.

금감원이 무얼 하는 곳인가. 나랏돈을 잘 챙기고 사기꾼을 잡아달라는 곳이 금감원인데 그 금융감독원 간부가 뇌물을 먹고 도둑들을 도왔다는 것이니 200년 전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목격한 흉년의 참상과 지방관들의 부정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부정의 규모가 수천만이나 더 커졌다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21세기는 서구의 과학기술문명이 원자탄을 개발함으로써 벽에 부닥쳤다. 그리고 우리 실학도 그 의미가 달라졌다. 인류문명이 이제 대량살상무기로 무서운 재난을 자초하게 된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실학박물관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설명을 달리 해야 한다. 실사구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은 다산이 만든 기중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바로 인간이다. 무너진 인성人性과 윤리도덕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실직자가 된 남편을 도운 아내의 삶에 대한 끈질긴 정신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 생명의 정신을 우리 역사를 통해 가르쳐야 한다. 더 이상 놀부의 끊임없는 욕심과 자본주의의 강욕(=매우 강한 지나친 욕심)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옛날 신단수를 심어놓고 신시神市의 나라를 세운 환웅님을 기억하고 다산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산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스마트폰 속에는 기억상실과 치매밖에 들어있지 않다. 책을 읽어라. 교보를 비롯한 서울 대형서점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인사동의 고서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대형서점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지식의 초근목피 시대가 왔다.

이미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스마트폰의 나라가 되었으니 선진국민(?)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은가?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