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번 답사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고궁인 창덕궁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 대부분의 궁궐이란 것이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편평한 땅에 대칭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창덕궁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따라서 지었기에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았다. 경복궁과 달리 아기자기한 구조로 이루어져 조선의 왕들이 경복궁보다 이곳 창덕궁을 더 편안해했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선정전은 청기와로 지붕을 이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른 아침임에도 외국인 관광객들과 촬영을 위해 찾은 사람들까지 많은 인파가 가을 고궁을 가득 메웠다. 창덕궁은 전통적인 궁의 모습과 좀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주요 행사를 한 인정전에는 특이하게도 커다란 전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1908년 전기시설이 가설되면서 인정전에도 전등을 달았다고 한다.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궁궐의 전각 중 유일하게 남은 청기와 건물이다. 말로만 듣던 청기와를 직접 눈으로 보니 화려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자동차가 정차할 수 있는 남행각 정문.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희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남행각 정문은 구한말에 자동차가 정차할 수 있도록 변형하여 특이한 모습이다. 희정당의 내부 응접실에는 소파 등 서양식 가재 도구가 놓여 있다. 희정당은 여러 번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되는 과정에서 규모와 용도가 많이 변했다. 새로운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강제로 들어오면서 다소 어색한 부분도 보였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무력하게 일제의 침략을 바라봐야 했던 우리 민족과 임금의 비애가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 희정당에는 서양식 가구가 놓여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희정당 뒤편에 있는 대조전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승하하신 곳이다. 대조전에는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과 왕비의 침실이 나뉘어 있는데, 왕비의 침실에는 특이하게 침대가 놓여 있다. 수라간도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주방이다.
▲ 창덕궁 후원에는 연못 부용지와 정자인 주합루가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창덕궁의 정원인 후원이다. 후원은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한다. 시간에 맞춰 후원 입구에 모여 외국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비밀스러운 정원으로 향했다. 후원은 자연 그대로의 뒷동산이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초가로 지붕을 이은 정자.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조선 왕조 전 시기를 통틀어 왕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넓고 아름다운 이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궁 바깥으로 나갈 수 없고, 새벽부터 공부와 회의, 잠자는 곳까지도 정해진 대로 살아야 했던 임금은 이곳에서 위로받았으리라. 그런 임금의 생활을 상상하니 인간적으로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을 지나 임금이 신하들과 잔을 띄워 풍류를 즐겼던 옥류천. 그 옆에는 현존하는 정자 중 유일하게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이곳은 임금이 손수 농사를 지어보며 백성들의 땀과 수고를 새기기 위함이다.
▲ 창덕궁 후원은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비밀의 정원이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마지막으로 본 낙선재는 그야말로 구한말의 가슴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이곳은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거처했었다.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1963년부터 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이기도 하다. 고종의 외동딸인 덕혜옹주는 고종이 죽고 일본에 끌려가 강제 결혼, 딸의 자살, 실어증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정략 결혼한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도 덕혜옹주와 살다가 19894월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났다.
▲ 낙선재는 덕혜 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통해 우리 민족의 소박함과 지혜를 볼 수 있는 창덕궁. 그와 동시에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궁을 통해 인간의 운명은 국가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임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