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제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한때는 청년이었던 기성세대가 보는 오늘날의 청년은 안일하고 끈기가 없으며 도전정신이 부족한 존재들일 뿐이다. 나이의 숫자만 적을 뿐, 청춘이 당연히 가지는 패기와 도전, 무모함은 찾아볼 수 없다는 혀차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청년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좋은 학교를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만을 최우선 과제로 알려주며 안정과 남보다 잘사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가르쳐온 기성세대는 어찌 그 모든 짐을 청년들에게만 지우려 하는 것인가.

 여기 한 청년이 있다. 청년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앳된 스물한 살의 아가씨다. 순진한 얼굴을 한 이 청년이 당돌하게 한 마디를 내던진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래요. 일제가 만든 역사 말고 진짜 우리 역사를 배웠다면, 그래서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당연히 자존감도 강해지니까요. 우리가 가진, 내가 가진 철학과 역사가 매우 뛰어나지만 그걸 정작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에요."

 세계국학원청년단(이하 청년단) 안정빈 회장과 만났다.

▲ 세계국학원청년단 안정빈 회장

 안 회장을 만나기 위해 충남 천안 국학원을 찾은 지난 19일, 청년단의 사무실은 분주했다. 95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한쪽에서는 태극기몹 안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태극기몹은 태극기를 들고 혹은 입고 하는 플래시몹으로 지난 2004년 처음 기획된 이래 청년단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또 한쪽에서는 유관순 어록이 담긴 엽서 제작에 무슨 문구를 넣을지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그 분주한 와중에 안 회장은 책상에 앉아 곱게 머리를 빗어넘기며 '유관순'으로의 변신을 준비 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국학원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민족혼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 유관순 열사 연극을 봤죠. 알 수 없는 희열감이 느껴졌어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순국한 유관순은 무슨 생각, 무슨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던졌을까. 아직도 생생해요."

 유관순 열사로 변신한 안 회장이 향한 곳은 바로 국학원 인근에 자리한 독립기념관이었다. 준비물은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카메라 하나와 노래가 담긴 스마트폰, 손 태극기 두 개,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유관순이 전부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2월 중순 여전한 겨울 찬바람이 광장에 세차게 불어 들지만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만 입어도 쌩쌩한 안 회장, 스마트폰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양손에 태극기를 쥐어들고 신나게 안무를 펼쳐 보인다. 독립기념관 태극기광장에서, 소형 독립문 아래에서, 기념관 본관 대형 무궁화 액자 아래에서 수십 번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촬영은 유관순기념공원으로까지 이어졌다.

▲ 세계국학원청년단의 사무실 한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포스터. 인기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모티브를 따서 오는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 유관순 복장의 청년단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솜씨 좋게 편집되어 유튜브에 올릴 예정이다. 삼일절에 더 많은 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오기를, SNS에서 삼일절을 떠올리고 태극기를 펄럭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 노는 날로 보내기에는 삼일절은 정말 중요한 날이잖아요.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에 청년단은 꼭 오프라인에서 태극기몹을 하거든요. 이번에도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에요. 오프라인 행사에 못 나오더라도 온라인에서라도 태극기 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든가, 삼일절의 의미를 한 번 더 찾아본다든가. 얼마든지 우리가 참여할 방법은 다양하니까요.
 역사는 고리타분한 옛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살아가는 우리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내 주변에 딱 세 사람에게만이라도 알리면 좋겠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해요."

 안 회장이 이렇게 신나게 활동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학창시절 공부 머리가 썩 좋지 않았다고 웃으며 고백한 그녀는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시켜서, 혹은 남들이 다 하니까 하기 싫지만 꾸역꾸역 시험공부 하고 대학에 가는 친구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젊기 때문에, 젊으니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젊을 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세계국학원청년단 안정빈 회장

 "몰라서 선택을 못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아는 사람이 알려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죠. 큰 꿈, 큰 목표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라요. 널리 만물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을 알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제 또래들의 생각도, 삶도 바뀔 거라고 믿어요.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 시대가 원하는 인성영재 아닐까요.
 민족혼 교육을 받고 우리 참역사를 알리고 싶었지만 제 개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국학원청년단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진짜 삼일절 그날처럼 다 함께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더 많은 친구들이 큰 꿈과 큰 목표를 갖는 기쁨을 느끼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세계인들에게 널리 만물을 이롭게 하는 평화로운 세상,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을 알리고 싶다는 그녀, 앞으로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 가질 수 있는 매력적인 역사를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4년 3월 1일 '유관순'이 돌아온다. 95주년 삼일절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 안 회장과 같이 유관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만세 운동을 벌일 국학원청년단의 모습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