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대종교 총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대종교 관계자는 두 손 가득히 오래된 책들을 가져왔다. 독립운동가 유품에 나온 단군영정 사진이었다.(클릭)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신건식(申健植) 선생님의 집에서 유품으로 나온 단군 영정을 직접 봤어요. 이 정도 크기인 것 같아요. 당시에 직접 품에 가지고 다니기에는 큰 것 같고, 집에 모셔두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대종교 천궁 왼쪽 방에는 역대 대종사인 단애 윤세복, 홍암 나철, 무원 김교현, 백포 서일의 진영(眞影)을 모시었다. 오른쪽 방에는 1942년 임오년에 일어난 일제의 대종교 박해사건으로 순국한 10명의 간부를 임오십현(壬午十賢)으로 모시었다.(사진=윤한주 기자)

홍암 나철(1864~1916)이 ‘국망도존(國亡道存: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존재한다)’의 가치로 대종교(大倧敎)를 중광한 이유였다. 단군은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이었다.

나철은 1909년 음력 1월 15일에 오기호, 강우, 유근 등 10여 명과 함께 서울 북부 재동 취운정 아래 6간 초가집 북벽에 단군의 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올린다. 이때가 대종교 중광절(重光節)이다.

지난 14일 중광절 105주년을 기념해 총본사를 찾았다. 가는 방법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서울지하철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11번이나 13번을 탄다. 서울여자간호대학에서 내리고 약수터 방면으로 5분 걸어서 올라간다. 이날은 총본사에서 제공하는 셔틀봉고를 타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파란 지붕과 하얀 벽이 인상적인 총본산은 1980년대 홍은동에 터를 잡고 세워진 건물 그대로였다.

천궁에 들어가면 신라 솔거(率居)가 꿈속에서 단군을 보고 그렸다는 단군 천진(天眞)이 있다. 신자들은 천진을 향해 4번 절을 올린다.

▲ 원영진 대종교 총전교가 무릎을 꿇고 단군 진영(眞影) 앞에서 선의식을 올리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왼쪽 방에는 역대 대종사인 홍암 나철, 백포 서일, 무원 김교헌, 단애 윤세복의 진영(眞影)을 모시었다. 오른쪽 방에는 1942년 임오년에 일어난 일제의 대종교 박해사건으로 순국한 10명의 간부를 임오십현(壬午十賢)으로 모시고 있다.

이날 중광절 경축식에 앞서 선의식이 봉행됐다. 선의식의 ‘선(示+亶)’자는 ‘천제 선, 제사지낼 선’자로서 삼신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제천의례를 말한다.

대종교의 4대 경절에 봉행되고 있다. 개천절(음력 10월 3일)과 단군이 하늘에 오른 어천절(음력 3월 15일), 중광절(음력 1월 15일), 나철이 하늘에 오른 가경절(음력 8월 15일)이 그것이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홍암의 제천은 삼신의 신위를 모시고 행한 근대 최초의 천제이었다는 점과 하느님께 올리는 우리 고유의 제천의례인 선의식을 처음으로 재현했다. 또한 당대의 생활이라 할 수 있었던 유교적 제례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홀기(笏記)를 제정하여 우리 고유의 제천의례를 시현ㆍ정착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 14일 대종교 중광절 105주년 기념 선의식에 참석한 사람들(사진=윤한주 기자)

원영진 총전교가 제주로 나섰다. 의례복은 백색이었다. 백의민족을 상징하고 국조 단군 한배검의 은혜에 정성을 다하여 보답한다는 뜻이다. 천반, 천향, 천등도 백색이었다.

선의식에 올려지는 제폐나, 사용되는 제구의 모양과 복식의 형태, 신상의 배치 등이 모두 원방각의 삼원(三元)으로 구성됐다. 원방각(圓方角)은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낸다. 이는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城壇)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종교 관계자는 “기념식은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통일을 지향하며 국민총화를 이루는 데 있다”라며 “미래지향적인 지구공동체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것은 홍익인간 사상”이라고 밝혔다.

∎ 찾아가는 방법

▲ 대종교 총본산(사진=윤한주 기자)

주소: 서울 서대문구 홍은중앙로3길 89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11번이나 13번을 탄다. 서울여자간호대학에서 내리고 약수터 방면으로 5분 걸어서 올라간다.
전화: 02-394-8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