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대박이다. 우리에게도 북한에게도 대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 대국민 담화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일대박론'의 탄생이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을 시작으로 지난 이명박 정부 내내 굳게 닫혔던 북한의 문이 열렸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것이다. 국회도 이에 발맞춰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직접 맡았다.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에 적극적인 정부가 등장했다. 서른을 갓 넘긴 어린 지도자를 가진 북한은 우리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위기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지상을 통해 전해졌다. '남한에 대박이면 북한에는 쪽박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일성대학에서 초빙교수를 지냈던 이서행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통일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이서행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이 13일 제4차 한민족미래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남북동포와 재외동포를 모두 합하면 8,300만 명이다. 나는 한민족은 8,300만 명이라고 본다.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타당한 가치를 말하라면 나는 '홍익(弘益)'을 내놓겠다. 문자 그대로 해석해도 좋은 홍익이지만, 이를 더 넓게 확장해서 본다면 '홍익'은 우주에서 온 것으로 영원성을 말한다. 한민족은 우주의 영원성을 지닌 '홍익'을 중심 철학으로 삼는 민족인 것이다.
 한민족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그 어떤 것도 배타하지 않았다. 수용하고 재창조하여 더 발전시켜왔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경제, 문화 공동체에서 시작하면 된다. 독일이 정상회담 후 20년 뒤에 통일했듯이, 우리도 2000년 정상회담했으니, 2020년에는 통일이 될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화합된 한민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김일성대학 초빙교수'라는 경력을 가진 이 교수는 13일 서울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민족원로회의 제4차 한민족미래포럼에 주제발표자로 나서서 통일에 대한 개방적이고도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했다. 통일의 철학적, 사상적 근거는 한민족의 시원에서 찾았고, 통일의 방법과 시기는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이었다.

 이 교수는 '홍익'이라는 한민족 고유의 철학을 우주의 관점, 경제학적 관점, 윤리적 관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했다. 우리 철학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명쾌히 설명해냈다.

 "'홍익'은 우주를 담고 있다. '이기' 성리학으로 풀어도, 주역으로 풀어도, 태극으로 풀어도 모두 영원성을 갖고 존재한다. 영원성 속에서 쉼 없는 관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쉼 없다는 것은 에너지가 발생한다. 즉, 그 속에서 생명력도 찾을 수 있다. 관계를 말하는 것이므로 나라는 존재를 우선하고 상대의 존재를 인지해 나와 상대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말한다.
 이를 경제학적 용어로 말하면 '공리주의'라 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 것이다. 즉, 홍익이란 나의 삶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것이 타인의 행복에도 적용되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홍익은 각 종교의 윤리성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 한민족원로회가 마련한 제4차 한민족미래포럼이 13일 세종예술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리고 있다.


 이러한 '홍익'의 가치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 애국가 등 다양한 심볼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태양이 뜨는 나라라고 해서 일본처럼 흰 바탕에 붉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넣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건곤감리와 음양의 조화를 국기에 담아냈다. 애국가를 통해서는 '동해의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통해 이 지구에 생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하늘(우주)'을 늘 가까이, 또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이 바로 한민족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하늘'을 우리는 서양에서 들어온 신문물들이 장악하면서 중요한 정신 가치를 잃고 물질문명에 휘둘리고 산다. 반면 북한은 이 '하늘'을 김일성으로 상징화하며 주체사상을 뿌리내렸다.

 "한민족은 철학적으로 우주를 논하고 하늘을 중시할 만큼 규모가 큰 민족이다. 즉,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놀라운 문화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한류를 통해, 한식 문화를 통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것을 대변하는 것이 '비빔밥 문화'다. 제각기 다른 것들이 한 그릇에서 어우러져 비벼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홍익이고 화합 아니겠는가.
 다만, 우리가 비빔밥을 했는데 우리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일제에 의해, 중국에 의해, 외래 문물에 의해 우리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우리가 힘이 없어 정신을 잃어버리면서 인류를 화합할 수 있는 책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신라가 오랜 시간 젊은이들을 화랑도로 키워내어 그들을 토대로 삼국통일을 이뤄냈듯이 통일을 맞이하게 될 오늘날에도 그런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원로들이 모인 한민족원로회가 주축이 되어 바른 철학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청년층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는 태평양의 시대가 된다고 영국의 사학자 토인비가 말했다. 대륙과 해양 문화의 교차 시기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14세기에 일어난 서구의 르네상스는 사람은 사람, 신은 신으로 분리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일어날 제2의 르네상스는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르네상스가 되리라 내다보았다. 한민족이 중심이 되어 절대세계와 상대세계가 함께 공존하고 화합하는 르네상스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큰 어우러짐에 앞서 혼란기가 오게 되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남북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통일이라는 큰 화합이 있기 전에 혼란이 있을 것이다. 그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홍익철학을 가진 한국뿐이다.
 독일은 내부의 문제로 분단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해서 통일되었다. 우리는 외부의 이익에 따라 분단되었다가 우리 땅에서 전쟁까지 치르면서 내부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내재적 요인과 외재적 요인이 함께 섞여서 통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원로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몰래 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만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다. 설사 간장 종지처럼 작은 그릇일지라도 온 국민이 함께 논리적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 통일이다.
 독일은 정상회담을 하고 20년 뒤 통일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우리도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을 했으니 상징적으로 2020년을 통일 시점으로 보고 있다. 바로 체제 통일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경제적, 문화적 공동체를 구성한 뒤 정치적, 사회적 공동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을 준비하자."

▲ 제4차 한민족미래포럼 보조발제자로 나선 정영순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이 교수에 이어 보조 발제자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순 교수가 나섰다. 우리나라 학자로는 최초로 북한사를 전공한 정 교수는 체제 통일에 있어서 그 핵심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 나섰다.

 "동독에 자유민주주의 바람이 불었다. 동독 주민이 서독의 자유민주체제를 받아들이겠다는 열망 속에서 독일 통일이 이뤄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학자들은 '서독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동독을 산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적화통일? 말도 안 된다. 우리는 명백히 자유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체성 교육이 시급하다."

 정 교수는 사회적, 문화적 민족공동체 이후 체제 통일 차원의 논의가 진행될 때 '자유민주주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민족원로회가 주최하는 제5차 한민족미래포럼은 오는 5월 8일 서울 세종문화예술회관 예인홀에서 열린다. 5차 포럼에는 '국민대통합을 위한 국가지도자상'이라는 주제로 이택휘 동원대 이사장이 주제발표자로 선다.

 한편, 한민족원로회는 지난해 7월 23일 창립총회를 열고 발족했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 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위원장이 공동의장을, 장준봉 전 경향신문사 사장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원로회는 정치, 경제, 교육, 법조, 언론, 문화 등 대한민국의 각 분야 100여 명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민족미래포럼은 격월로 홀수달에 개최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동서남북의 분열과 대립, 빈부, 노소, 정파 간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 위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필요한 정책제안을 하고자 마련된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