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죽음의 존재를 망각한 채 살아간다. 때때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시간이 자기 것인 양 착각하며 삶을 의미 없이 소진하기도 한다.

물론 나란 존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인생의 소중함을 놓치기 십상이다. 굳이 이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재난영화 속 숱한 위험과 고비의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죽음이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님을, 늘 내 옆구리 옆에서 맴돌고 있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뎌진 생의 촉을 깨우는 이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What are you doing with the rest of your life?”
“당신은 남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구의 종말’에 관한 영화다. 소행성 마틸다와 지구의 충돌을 막는 마지막 프로젝트가 실패하면서 사람들에게 남은 시간은 오직 21일. 단 3주의 시간을 앞두고 저마다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주인공 도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딱히 모르겠다. 아내도 도망가고, 친구들이 벌이는 파티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 페니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집으로 잘못 배달된 그의 첫사랑 올리비아의 편지를 전달받게 된다. 연이은 폭동으로 급하게 페니와 함께 집을 빠져나오게 된 도지는 그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세 부류로 갈렸다. 인생의 허망함을 달래고자 술과 파티를 즐기거나 일탈을 일삼는 사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자살로 마감하는 사람, 죽음을 앞두고도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인생을 평온함으로 꾸려 나가는 사람이 그들이다.

인생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강철처럼 마음을 옥죄던 가면을 벗어 보이는 것일까. 종말이란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은 억눌린 욕망을 표출함과 동시에 진정한 자아의 모습과 소망을 찾아낸다. 도지 역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만나 분노의 감정을 보이지만, 죽음은 이내 분노를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어 놓는다.

▲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하며 페니와 도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페니 “너무 무서워요.”
도지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페니 “어찌 보면 우리가 서로를 구한 셈이에요.”
도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당신이에요. 당신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

함께 여행하며 새로운 사랑과 자유를 깨달아가는 페니와 도지. 그들이 이번 여행길에서 얻은 것은 '지금'이란 시간의 소중함 그리고 '현재'에 피어나는 사랑이다. 도지는 올리비아를 목전에 두고 결국 발길을 돌린다. 첫사랑은 흘러간 과거의 기억일 뿐, 지금 느끼고 있는 사랑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평온한 죽음을 맞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과연 우리도 저들처럼 공포가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사랑을 이야기하며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죽음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법과 윤리, 부와 명예, 미움과 후회도 모두 무(無)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비워지는 순간 참 평화와 사랑이 찾아온다. 매 순간 인생의 초점을 영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죽음 앞에 선 것과 같은 깨어있는 의식이다.

"만약 당신의 인생에 단 21일 만이 남아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인생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디자인하라. 인생의 창조자는 당신, 바로 당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