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와 같았던 친구 넷으로부터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절교를 당했을 때 다자키 쓰쿠루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왜? 무엇 때문에? 갑자기 그룹에서 추방당해야만 했는지 그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게 모두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나고야에서 도쿄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것은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이다. 단호하게 거부당한 것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누구보다 신뢰하고 내 몸의 일부처럼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다. 일어서기도 힘들만큼. 속에서 뭔가가 잘려 나가버린 것 같다. 상실감, 고독감...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섯달 동안 죽음만을 생각했다.

 

두려움도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사실. 그 사실이 내 몸의 일부와 같았던 친구들이 나를 퇴출하게 만들었다. 원인을 따지고 들면 거기서 어떤 사실이 드러날지,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였다. 진상이야 어떤 것이든 그게 자신을 구해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려움은 고등학교 시절 함께 어울릴 때부터 있었다. 이렇다 할 특징이나 개성이 없어 네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다자키 쓰쿠루는 스스로 의문을 가졌다. 언젠가 친밀한 공동체에서 탈락하거나 방출되어 혼자 덩그러니 남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늘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방출당하고 보니 그 두려움이 고개를 쳐들었다. 쓰쿠루는 알지 못했더라도.

그래서 그는 도쿄에 돌아와 혼자 방에 틀어박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장애를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외면하고 말았다. 묻어두면 잊을 거고 아무리 큰 상처도 세월이 가면 해결해 줄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외면한 후 다자키 쑤쿠루의 인생은 바뀌었다. 그 스스로도 다른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남에게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또 그 자신에게도.   실제로는 사소한 인간도 보잘것없는 인간도 아니었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한 그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쿄에 돌아온 고독하게 살았다. 예전의 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와 사귀었지만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아도 될 여자하고만 사귀었다. 상대와 늘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했고 또한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자를 골랐다. 상처를 입지 않아도 되게끔. 서른여섯 살이 되도록 다자키 쓰쿠루는 홀로 살았다.

그는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고 소중한 장소를 잃었다. 다자키 쑤쿠루에게는 가야 할 장소가 없다. 그에게는 가야할 장소도 없고 돌아갈 장소도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낼 때 나고야는 그가 돌아가야 할 장소였다.  친구들에게 방출되고 나서 그에게는 향해야 할 장소도 돌아가야 할 장소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가 용기를 내어 과거의 상처와 대면한 후  알게 되었다. 신주쿠 역 벤치에 앉아서 수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을 보며 그는 확실하게 느꼈다. 특급 열차를 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일단 가야 할 장소가 있다.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가야 할 장소가 없다!  그는 고향을 잃었고 새로운 고향도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도시는 그에게 우연히 주어진 장소였다. 직장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 이상은 없는 곳. 다자키 쓰쿠루는 스스로의 인생에서 망명한 인간으로서 도쿄에서 살았다.  망명 생활. 다자키 쓰쿠루는 이러한 것을 잘 몰랐다. 그가 16년 전으로 돌아가 핀란드까지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오기까지는.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절교한 친구들이 그렇게 했다고? 아니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잘 몰랐겠지만 그가 선택한 결과였다. 다자키 쓰쿠루에게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위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회피는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했지만 속에서는 피가 흘렀다.

과거의 안 좋은 정보가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을 지배했다. 다자키 쓰쿠루의 주인노릇을 한 것이다. 방출당했을 때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했더라면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친구들은 다자키 쓰쿠루에게 절교 선언한 것에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다자키 쓰쿠루가 다 잘 견디어 내리라고 생각했다. 16년이 지나서 새삼스레 그 문제들을 들고 자신들을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 죽고 싶을 만큼 큰 고통이 다자키 쓰쿠루의 몫이었다.  서른여섯에 여자 친구의 권유에 이끌려 과거의 상처와 대면하여 상처를 바라보자,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하찮은 것일 수 있는데 당사자에게는 죽고 싶을 만치 고통스러운 게 얼마나 많은가. 다자키 쓰쿠루만 그러는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다자키 쓰쿠루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 이유와 그 결과를 다음 글이 잘 보여준다.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의 의식은 백지와 같지만, 나이가 들면서 온갖 정보가 들어와 관념의 껍질들이 만들어져 영혼을 두껍게 둘러싼다. 이러한 정보들에 싸여 자신의 참모습인 본래의 순수한 영혼은 가리워진다. 우리의 뇌가 이처럼 정보의 껍질에 둘러싸이게 되면 자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가아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

가아의 상태에서는 스스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의존적이 되고 비굴해진다." (일지 이승헌 『숨쉬는 평화학』, 한문화, 68~69쪽).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과거의 부정적인 정보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나의 뇌를 점검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