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단군이 ‘홍익인간 이화세계’ 라는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이 땅에 나라를 세운 이후 우리 민족은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왔다. 조상들은 삶의 목적을 인간완성에 두고 수천 년간 홍익의 높은 정신을 생활화하고 깨달음의 선도문화를 이 땅에 꽃피웠다.

그런 문화와 전통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외세에 의해 왜곡되고 외래문물에 오염되기에 이르렀다. 외세가 물러간 뒤에도 우리는 우리 민족 본래의 중심가치와 철학을 되찾지 못했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단군성전 건립을 반대하는 일까지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우리 역사를 그 후손들이 부정했던 것이다.

그때 한 젊은이가 분연히 일어섰다. 1980년부터 국학운동을 펴온 이승헌 박사(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였다. 그는 민족정신과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1987년 이 총장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를 대회장으로 하고 집행위원장을 맡아 ‘민족정신광복국민운동본부’를 창립하고 ‘국조 단군 숭봉 국민대회’를 개최해 단군이 국조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로부터 우리 민족의 중심가치와 철학을 회복하려는 국학운동이 전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 국학운동은 1992년 개천절 축제로 다시 한 번 활짝 핀다. 전국 국학운동가들이 강화도에 모여 국조 단군의 건국이념을 이어받자는 잔치를 벌였다. 이 개천절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국민축제가 되었다.

1997년 8월 민족정신광복 기념대회도 국학운동에 큰 전기가 됐다. 그해 독립기념관에서 무려 4만 5천여 명이 모였다. 이후 ‘2001년 지구인 선언대회’, ‘2002년 개천절 경축 10만 세계지구인 축제’로 발전하여 많은 외국인이 함께 했다. 홍익인간 정신이 모든 나라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지구인의 철학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총장은 1999년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 건립을 제안, 순식간에 전국 초등학교 등 360곳에 단군상이 세워지게 됐다. 그 단군상은 단군이 우리 국조이고 홍익인간이 건국이념이며 세계 정신 지도국으로 우뚝 설 위대한 철학을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2002년 충남 천안에 세워진 국학원은 학술과 문화NGO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역사의식을 깨우치는 국학원 국민강좌가 2002년 9월부터 매달 열리고 역사학자들의 깊이 있는 한민족 고대사 연구가 발표되는, 단군과 고조선 학술회의가 매년 열린다.

또 2001년 단군 숭모 음악회, 2003년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동상 제막, 2004년 뮤지컬 ‘하늘의 연인 웅녀’ 공연 등 예술을 통해 단군과 홍익정신은 되살아났다.  

2004년 본부를 개원한 국학원에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중심철학과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겠다.”는 설립자 이승헌 총장의 국학운동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지금까지 학교와 관공서, 군부대, 기업 등 100만 여 명이 이곳에서 실시하는 국학교육과 민족혼 교육, 효충도 캠프를 통해 새로운 한국인으로 거듭났다.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제 국학강사로 전국 각지에서 국학을 이끌며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일찍이 백암 박은식 선생은 국토를 빼앗기면 되찾으면 되지만, 국혼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 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우리의 국혼이 있었기에 오늘 한민족의 얼굴인 고조선의 역사부활이 가능했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스스로 밝은 미래를 창조하며 인류의 정신지도국이 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때다.


1987년 이승헌 박사는 고 안호상박사 등 민족원로들과 함께 민족정신광복운동본부를 창립했다.


1999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전국 초· 중· 고교  및 공원 등에 369기의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이 건립됐다.


2002년 10월 3일, 단기 4335년 개천절을 맞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는 10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지구인축제’가 열렸다.


2005년 국학운동시민연합 등 5개 시민단체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고고학 연표에서 고조선이 누락된 것에  거세게 항의하여 오류를 시정했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및 독도문제에 대응하는 국내 활동 중심 속엔 항상 국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