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한 연구재단(MUNK)이 <중국이 21세기를 주도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중국이 21세기를 주도한다는 이야기는 곧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 같이 들리지만, 중국도 옛날에는 세계를 지배한 초강국이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중국은 한漢, 당唐, 원元, 명明, 청淸 등 역대 왕조가 번갈아 동아시아를 제패하였다.

중국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근대에 서구세력이 동양을 침략해 온 이후의 일이며 최근에 가까스로 세력을 만회하여 미국의 대를 이어 초강국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수소문하게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라 하면서 세계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패권을 쥐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으니 이를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라고 하고 있다.

미국의 평화란 미국이 세계평화를 보장한다. 미국의 동의 없이 평화를 운운하지 말라는 뜻이다. 150이 넘는 크고 작은 나라들을 한 나라가 다스린다는 것, 세계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날이면 날 달이면 달 사건이 없는 날이 없다. 그러니 이 나라 저 나라 일들을 일일이 간섭하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즘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썼다 하여 미국이 화가 났으나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고 영국도 슬그머니 발을 빼니 미국이 혼자 돈을 써서 전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불안하다.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설혹 미국이 여러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리아를 포격한다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러니 돈이 없으면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난 날 로마제국, 스페인, 영국이 차례로 제왕자리를 차지했다가 물러난 것이다.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 사건 직후 나는 중국 북경을 방문 아니 관광하면서 놀랐다. 중국이라면 대국이 아닌가. 그런데 그 대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이런 나라를 우리 선조들이 대국으로 섬겼는가 생각하니 한심했다.

그 이전에 타이완을 방문하여 우리보다 중소기업이 앞섰다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과 30여 년 차이에 중국이 경제와 군사로 대국이라 하니 네 마리 용이라 했던 타이완과 우리나라는 무엇인가.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놀라운 일이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보고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공인하였다. 일본 천황을 보고도 90도 각도로 절을 하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할 일이나 어찌 되었건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대국이 되고 미국은 불안해 보인다. 미국은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소련, 지금의 러시아와 동서냉전을 벌여 45년간 세계를 양분하다가 갑작스러운 소련제국의 사망으로 미국이 유일한 초강국으로 패권을 잡게 되었다. 참으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귀신도 놀랐을 것이다.

그때 나는 소련과 루마니아를 방문하고 두 나라의 빈곤상을 목격하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시베리아의 하바롭스크 공항에 내려 보니 수십 대의 전투기가 날개를 접고 편히 쉬고 있었다. 기름이 없어 날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맞서서 으르렁 대던 소련의 말로가 이렇구나 싶으니 제국의 흥망은 한 순간이구나 생각했다.

 같은 무렵 아내와 함께 서독을 갔는데 소련 군대가 삼엄하게 지켜보는 베를린 장벽을 넘어 동베를린으로 갔다. 그런데 동베를린의 전철이라는 것이 고철덩어리가 아닌가. 그런 고철 전차에 손님이라고는 동독의 딸 집을 찾아가는 노파 한 사람뿐이었다. 소련의 멸망을 실제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미국은 전성기에 있었고 소련이나 중국은 형편없이 가난한 나라요 미국과 싸울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나 마치 동서가 대등한 싸움군인 것처럼 선전하여 대중의 눈을 속였다. 그런 것을 본 나는 지금 미국이 망한다는 것은  분명히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상대도 안 되는 나라를 대국이라 치켜세워놓고서는 큰 싸움이나 벌어질 듯이 연극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케네디(미국대통령과 동명이인이다)라는 정치학자가 “미국은 일단 망하고 그런 뒤 다시 일어난다.“는 미국 망흥사亡興史를 저술하여 한때 지가를 올렸다. 참으로 웃기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속는 것이다. 그 대중 속에는 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나이가 젊으면 언론이 작은 일을 침소봉대하는 것을 모르고 속는다.

이석기 사건에 보듯이 대중을 민중이라 하면서 혁명을 선동하는데 어떻게 독일 같은 나라의 대중이 히틀러에게 속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인 것이다. 민중이라면 의식화된 대중이요 대중이라면 의식화되지 않는 민중인데 둘 다 바보인 것이다. 바보가 나라를 다스리면 히틀러가 되고 스탈린이 되는 것이다.

옛날 영국의 소설가 기본(Edward Gibbon 1737-1794)이 로마쇠망사興亡史를 써서 히트를 했고 갑자기 떼 부자가 된 일이 있었다. 케네디가 미국의 멸망을 구가하여 돈을 벌었듯이 그 옛날 기본도 벼락부자가 되었다.

기본은 로마는 야만(게르만)과 종교(기독교)로 망했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케네디는 망흥사요 기본은 쇠망사라 했다. 그러나 망흥사와 쇠망사는 다 같은 말이니 케네디가 기본을 표절한 것이다.

옛날 이병주란 소설가가 있었다. 실명을 들어내서 미안하지만 생전에 나와 아는 사이였다. “박 교수!”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얼마나 다작인지 신문잡지에 그의 소설이 실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리산』인가 뭔가 하는 소설 때문에 표절시비에 말려들어 홍역을 치렀다. 그러지 않아도 소설을 창작이라 하지만 모두가 가벼운 표절이다. 현대는 표절의 시대라고 한다. 옛날 가난한 시절에 어머님이 헌 옷을 뒤집어 새 옷처럼 꾸며 입혀 주셨다. 그것도 일종의 표절이었다.

그렇듯 <중국이 21세기를 주도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로마의 쇠망사를 표절한 것이다. 미국을 로마로 가정하고 중국을 게르만 야만국으로 바꿔 지어낸 소설이다. 중국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미국을 멸망시킬까. 무력인가 아니면 경제력인가. 미국이 망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 과정까지 예언할 수 있을까. 지난 날 독일과 일본이 미국을 잘 못보고 싸움을 걸었다가 망했다. 요즘에도 전기밥솥으로 대한민국을 뒤엎을 수 있다고 믿는 정신병자가 나타났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들이다. 세상을 장난으로 알고 국회를 혁명의 푸락지로 아는 50대 아이들이 한국에 나타난 것이다.

중국이 21세기를 주도할 것이라는 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 얼굴을 보니 모두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주 심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미국이 망하고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란 주제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토론에 출연한 젊은 중국인 학자도 “중국이 미국을 침략할 것 같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중국의 세계지배가 농담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