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
지난달 광복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고려 시대 대학자 행촌 이암(李嵒 ) 선생의 이 말을 인용하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첫째는 진정한 민족 사학을 이어왔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려 시대 학자를 대통령이 안다는 점이요, 둘째는 이암 선생이 그토록 강조했던 내용을 가져와 경축사에서 적절하게 인용했다는 점에서였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인용한 이암 선생은 누구인가.
행촌 이암은 고려 충렬왕 23년(서기 1297년)에 태어나 공민왕 13년(서기 1364년)에 사망했다. 충선왕 5년(서기 1313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충선왕이 그 재주를 아껴 부인(符印)을 맡기고 비성교감(祕省校勘)에 임명하였다. 충혜왕 때에 밀직대언 겸 감찰집의(密直代言兼監察執義)에 올랐는데 1332년 복위한 충숙왕은 이암이 충혜왕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로 섬으로 유배했다. 충혜왕이 1340년 왕위를 되찾자 유배가 풀리고 지신사(知申事)에 임명됐다. 충숙왕 때는 정방(政房)의 제조가 됐다.
공민왕 8년(서기 1359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문하시중으로 서북면도원수가 되어 외적을 격퇴하기도 했지만, 장수로서 큰 공을 세우지 못했다. 홍건적이 개경에 쳐들어오자 왕을 따라 남행하였다.

▲ 지난 8월15일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 중 일부를 게시한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이러한 전란을 겪으면서 이암은 그 원인을 역사를 통해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단군세기>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용한 글은 이 <단군세기> ‘서문’에 나온다. 이암 선생은 도를 잃어버렸을 때 나라가 망했다고 강조했다.
"아아! 슬프도다. 부여에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한(漢)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그 전에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 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더라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 갔을 것이다.
지금 고려를 보더라도 몽골인들이 정사(政事)를 간섭하여 왕위마저 좌지우지하는데도 조정 대신들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암 선생은 나라를 구하는 길을 이렇게 제시했다.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이 있어야 한다. (所謂 國有史而形有魂也)"
이는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 새겨야 할 말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교육을 외면하고 혼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역사를 무시하면 역사로부터 보복을 당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말도 무시한다.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어느 나라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암 선생은 <단군세기> ‘서문’에서 이를 일깨웠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우리얼찾기’에 나선 우리얼찾기국민운동본부가 올해도 우리 역사와 얼을 찾기에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얼찾기본부는 국사의 수능 필수 과목 지정과 대통령의 개천절 공식행사 참석, 단기연호를 함께 쓰기 100만 서명 운동을 전국에서 펼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는 국민이 단 한 사람이도 더 늘기를 바라며 뙤약볕을 아랑곳 하지 않고 뛴다. 이들을 보면 나 또한 가슴이 뛴다. 우리 역사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이런 모습을 이암 선생이 보신다면 <단군세기 서문>을 쓴 보람이 있구나, 여기지 않을까. 이암 선생의 <단군세기> ‘서문’을 읽고 선생의 절절한 심정을 느껴본다. 더운 여름날, 정신이 바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