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답사는 덕수궁과 서울시청 군기시유적지를 다녀왔다. 덕수궁은 우리나라 5대 궁궐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궁으로 원래 조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 후 선조가 거처할 궁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자 왕실 개인 저택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이곳을 궁으로 쓰게 된 것이다. 광해군 때 이곳 행궁을 '경운궁'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과 석조전 전경.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본격적인 궁궐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이곳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으뜸 궁궐로 삼으면서부터이다. 또한 근대화를 향한 고종의 의지에 따라 궁 안에 여러 서양식 건물들을 세웠다. 정관헌, 석조전 등이 서양식 건물들이다. 현재는 석조전 보수공사로 출입은 불가능했지만 외관은 볼 수 있었다. 덕수궁의 정전과 석조전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대 흐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외래 문명의 수용이 주체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침략에 의한 것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 덕수궁 중화전.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 동서양 건축이 조화를 이룬 정관헌.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하면서 선황제의 거처가 되어 궁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1904년 큰 화재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다른 나라의 대사관으로 쓰이는 등 제 모습을 찾지 못하여 지금의 작은 규모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덕수궁을 돌아보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내 것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알게 하는 답사였다.

▲ 석어당.
 
▲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짧은 덕수궁 답사를 끝내고 쓸쓸히 덕수궁을 나서는데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많은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쉴새없이 사진을 찍으며 둘러싸 있었다. 그래. 아픔과 상실의 시대가 있었지만 또 다시 극복하고 되찾는 시대가 지금 여기 있구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기 마련. 그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며 발전해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서울시청으로 발길을 옮겼다.

▲ 서울시청.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서울시청 구청사 건물은 현재 서울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주말을 맞아 어린이들과 시민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청사 지하는 시민청이라고 하여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한 부분에 이름도 생소한 군기시유적전시실이 있다. 군기시는 조선시대 무기를 만들던 관청이다. 서울시 신청사 건립공사 중 조선시대 군기시 및 근대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조선시대 화포인 불랑기자포(보물 861, 862)59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화살촉 무더기와 총포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초기 발달했던 무기기술을 볼 수 있었다.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과 구한말이라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조선의 궁으로 역할을 했다. 또한 전통 양식 속에 서양식 건축을 수용한 근대적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청도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변화하게 된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는 막을 수 없다. 그 흐름을 역사를 통해 미리 읽어내고 준비하여 주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