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강구항에 가면 늘 살 맛이 난다. 특히 겨울에 그렇다. 강구항의 일출은 유난히 붉고 활기차다. 수평선 위로 해가 고요하게 솟는 다른 곳 일출에 비해 강구항 해는 이른새벽부터 이어지는 갈매기와 어선들의 바쁜 아우성 속에 상기된 얼굴을 내민다.

▲ 경북 영덕군 강구항은 겨울에 가면 살맛이 난다. 이 무렵부터는 가장 맛 좋은 영덕 대게가 가장 많이 나는 시기를 맞는다.

특히 찬 바람이 이는 11월 중순 이후 이듬해 봄 5월까지, 세상이 움츠러들어 있을 때가 강구항 사람들은 가장 신이 난다. 가장 맛 좋은 영덕 대게가 가장 많이 나는 시기인 것이다. 영덕 대게는 영덕 바다에서 나는 대게(다리가 대나무처럼 길쭉한 게)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영덕 태수의 관운이 이 대게 진상에 달려 있었을 만큼 예로부터 영덕 대게는 영덕 물산의 앞자리를 차지해 왔다.

▲대게 잡이 배.

'이상하게 생긴 바닷벌레'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임금님만 잡숫던 영덕 대게는 대일항쟁기  일본 사람들의 입 차지였다가 요즘엔 대중 매체를 통해 전국에 겨울 명물이 되었다. 대게는 주로 삼척 앞바다에서 울진 앞바다와 영덕 앞바다를 지나 구룡포 앞바다까지의 대륙경사면에서 살고 있고 멀리는 독도 근해에서도 잡힌다. 그런데 '영덕 대게'라는 이름이 워낙 유명해서 울진이나 구룡포에서 나는 게도 강구항으로 실어오곤 한다. 지난 96년엔 '울진대게'와 '영덕대게'가 하나로 통합해 부를 것을 주장하며 재판장까지 갔으나, 영덕에서 나는 것은 '영덕 대게', 울진 것은 '울진 대게'라 부르기로 합의하고 끝났다.

▲ 영덕 대게는 영덕 바다에서 나는 대게(다리가 대나무처럼 길쭉한 게)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영덕 태수의 관운이 이 대게 진상에 달려 있었을 만큼 예로부터 영덕 대게는 영덕 물산의 앞자리를 차지해 왔다

영덕 사람들은 영덕 대게의 상품성을 드높이기 위해 '영덕 대게 원조마을'을 찾아내 선전한다. 조선 초기 '축산면 차유리' 앞바다에서 영덕 대게가 맨 처음 잡혔다는 것이다. 차유리 앞바다 '왕돌잠'이라는 수심 300m의 대륙붕은 깨끗한 모래밭이어서 정결한 곳을 좋아하는 대게가 많이 서식한다.  이곳 대게는 특히 다리가 길고 속살이 꽉 차 야무지고 맛이 담백 쫄깃하다. 그래서 '왕돌잠 대게‘는 '옹골지고 맛 깊은' 영덕대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 영덕 대게.

30~40년 전만 해도 영덕 대게는 영덕군 일대 해안 모래밭까지 기어나와 돌아다녔고 마을 아낙네들이 찐 게를 망태에 담아 팔러 다녔다고 한다. 요즘엔 한 해에 일제 때 생산량의 10%인 300t을 잡는다.

영덕은 서울쪽으로부터 가장 외진 곳에 있어서 가보기가 쉽지 않다. 그 덕에 자연이 잘 보존되어 역설적으로 '더욱 가볼 만한 곳'으로 남아 있다. 예전 드라마(<그대 그리고 나>)도 일부러 외딴 작은 포구 강구항을 무대로 삼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해 당시 그 드라마 덕으로 200억원 가량의 관광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대게 원조 마을을 알리는 비석.

활력 넘치는 겨울바다와 영덕대게라는 토종 별미거리는 마땅히 갈 곳을 못 찾는 겨울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기에 족하다.

영덕대게,  지방분 적고 단백질 풍부

대게에는 단백질 함량이 많고 지방분이 적어 소화가 잘 되므로 회복기 환자와 발육기 어린이들에게 좋다. 또 몸을 차게 하는 성분이 있고 알코올 해독작용이 있어 술 안주로도 좋다. 식초로 조리한 게를 꾸준히 먹으면 기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대게류에는 크게 나눠 대게와 홍게가 있다. 홍게는 몸통이 다 붉은 색이지만 대게는 배가 하얗다. 같은 대게에도 박달대게, 참대게, 물대게가 있다. 박달대게는 살이 꽉 차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 물대게는 아직 덜 여물어서 속살 대신 물이 차 있다. 참대게는 그 중간것이다. 최근에는 독도 근해에서 홍게와 대게의 중간인 '너도대게'도 난다. '빵게'라고 하는 대게 암컷은 번식을 위해 잡기를 엄금하고 있다. 그러나 동해안 일부 포구에서는 빵게가 진폐증 특효약으로 밀매되고 있다. 대게는 똑같은 크기에도 살 찐 정도, 맛, 빛깔, 나는 곳에 따라 2만원에서 10만원까지 값이 다르다. 홍게는 대게 값의 20% 수준이다. 대게는 가운데 다리 1개나 뒷다리 2개가 없어도 상품가치가 있지만 집게다리가 없으면 값을 못 받는다. 몸통에 '갑낭'이라는 검은 반점이 많이 붙은 것일수록 상품이다. 갑낭은 대게의 먹이를 얻어 먹는 일종의 기생충으로 그 수는 대게의 왕성한 먹이활동에 비례한다.

 찌는 방법따라 맛 천차만별

대게는 찌는 방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영덕지방에서는 가마솥에 참나무숯으로 대게를 쪄왔다. 배가 위를 향하도록 게를 뒤집어놓고(국물을 잃지 않도록) 배위에 솔잎을 5개 놓고 삼베로 덮는다. 게 특유의 역겨운 냄새를 없애거나(삼베) 향기로 변하도록(솔잎) 하는 것이다. 어떤 집에서는 '황토구이'를 하는 등 약간씩 차이나는 비법이 50여가지 전해온다.

■강구항 가는 길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영덕까지 직행버스가 하루 1회(12시 출발) 있다. 6시간. 포항까지 항공편이 하루 8회 있다. 포항에서 강구까지 버스로 1시간30분 걸린다. 기차로 영주나 안동에 내려서 가는 방법도 있다. 승용차는 '서울(중부고속도로)-음성-충주-수안보-안동-영덕-강구'의 순서로 간다. 6시간. 강구항에 여관과 영덕대게 전문식당이 많다. 우리나라 유일의 화석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