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원은 27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한국병합 100년 한일지식인 공동성명 기념 제3차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2010년의 약속, 2015년의 기대’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등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 한국역사연구원은 27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한국병합 100년 한일지식인 공동성명 기념 제3차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묘소를 참배한 요시다 쇼인을 일본의 정한론(征韓論) 원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조슈(長州) 번벌(藩閥)의 스승이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비롯해 기토 다카요시(木戶忠孝), 다카스키 신사쿠(高彬晉作),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가쓰라 타로(桂太郞), 데라우찌 마사다케(寺內正毅) 등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한국 침략에 ‘수훈’을 세운 인물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배출됐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요시다 쇼인은 서양의 여러 나라가 일본을 집어삼킬 듯이 긴장된 정세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위기 극복의 길을 타국, 타지의 탈취에서 찾고 있었다. 러시아의 캄차카, 오츠크, 오스트레일리아, 조선과 만주 등이었다.

특히 조선과 만주 진출은 역사에서 근거를 찾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조선은 본래 고대 일본의 성대盛代에 ‘신속臣屬(=군신관계)’ 되었던 땅이니 이를 다시 회복하여 만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 곧 정한征韓의 역사가 엄밀하게 거론됐다”라고 설명했다.  

요시다 쇼인은 서양 열강과의 우열 비교에서 일본은 함선이나 총포 어느 쪽에서나 승산이 거의 없다고 봤다. 그러므로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배워야 한다. 러시아와 미국과는 신의를 두텁게 하면서 국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또한 무역에서 잃은 몫은 조선, 만주 등 다른 곳의 토지를 빼앗아 채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요시다 쇼인의 침략적인 정세관은 결코 한반도 하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제시한 미래 일본의 진로가 실제로 그대로 침략 전쟁의 형태로 실천에 옮겨졌다는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정한론征韓論이라고 하면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을 거론한다. 그러나 정한론의 주역은 요시다 쇼인이며, 사이고 다카모리는 조역도 되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 일본 총리가 그의 묘소를 찾은 것은 자신이 옛 영광을 되찾는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였다”라며 “야스쿠니 신사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대외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된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장소로서 쇼인의 묘소나 신사와 관련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그 길을 정확하게 따라간 것이다”고 지적했다.

▲ 한국역사연구원은 27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한국병합 100년 한일지식인 공동성명 기념 제3차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어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는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통감의 한국병합 수법’을 주제로 발표했다.

와다 교수는 “한국의 전권을 위임받은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의 한국병합조약에 조인하고 각서를 교환한 것은 연극에 불과했다”라며 “‘전(前) 한국 군주의 희망에 따라 한국을 병합한다’고 발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꾸며낸 것이다. 따라서 원천 무효인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2010년 ‘한·일 지식인들이 ‘한일병합’ 무효에 대해 일차적으로 동의했고, 이제는 병합수법과 과정에 대해서도 일치된 인식을 확립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을 살려 2015년에는 한·일조약 50주년, 전후 70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한일 역사갈등의 근본원인으로 ‘미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태프트-가츠라 조약을 통해 일본의 식민정책을 용인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도 공산권에 대한 대항조치를 취하느라 일본의 과거 식민지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는 2010년 한일 지식인 1,000여 명은 “한일병합은 강제된 것이기에 원천 무효”라는 뜻을 모아 공동성명을 낸 것을 기념해 마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