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는 지난주 창덕궁에 이어 창경궁을 다녀왔다. 창경궁은 대비, 왕비, 후궁들을 모시기 위해 궁을 확장하여 세운 별궁이다. 여자들의 궁이다 보니 이곳 창경궁에서 출산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정조, 순조, 헌종, 사도세자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중종, 정조는 이곳에서 승하하기도 했다.

▲ 국보 제 226호인 명정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의 정전이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왕궁 중 유일하게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지어졌다. 형식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별궁이었기 때문에 자연의 지형을 따라 동향으로 지은 것이다. 창경궁의 중심 건물인 명정전은 다른 궁궐에 비하여 규모가 작은 단층 건물이지만 1616년에 지어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되었다. 

▲ 경춘전에서 정조와 헌종이 태어났다.

명정전 뒤에는 숭문당이 있는데, 이곳 현판은 영조의 글씨이다. 영조는 학문을 숭상하고 인재를 양성해서, 이곳에서 친히 태학생들을 접견하여 시험도 치르고 공부도 하였다.  외전과 내전을 잇는 통로를 지나 빈양문을 나서면 생활공간인 내전이 나온다. 내전의 가운데 함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영조가 장원 급제한 이를 접견하고 어사주를 내린 곳이라고 한다. 학문을 사랑하고 나라의 인재를 길러낸 곳.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 숭문당은 학문을 사랑한 영조가 자주 이용한 곳이다.

창경궁은 궁궐의 일상생활 장소인 내전 공간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 등은 주로 왕후들이 생활했던 곳이다. 특히 경춘전에서 태어난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평생토록 지냈던 창경궁을 소중히 여겼다. 또 비운의 죽음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시는 경모궁을 창경궁 맞은편인 현재의 서울대학병원 자리에 짓고 마주볼 수 있게 하여 어머니를 위로했다. 충을 강조하기 이전에 효를 행했던 정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린 임금이었기에 백성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지 않았을까?

▲ 성종대왕 태실과 태실비. 이곳에 성종의 태반이 모셔져있다.

이곳 경희궁은 숙종이 사랑했던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거처했던 곳이다. 왕비와 후궁이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고 하니... 그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심했을까? 장희빈은 지금은 건물이 없어졌지만 창경궁에 있었던 취선당이라는 곳에 기거하고 있었고, 그 옆에 사당을 지어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굿을 했다고 전한다.  이것은 단순한 여인들의 시기, 질투라기보다는 그 당시 정치세력간의 암투에 휩쓸려 희생양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도 이곳 창경궁 뜰에서였다. 정치와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을 엽기적으로 죽인 영조. 자신의 마음속에 탐, 진, 치.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있음을 살펴 경계하지 않으면 세상에 휘둘려 큰 후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하고 많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궁안의 건물들을

▲ 궐내각사터는 궁궐에 딸린 관청들이 있던 자리이다. 일제가 이곳을 동물원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대부분 헐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고 일본 국화인 벚꽃을 심어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한 나라의 임금이 살던 곳에 동물들을 풀어놓다니... 그뿐 아니라 원래는 종묘와 연결되어 있었던 창경궁을 맥을 끊기위해 그 사이에 도로를 놓아 궁궐의 품격을 훼손시켰다. 해방 이후에도 계속 동식물원으로 이용되다가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복원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 대온실은 1909년 일제가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 대춘당지는 궁내의 농사를 짓던 곳인데 일제가 연못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가을의 고궁을 거닐며, 그 오랜 세월동안 궁의 역사를 떠올려보았다. 왕세자의 탄생을 기뻐하고 왕의 승하 소식에 곡을 하는 모습. 임금의 사랑을 받아 기뻐하는 왕비와 후궁들의 모습. 서로 시기, 질투하는 여인들과 세력다툼 하는 모습. 아들을 뒤주에 가두고 굶겨 죽이는 왕의 모습. 나라를 빼앗기고 궁궐에 진동했을 동물들의 냄새. 그 오랜 시간 희로애락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창경궁의 나무와 돌, 전각들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회원들을 지켜보는 따스하고 기대에 찬 시선이 느껴지는 답사였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교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