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한양 도성을 설계하였다. 태조 4년(1395) 9월 태조는 정승 조준과 김사형에게 이듬해 1월부터  도성을 쌓으라고 명하였다. 이어 윤9월 13일에는 도성조축도감(都城造築都監)을 두어 판사·부판사·사(使)·부사(副使)·판관·녹사들을 임명하고,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를 정하게 하였다.

 그 전에 정도전은 태조의 명에 의해 한양 궁터를 정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무학(無學) 대사가  인왕산(仁旺山)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백악산(白嶽山 북악산)을 좌청룡(左靑龍)으로 하고, 목멱산(木覔山 남산)을 우백호(右白虎)로 하려고 하였다. 정도전은 안 된다며 반대했다. 

"옛날부터 제왕(帝王)은 모두 남면(南面)하고 정치를 하였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무학 대사는 "내 말을 듣지 않다가는 2백 년만 지나면 꼭 내 말을 생각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결국 정도전의 의견을 따랐다. 고려 숙종(肅宗)이 한양에 조성한 성이 있었지만,  너무 협소하였다. 정도전은 그 남쪽에 자리잡고, 해산(亥山)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임좌 병향(壬坐丙向)으로 결정하였다. 옛날에 신라(新羅)의 중 의상(義相)이 말하기를, "도읍을 한양에 정하는 사람이 중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정(鄭)가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시비가 많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지금에 와서 그 말이 맞았다는 기록이 <삼봉집>에 전한다. 

정도전은  백악산, 인왕산, 목멱산, 낙타산에  직접 올라 거리를 실측하여 도성을 설계하였다. 이듬해 1월 9울부터 한양 도성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어 2월 28일까지 쌓았다. 농사철을 피하고 다시 8월13일부터 9월 30일까지 축성 공사를 하였다. 전국에서 19만9,260명이 동원됐다.

 이렇게 도성이 완성되어 가는 동안 정도전은 도성의 성문 이름을 지었다. 정동(正東)은 흥인문(興仁門)이라 하였으니 오상(五常)의 인(仁)을 취한 것이다.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한다.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오상의 예(禮)를 취한 것이다.  속칭 남대문이라 한다. 정서(正西)는 돈의문(敦義門)이니 오상의 의(義)를 위한 것이다. 정북(正北)은 오상의 지(智)를 취하여 소지문(炤智門)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숙청문(肅淸門)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숙정문(肅靖門)으로 개명됐다.

그 사이에 소문이 있었으니 동북은 홍화문(弘化門)이고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 한다. 널리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동남(東南)은 광희문(光熙門)이니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 한다. 광희는 널리 빛낸다는 뜻이다. 소북(小北)은 소덕문(昭德門)이니,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 한다. 소덕을 덕을 빛낸다는 뜻이다. 서북(西北)은 창의문(彰義門)이니 의를 널리 펼친다는 뜻이다.  도성 중앙에는 문을 둘 수 없으니 종각을 세우고 보신각(普信閣)이라 하였다. 정도전은 이렇게 유교의 다섯 가지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도성 4대문 이름을 지여 한양을 오상을 상징하는 곳으로 조성하였다.

 이듬해 1396년 4월 19일 정도전은 한성부의 행정구획 정리를 하고 구역 명칭을 지었다. 한성부를 동서남북과 중 5부로 나누고 5부를 다시 수십 개 방(坊)으로 하였다.  그가 지은 방 이름은 이렇다. 

"한성부로 하여금 5부(五部)의 방명표(坊名標)를 세우게 하였다. 동부가 12방(坊)이니, 연희(燕喜)·숭교(崇敎)·천달(泉達)·창선(彰善)·건덕(建德)·덕성(德成)·서운(瑞雲)·연화(蓮花)·숭신(崇信)·인창(仁昌)·관덕(觀德)·흥성(興盛)이요, 남부가 11방이니, 광통(廣通)·호현(好賢)·명례(明禮)·태평(太平)·훈도(熏陶)·성명(誠明)·낙선(樂善)·정심(貞心)·명철(明哲)·성신(誠身)·예성(禮成)이며, 서부가 11방이니, 영견(永堅)·인달(仁達)·적선(積善)·여경(餘慶)·인지(仁智)·황화(皇華)·취현(聚賢)·양생(養生)·신화(神化)·반석(盤石)·반송(盤松)이고, 북부가 10방이니, 광화(廣化)·양덕(陽德)·가회(嘉會)·안국(安國)·관광(觀光)·진정(鎭定)·순화(順化)·명통(明通)·준수(俊秀)·의통(義通)이며, 중부가 8방이니, 정선(貞善)·경행(慶幸)·관인(寬仁)·수진(壽進)·징청(澄淸)·장통(長通)·서린(瑞麟)·견평(堅平)이었다."(<태조실록> 태조5년 4월19일)

이 또한 인의예지신 오상과 유교의 덕목으로 지어 국가와 만백성의 안녕을 비는 뜻을 담았다.

