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 후에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최근에 상상해 본 적이 있다. 10년이 지난 그때도 여전히 우리는 '10년 후의 모습'을 꿈꾸고 있을까? 우리는 현재의 문명이 태동했을 때부터 계속 이 길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걸었지만 이내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뛰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뛰어가는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산업과 과학기술, 문명의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고, 우리는 우리가 달리는 열차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를 타고 있다. 이 길이 바른길임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아서 계속 같은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금씩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탄 이 열차에 혹시 기관사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조금씩 커진다. 창밖을 보이는 풍경은 더욱더 황량해지고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는 것이다. 이 길을 가다가 산기슭과 충돌하거나 벼랑 아래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매일매일 스친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달리고 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방향을 바꿀 수도, 후진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결국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길을 가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될 테니 우리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쉬고 내쉬면서 가슴 속의 긴장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실제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인생의 진리를 진지하게 파고들었던 노자(老子)는 이렇게 설파했다.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도착점이 될 것이다." 나는 노자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목적을 설정하며, 계획을 짜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당신의 뇌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고 대답하려 했다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 당신의 뇌는 둘 중에 무엇이 기본 모드인가?"

이런 가정을 해보자.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집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다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그 생각은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하늘에서 커다란 돈 가방이 떨어지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슨 문제가 생겼지?"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에 십상이다.

이것이 뇌의 기본모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적 편향'이라고도 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나. 혹은 잘못될 수 있나?'라고 생각하며 바짝 경계하는 부정적 예감의 상태다. 이 기본 모드가 사실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이런 반응은 현실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당신의 목숨이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좋은 일은 일어날수록 더욱 좋을 뿐이다.

그러나 나쁜 일은 단 한 번 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호랑이나 독사를 마주치거나, 벼락을 맞거나, 무장 강도의 공격 등이 그렇다. 이런 일은 단 한 번만 일어나도 당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우리는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를 터득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적으로 편향된 경계 모드를 뇌 속에 만들게 되었다. 이 기능은 수백만 년 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우리 뇌 속의 이런 기본 모드 때문에 우리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면 모두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무엇인가를 '위협'으로 인식하면, 우리는 자동으로 자신의 영역을 '위협'에서 '분리'시키고, 자기 주변 상황을 통제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위협, 분리, 통제는 우리가 보통 '에고'이라고 부르는 분리된 개체적 자아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 그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에고는 고립적이고 자신의 한계 속에 갇힌 존재로, 상상으로 지어낸 허구인데도 우리의 인식이 근원적인 존재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에고가 실재한다고 믿는다.

수 세기 동안 인류는 행동 양식을 세련되게 다듬어왔지만, '나는 세상과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다.'라는 기본 인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렇게 오래 묵은 인식이 반영되어 우리가 세상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그다지 변화가 없다.

에고의 눈에 비친 세상의 관점은 정말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사실상 인류사의 대부분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면, 과연 그 관점이 옳고 타당한지 의문스럽다. 그런 관점은 과연 올바른 인식일까? 삶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일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의 방식이 '악하기'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방식을 유지하기에는 우리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인류의 미래만이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해 지구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되었다. 지금까지 수만 가지의 종들,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며 매혹적인 그리고 그 종 자체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 중요한 수만 종의 생명체들이 멸종되었다. 우리가 현재의 방식을 고수하면, 결국은 세상과 우리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세계를 서로 적대적이고 서로에게 위협적인 개체들이 모인 집합으로 보는 눈에서, 세계를 살아 있는 전체 속에서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된 존재들의 네트워크로 보는 눈으로의 변화다. 나는 이 변화를 '에고의 눈'에서 '타오의 눈'으로의 전환이라고 부르고 싶다.

타오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매우 다르게 보일 것이다. 에고의 눈으로 봤을 때 위협으로 보이던 것이 전체라는 큰 그림 속에서는 변화로 보일 것이다. 만물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분리는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변화, 연결성, 자연 그리고 타인과 공존하는 지혜, 이것이 타오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특징이다.

 

    

 

    이 승 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뇌교육 창시자
국학원 설립자
한국인 최초 美 4대 일간지 베스트셀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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