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면 추울수록 신나는 곳이 있다. 얼음 위에서 낚시를 하고 썰매를 지친다. 주위는 눈 덮인 설악 준령으로 둘러싸여 북풍한설을 더욱 세차게 불어 내린다. '이한 치한'-얼음벌판은 산굽이를 돌아 끝도 없이 펼쳐진다.

혹자들은 뉴질랜드나 호주에 여름이 왔다고 그곳으로 '피한 여행'을 떠난다. 설봉 한라산이 있지만 남풍의 기운이 따스한 제주도도 추위를 피해가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지금 이 시각남태평양의 야자수 해변에선 해수욕을 즐길지라도..., 좋다! 이 땅에선 제 철 다운 제 철,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보자. 그것은 추위와 씨름하여 넘어뜨려 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눈이 많은 겨울은 피지나 타이티의 은하수 쏟아져 내리는 야자수 해변 못지 않은 축복이라고 생각하자.

▲ 인제 소양호는 겨울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겨울철 물이 얼면 이곳에서 빙어낚시를 하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한국에서 가장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곳 가운데 한 곳인 강원도 인제는 대개 1월 쯤이면 폭설이 내려 길이 막히기 일쑤다. 텔리비젼에서 미시령이나 진부령이 눈으로 교통이 막혔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현지인들 아니면 걱정보다는 일종의 환희를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알프스 스키장을 생각하며, 소양호 빙어낚시를 그리며....

그런데 요즘 겨울엔 눈이 별로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키광이 아닐지라도 눈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겨울을 그대로 그냥 보내기엔 한 가닥 아쉬움이 남게 된다. 그런 빈 마음을 채워주려는 듯 겨울이면 어김없이 광활한 '얼음세상'이 열려 '겨울'을 만끽하게 해주는 곳이 있다.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남리 일대 소양호 얼음판이 그곳이다. 그곳은 넓고 기다란 강줄기가 꽁꽁 언 것이어서 광활한 얼음벌판이다. 소양호가 원래 강원도의 깊디깊은 산계곡에 물이 굽이굽이 돌아가도록 채워넣은 것이기에, 그것이 꽁꽁 얼어서 이룬 얼음벌이란 보통 방죽이나 저수지가 언 빙판하고는 격이 다르다.

▲ 빙어낚시를 하는 하는 이들은 얼음을 깨고 빙어를 낚는 재미에 추운 줄도 모른다.

신남리 소양호 얼음판은 한 번 얼기도 어렵거니와 일단 얼었다 하면 얼음 두께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곳 얼음은 해마다 1월 초중순이나 말쯤 얼기 시작해서 2월말이나 3월초까지 간다. 깊고 넓은 물이 초겨울부터 냉기를 차곡차곡 채워담아 가다가 얼게 되므로 얼음두께도 60cm~1m나 된다. 따라서 이곳 얼음판은 혹시나 싶어 돌을 던져보거나 발을 쿵쿵 짚어볼 필요가 없다. 빙어잡이 그물을 치거나 빙어낚시를 하려면 전기톱으로 썰거나 굴착기로 구멍을 뚫어야 할 굳기이다.

 
이 두꺼운 얼음판이 인제군 남면 신남선착장에서 남전2리 군축교 다리 아래까지 약 2km(너비 약 700~800m)에 걸쳐 펼쳐진다. 우리나라 최대, 최장의 얼음판이면서 살을 에는 산골 칼추위를 두르고 있으니 남극의 에스키모 마을이 부럽지 않은 겨울맛이다. 얼음의 질도 좋아서 여기서는 각종 얼음놀이를 할 수가 있다. 재래식 썰매 타기, 팽이치기, 스케이트 타기, 돌축구 하기 등.. 특히 스케이트 타기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완벽한 무료 자연스케이트장이다. `돌축구'는 얼음판 위에 숯으로 적당히 금을 그어놓고 깃발 골대를 세운 뒤에 백원짜리 동전 서너배 크기의 둥근 돌이나 딱딱한 물체를 차넣는 놀이이다.
그밖에 `얼음판 산책'도 있다. 신남선착장 위쪽으로는 약간 경사진 얼음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자칫 미끄러질 듯 말 듯 하면서 30분 동안 약 1km를 걷다보면 그 추위에도 등에 땀이 밸 정도로 마땅한 운동이 된다.

■ 소양호 가는 길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홍천, 신남을 거쳐 가는 시외버스가 아침 5시50분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20회 운행한다. 약 2시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는 아침 6시15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하루 22회 운행한다. 승용차는 서울에서 양평-홍천(44호 국도)-신남선착장의 순서로 간다. 신남선착장과 남전리 일대에 숙식을 겸할 수 있는 민박집이 많다.

## '겨울호수의요정' 빙어

인제 얼음판에서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하는 빙어낚시가 인기다. 해다마 '인제 빙어축제'도 연다.

빙어는 공어, 은어, 방어, 뱅어, 병어 등으로 불리는 담수어종으로 섭씨 6~10도의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산란하는 은빛의 어류로서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몸이 투명해 '겨울호수의 요정'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찬물을 좋아하는 빙어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수온이 낮은 깊은 곳에 머물다가 다른 물고기들의 활동이 둔해지는 겨울철에 수온이 낮은 얕은 곳으로 회유를 한다. 특히 3월 성수기를 앞두고 얼음이 15cm 이상 두껍게 어는 1월부터는 알을 실은 암컷들이 주로 얕은 곳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낚시로 잡히는 것들은 크기가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암컷들이 많은데 배에 알을 잔뜩 싣고 있어서 날것으로 먹기엔 좋지 않다. 크기가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수컷들은 수심 10m 가량의 깊은 곳에서 회유하므로 그물로 잡는다.

 

빙어낚시를 하려면 견짓대, 바늘채비, 미끼(구더기), 얼음에 구멍 뚫는 끌, 얼음조각을 건져낼 뜰채, 의자 등이 필요하다. 인제읍내나 소양호 주변 가게에서 가지가 6~7개 달린 빙어낚시용 바늘채비, 견짓대, 찌 일체를 살 수 있다. 얼음구멍은 끌을 써서 지름 10~15cm로 뚫는다. 낚싯줄을 드리운 뒤에는 빙어의 시각을 자극할 수 있도록 고패질을 계속 해줘야 한다. 빙어 어신은 찌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빙어는 입술이 약해 세게 낚아채면 바늘에서 떨어져나가고 너무 약하게 채도 들어올리다가 놓치게 된다.

인제군은 매년 겨울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얼 때 인제군 남면 남전1리 가로리마을 앞 소양호 얼음판 위에서 '빙어축제'를 연다. 축제에서는 빙어낚시대회와 빙어시식회 등 빙어를 소재로 한 행사와 내린천 래프팅을 응용한 빙상래프팅, 빙상볼링, 컬링경기, 얼음축구대회 등 레포츠, 그리고 눈썰매장, 설피체험장, 이글루와 눈조각경연대회 등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체험행사를 연다. 또 수몰지역 산촌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민속놀이와 세시풍속도 재현한다.

 

 전 한겨레신문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