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기고 간 선물…절망이 아니라 ‘희망’
아내가 남기고 간 선물…절망이 아니라 ‘희망’
  • 윤한주 기자
  • kaebin@ikoreanspirit.com
  • 승인 2013.08.29 0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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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뇌위축증 환우를 돕는 전덕만 씨

”내가 살아오면서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선택사항도 아니잖아요. 그걸 못 받아들이니깐 힘들더라고요. 특히 가혹한 것은 정신은 멀쩡해요. 그런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깐요. 고문도 보통 고문이 아니라 잔혹한 고문을 당한 거죠.”

전덕만 씨(56, 서울 금천구 독산동)는 2년 전 소뇌위축증으로 사별한 아내(故 노춘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소뇌위축증은 소뇌에 퇴행성 변화가 오고 크기가 줄어들어 운동기능을 상실하는 병이다.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 병을 앓고 있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질환이다.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만난 전덕만 씨는 “집사람은 10년 이상 에어로빅, 수영, 등산 등 운동 마니아였어요. 그런데 45세에 발병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 명상으로 소뇌위축증 환우회를 돕는 전덕만 씨(사진=윤한주 기자)

원인도 치료방법도 모르는 질병

전 씨 가족의 삶은 평범했다. 전 씨는 1989년 1월 결혼하고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었다. 그는 우체국을 다녔고, 아내는 농협 계열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

2005년 아내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병원도 가고 한의원도 갔다. 그러나 아내의 질환이 피로해서 그런 것 같다는 답변만 얻었다. 1년을 헤맨 끝에 병명을 찾았다. 소뇌위축증이었다.

“보통 병명을 찾는 데만 2~3년이 걸리고 5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굉장히 빨리 찾은 것이죠. 그때만 해도 발병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르니깐 너무 갑갑했습니다.”

사람의 두뇌에서 소뇌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발음의 정확성과 몸의 조화로운 움직임을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소뇌위축증은 일반인들은 물론 의사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에 따르면 환자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환자수는 정확히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집사람이 처음에는 혼자 걸어 다녔어요. 그러다가 2~3년이 되니깐 부축하게 되고 나중에는 휠체어를 탔습니다. 발병하고 처음으로 차를 샀어요. 집사람이 움직일 수 없으니깐 퇴근하면 드라이브하는 것이 일이었어요.”

한의학, 대체의학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균형감각이 없으니까 (눈으로 보는) 땅바닥이 높다가 낮다가 그래요. 글도 쓰지 못하고 혀도 꼬이니까 발음도 잘 못했어요. 집사람이 숨 쉬는 게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면 목에 구멍을 내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자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1주일 입원하고 치료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못하고 보낸 거죠.”

아내와 사별한 이후 전 씨의 몸은 아프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병원을 안 다녔어요. 농담으로 병원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깐요. 집사람을 보내고 우울증이 왔어요. 집사람이 아플 때는 걷지를 못하니깐 계속 차로 드라이브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없으니까 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 누워만 있는 거 에요. 그러다보니 몸도 움직이기 싫고 병이 생긴 것 같아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37일 동안 입원했어요. 그리고 퇴원하고도 어깨가 아프고 다시 일주일 입원하고 그랬어요.”

전덕만 씨는 병원과 한의원을 가느니 단월드 수련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6월부터 명상을 시작했다.

“밤에 잠을 자면 자다가 깨고 그럴 때가 있었어요. 수면제를 먹고 그랬으니 깐요. 이전에는 자다 깨면 어떻게 다시 자야 할까? 굉장히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젠 고민이 없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수련법이 있으니 깐요. 발끝 부딪치기나 그런 수련법을 하다 보면 자게 되고, 지금은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아픔을 딛고 명상으로 희망을 찾은 전덕만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나만의 건강을 넘어

하루에 5~6시간씩 수련을 받았다. 어느 날은 휴가를 내서 센터 문이 열리는 10시부터 문이 닫히는 22시까지 있었다. 그가 명상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에만 머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몸을 나아야겠다고 시작했어요. 내 몸이 낫고 나니깐 남도 나을 수 있겠구나. 나 혼자 하면 죄악이다.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겠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소뇌위축증 환우회였어요.”

환우회는 소뇌위축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온라인 카페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직접 만나는 활동을 한다.

전 씨는 명상 트레이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어 장소를 센터로 하게 되자 환우회 커뮤니티에 ‘소뇌활성화를 위한 운동방안교육‘을 공지했다.

지난 24일 첫 강좌는 성황리에 열렸다.

“15명 전부 왔습니다. 11시 시작인데 (환우들은) 1시간 전 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먼저 장소가 시내와 가까워서 좋아하더라고요. 이전에는 분당, 일산, 구리도 가고 그랬어요.”

머리를 살살 흔들어주는 뇌파진동과 단전치기는 환우들도 따라할 수 있는 명상 프로그램이었다.

“환우들이 넘어지니까 자신도 모르게 붙잡아요. 길러지는 것은 손목 힘이죠. 그래서 ‘손목 힘을 기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다리 힘을 기르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붙잡지 마세요. 먼저 중심을 잡고 걸으면 걸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용인에서 오신 연세 많으신 분인데, 수련장을 왕복으로 걷고 다시 또 걸으셨어요. 그때 환우도 놀라고 나도 놀랐어요. 따님이 고맙다고 전화가 오고 그랬어요. 비결은 본인이 마음을 바꾸고자 하니깐 모든 것이 바뀐 거죠.“

▲ 24일 소뇌활성화를 위한 운동교육이 열리는 가운데 한국소뇌위축증 환우들이 뇌파진동과 생명전자 명상 등을 체험하고 있다.(제공=단월드 여의도센타)

정말로 체인지(Change)하고 싶다면

그가 강조하는 것은 내가 나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실제로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환우가 많아요. 짐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내가 있으므로 가족에게 오히려 힘이 됩니다. 내가 없으면 가족은 더 절망하고 힘들어해요. 그런 것을 알고 스스로 나을 수 있다고 마음을 바꿔야 해요.”

전 씨는 보호자들에게 환우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의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고 죽지 못해 살아요. 그런데 소뇌위축증 환우뿐만이 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그냥 되는대로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나는 바뀌고 싶은데 옆에서 뭔가 해줘야지 바뀌지 내가 바뀌면 뭔가 손해 본다고 생각해요. 변화(Change)는 내 안에서 내가 먼저 시작해야 되거든요. 나는 안 변하고 불평불만하고 힘들다고 하면서 살고 있다고 봐요.”

그는 소뇌위축증 환우를 돕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라고 밝혔다.

“집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수련법도 알게 되고 소뇌위축증 환우를 돕게 된 것도 집사람 덕분이죠. 은인이라고 생각해요. 환우들의 아픔은 너무 잘 알고 있고 남의 일이 아니라 내 가족의 일이에요. 집사람은 이미 갔지만 소뇌위축증 환우들이 좋아진다면 집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뇌활성화를 위한 운동방안 교육은 9월 14일까지 매주 토요일 4회에 걸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단월드 여의도센타에서 진행한다. 전 씨는 교육이 끝나면 전국 소뇌위축증 환우를 위해 찾아가는 수련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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