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7월 소설가 현진건은 묘향산에 있는 단군굴을 찾는다. 단군 위패 앞에 무릎을 꿇는다. 위대한 문화유업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한 후손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른다.

그는 “무슨 낯으로, 무슨 주제로 여기 올 생각을 하였던고?”라고 자책하며 “하도 기막히고 답답해서 집안 어른을 뵈러 온 것이다. 한배님을 찾아온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대성산(大聖山)을 지나고 동명성왕릉(東明聖王陵) 을지장군묘(乙支將軍墓) 강서삼고분을 지나 구월산(九月山)으로 들어가 단군대(檀君臺) 삼성사(三聖祠)를 찾은 후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을 참배한 것으로 순례를 마친다.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쓴 <단군성적순례(檀君聖跡巡禮)>는 현진건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안 손진태는 원고를 찾아 비밀리에 보존해 해방 후 유족에게 되돌려주었다. 원고는 1948년 예문각에서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로부터 55년이 흘렀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학자 박성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단군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뒤를 이어받았다.

박 교수는 1987년 1월부터 9월까지 경향신문과 함께 매주 고조선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단군이 신화가 아니라 실체임을 밝혀냈다. 국내 학계에서 처음으로 남한은 물론 일본에서 거의 없어진 단군의 자취를 발굴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박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1987년 10월 2일)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나라가 지정하는 국보 속에는 물론 중요한 문화재 속에도 단군문화유산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라며 “자기 문화를 이렇게 푸대접하고서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연재는 1988년 <단군기행(교문사)>으로 출판됐고 2009년 ‘백두대간에서 일본열도까지’라는 부제를 단 개정판 <단군문화기행(석필)>으로 나왔다.

다시 37년이 흘렀다. 그동안 단군문화는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사단법인 현정회 측에 따르면 단군을 숭상하는 단체만 100여 곳이 넘는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민족종교 선불교(仙佛敎)는 지난 2006년 충북 영동군 본원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단군성전인 국조전을 건립했다. 제주국조전(2010년)과 경기국조전(2012년)을 포함해 3곳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에서도 단군문화를 주목하고 있다. 충북 증평군은 36억 원을 들여 단군전 역사공원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는 환인, 환웅, 단군에게 지내는 삼성제례(三聖祭禮)를 복원한 삼각산 축제를 개최한다. 

한류의 흐름 속에 외국 관광객 또한 단군성전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8년 충남 천안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개원식에는 높이 15m(받침과 기단을 합하면 21m)에 달하는 국내 최대 높이의 ‘국조단군왕검입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행사에는 미국, 일본, 러시아 등 1천명의 외국인 축하사절단을 포함해 국내외 1만여 명이 참석했다.

코리안스피릿은 21세기 신한류로서 단군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이번 기획은 독자들의 제보로 진행한다. 이메일(kaebin@ikoreanspirit.com)로 단군문화 관련 주소와 연락처, 추천 사유를 간단히 적어서 보내면 된다. 전화(02-2016-3043, 윤한주)로도 가능하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