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는 북한산성 2차 답사로 서울 불광동 장미공원에서 탕춘대능선을 따라 비봉, 승가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차가운 기운이 옷깃을 파고드는 늦가을. 많은 등산객이 북한산을 오르고 있었다. 서울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명산임을 입증하는 광경이었다. 북한산성은 산세가 험난한데다 굴곡이 심하고 큰 바위들이 많아 지형을 이용한 자연스런 축성법이 사용되었다. 또한 한양도성을 쌓은 직후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축성기술을 볼 수 있다. 돌을 크고 반듯하게 하여 각 면과 모서리를 세밀하게 다듬어 쌓고 작은 석재와 진흙을 채워 보강하기도 하였다.

▲ 멀리 북한산의 비봉, 승가봉 등이 보인다.<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먼저 도착한 곳은 탕춘대성. 탕춘대성은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이다. 도성과 외곽성(북한산성)의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탕춘대성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가 가까이 보이던 것과 관련이 있다. 왕위에 오른 초기 백성들을 위한 많은 일들을 했던 연산군이 폭군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과 괴로움이 있었을까? 탕춘대에서 유희를 즐기는 연산군을 떠올려 보면 행복한 웃음이 아니라 울음보다 더 괴로운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 탕춘대성 암문.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북한산 비봉은 봉우리 정상에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데서 비봉이라 이름 지어졌다.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새로 확보한 영토의 국경을 직접 들러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순수(巡狩)란 왕이 자기의 영토를 둘러보는 것을 의미한다. 진흥왕 순수비는 현재 북한산비, 경상도 창녕비, 함경도 황초령비, 마운령비 4개가 있다.

▲ 국보 3호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비에 새겨진 글자는 마멸이 많이 되어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지역순시를 칭송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 무학대사비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이후 추사 김정희가 이 비를 직접 찾아 비문을 탁본하여 연구한 결과 68자를 읽어냈고 바로 이 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냈다. 이 비석의 옆면에 김정희 자신이 이 비를 찾은 날짜와 이 비가 바로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을 새겨놓았다. 국보 제 3호로 지정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훼손을 막기 위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한다. 현재 이곳 비봉에 세워져 있는 것은 2006년에 복제하여 세운 것이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비봉에 올라서니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진흥왕이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영토는 이곳 한반도뿐 아니라 저 대륙이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곳을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수도의 외곽을 방어했던 북한산성곽.<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북한산은 바위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크고 멋진 바위들이 많이 있다. 어미의 등에 업힌 아기물개 모양의 바위는 마치 조각 작품같이 부드러운 곡선과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족두리 모양의 족두리봉도 있고, 비봉에는 코뿔소 모양의 바위가 있어 코모양의 돌에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아래의 낭떠러지 때문에 아찔해 보인다. 비봉 가까이에 있는 사모바위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바위를 오르고 있었다. 바위의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사모바위 아래에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공격하러 침투했던 1.21사태 때 은거했던 굴이 있다. 이때 북한군 28명이 사살되고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굴’이라고도 불린다.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을 마주하니 우리가 현재 휴전 상태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하루빨리 통일하여 선조들의 자랑스런 역사를 되찾는 날을 기원하게 된다.

▲ 코뿔소를 닮은 바위.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출발할 때 멀리 산 정상에 보이는 비봉을 바라보며 저렇게 먼 곳을 오늘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시민연대 회원들과 성곽 옆 숲길을 따라 가을낙엽과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걷다보니 어느덧 비봉에 올라와 서있었다.

▲ 엄마 등에 엎힌 새끼 물개의 모습을 닮은 바위.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우리의 인생도 이와같지 않을까? 가파른 오르막을 숨이 끊어질 듯 오르면 어느새 편안한 숲길이 나오고 또 험한 바위를 힘들게 오르면 아래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멋진 풍광과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끼는 것. 한걸음 한걸음 포기하지 않고 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염원하던 그 곳에 도달해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비록 왜곡된 역사로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잃고 좌절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바른 역사와 국학을 알리는 일에 포기하지 않고 해나간다면 언젠가 우리도 자랑스런 역사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답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