중부 수진방(壽進坊)과 관련하여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전한다. 정도전의 집이 있는 곳을 '수진(壽進)'이라 하여 오래 살려 했는데, 죽음을 당하여 오래 살지 못하니 사람들이 수진(壽盡)의 조짐이라고 말하였다. 진(進)은 진(盡)자와 음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풀어보는 것이다. 수중(壽重)으로 고쳤다.

이렇게 한양 도성을 설계하고 이름을 지은 정도전은 새 도읍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태조에게 올렸다. '신도팔경(新都八景)'이라는 시이다. 첫째는 기전(畿甸)의 산하(山河)였다. 비옥하고 풍요로운 기전(畿甸) 천리, 덕교(德敎)의 형세를 얻어 겸하여 천년토록 영원하기를 염원했다. 둘째는 도성(都城)과 궁원(宮苑)이었다. 철옹성(鐵甕城) 같이 안전한 곳에서 연연 세세 도성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을 꿈꿨다. 세째는 열서 성공(列署星拱)이었다. 여러 관청이 하늘의 별처럼 북극성을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네째는 제방(諸坊), 52개 방이 바둑판처럼 펼쳐 있는 모습을 노래했다.  다섯째는 동문(東門)의 교장(敎場)으로 국영 목장에서 말을 기르는 모습을 찬양했다. "종(鐘)과 북[鼓]은 요란하게 울리어 땅을 움직이고/ 정기(旌旗)는 펄럭이어 공중에 연하였도다.//만마(萬馬)가 주선(周旋)하는 것이 한결같으니/몰아서 전장에 나갈 만하도다."
여섯째는 서강(西江)에 배가 드러나드는 모습, 일곱째는 남도(南渡)의 행인(行人), 여덟째는 북교(北郊)의 목마(牧馬)를 노래했다. 

그 전체를 보자.

기전산하(畿甸山河)

기름지고 걸도다 천 리의 기전                             沃饒畿甸千里
안팎의 산과 물은 백이(百二)로구려                     表裏山河百二
덕교에다 형세마저 아울렀으니                            德敎得兼形勢
역년은 천 세기를 기약하도다                              歷年可卜千紀

도성궁원(都城宮苑)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                                城高鐵甕千尋
구름 둘렀어라 봉래 오색(蓬萊五色)이                  雲繞蓬萊五色
연년이 상원에는 앵화 가득하고                           年年上苑鶯花
세세로 도성 사람 놀며 즐기네                              歲歲都人遊樂

열서성공(列署星拱)

열서는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列署岧嶤相向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有如星拱北辰
새벽달에 한길 거리 물과 같으니                     月曉官街如水
명가(鳴珂)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鳴珂不動纖塵

제방기포(諸坊碁布)

제택은 구름 위로 우뚝이 솟고                    第宅凌雲屹立
여염은 땅에 가득 서로 연달았네                閭閻撲地相連
아침과 저녁에 연화 잇달아                         朝朝暮暮煙火
한 시대는 번화롭고 태평하다오                   一代繁華晏然

동문교장(東門敎場)

북소리 두둥둥 땅을 흔들고                          鐘鼓轟轟動地
깃발은 나풀나풀 공중에 이었네                    旌旗旆旆連空
만 마리 말 한결같이 굽을 맞추니                 萬馬周旋如一
몰아서 전장에 나갈 만하다                           驅之可以卽戎

서강조박(西江漕泊)

사방 물건 서강으로 폭주해 오니               四方輻湊西江
거센 파도를 끌어가네                               拖以龍驤萬斛
여보게 썩어 가는 창고의 곡식 보소          淸看紅腐千倉
정치란 의식의 풍족에 있네                       爲政在於足食

남도행인(南渡行人)

남도라 넘실넘실 물이 흐르나             南渡之水淊淊
사방의 나그네들 줄지어 오네             行人四至鑣鑣
늙은이 쉬고 젊은 자 짐지고                  老者休少者負
앞뒤로 호응하며 노래 부르네                謳歌前後相酬

북교목마(北郊牧馬)

숫돌같이 평평한 북녘들 바라보니           瞻彼北郊如砥
봄이 와서 풀 성하고 물맛도 다네            春來草茂泉甘
만 마리 말 구름처럼 뭉쳐 있으니             萬馬雲屯鵲厲
목인은 서쪽 남쪽 가리질 않네                   牧人隨意西南  (<삼봉집>)

 

새로운 나라를 열어 그 도읍을 설계한 정도전. 이 시에는 그가 꿈꾸는 세상이 이 시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