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원이 들어선 충남 천안 흑성산 자락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수련과 교육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름한 건물뿐이어서 새로운 교육시설이 절실했다.

사실 국학원이 하는 교육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국학원 교육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한민족 고유의 정신문화을 바탕으로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일을 국가가 하지 않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국학원을 세우고 국학원 전당을 지을 때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우리 힘으로 해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서글프기도 했다. 정부가 우리 것의 가치를 모르고 있으니.

국학원이 들어선 후 이곳을 방문한 중국 교수가 국학원이 하는 일을 듣고 이런 일을 왜 국가가 하지 않고 민간이 하느냐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뿌리가 되는 교육, 국학을 가르친다. 유대민족은 <탈무드>를 통해 그렇게 한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유교 등을 비판했지만 이후 인민대학에 '국학원'을 세워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그후 중국 정부는 공자학당을 만들어 전 세계에 세웠다. 중국어를 교육하고 유교 등 중국 사상을 가르쳐 알게 모르게 친중국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일본은 국학원대학이 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유럽 선진국을 쫓아가기 위해 유럽의 사상, 문화, 체제 도입을 서둘렀다. 그 결과 서구화 만능 풍조가 전 일본을 휩쓸어 일본 전통의 사상, 문물이 무너지는 상태가 되었다. 이를 우려한 일본은 국학원대학의 모체가 된 황전강구소(皇典講究所)를 세워 일본 역사, 사상, 문화 등을 연구하고 교육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고 우리 것을 소홀히 한다.

 일지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이 국학원을 세운다며 그 청사진을 밝혔을 때 그대로 이루어지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민족의 역사, 정신문화의 중심, 국혼 부활의 상징이 바로 국학원이 될 터였다.  국학원 공사를 지켜보며 완공된  후의 아름다운 국학원을 상상하면서도 저 많은 공사비를 어떻게 하나 걱정되었다. 외환위기 후 우리 경제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기업마다 투자를 줄이고 비용을 아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위기속에서 국학원 공사를 진행했으니, 이를 지켜보는 회원의 눈에도 그 어려움이 보였다. 더구나 국학원은 돈을 벌기 위한 투자가 아니었다. 기업으로 눈으로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기업이 민족 교육을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점에서 일지 이승헌 총장은 달랐다.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나와 민족과 인류를 위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비전을 이룰 전당을 짓고자 했다. 나라에서 이 일을 하여야 하나 나라가 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먼저 나선 것이다. 국학원은 우리 민족과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지구촌 공동체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홍익인간 정신과 천지인 사상을 널리 알리는 숭고한 일을 할 민족 정신의 중심이었다.

국학원 건물이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국혼이 부활하고 우리 역사가 부활하는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국학원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온 국민이 찾아와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자부심을 느끼고 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국학원이 완공되어 2004년 6월 국학원 개원식에 참석했을 때 눈물이 났다.  마침내 국혼이 부활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승헌 총장은 큰 붓으로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 지구경영'이라고 크게 썼다. 국학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한민족의 국학은 한민족만을 위한 국학이 아니라 지구를 위한 철학이니 지구경영을 이야기하는 게 당연했다. 국학원이 이 꿈을 이룰 터였다.

지금도 국학원에 가면 허허벌판이었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그 위에 아담한 전통한옥 건물인 국학원 전당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곳이 있는 한 우리 역사를 지키고 국혼을 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학원을 위해 작은 정성을 기부하여 국학원 벽에 사진이 붙여 있다. 국학원을 위해 정성을 바칠 기회가 내게 왔다는 게 지금도 소중하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