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수히 많은 변화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그 변화라는 것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원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변화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변화인가? 그렇지 않다. 변화는 멈출 수는 없지만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변화를 선택하고자 할까? 긍정적인 변화 혹은 발전적인 변화를 원할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한다. 이것은 그 동안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적인 진화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역사의 발전과 함께 인류의 역사를 주도한 집단이 있는가 하면 역사의 발전에 역행하여 인류 사회에서 사라진 집단도 있다. 세계관을 확장시켜서 지구의 역사나 우주의 역사를 보더라도 상황은 다를 바 없다. 분명 역사는 발전하지만 그 발전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받은 생명집단이 지구역사를 주도해 왔고 선택받은 인류 집단이 인류역사를 주도해 왔다.

 여기서 선택받았다는 것의 주체는 누구인가? 누가 누구를 선택했다는 것인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선택받았다는 것은 선택했다는 것이다.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졌지만 평등한 것만은 아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기회는 주어졌고 그 기회를 선택하고 집중한 집단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역사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흐르고 미래의 어느 한 지점에서 다시 오늘을 회고할 것이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역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미래를 창조하는 주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역사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역사를 주체적으로 수용 및 해석하고 과거의 사실을 통해 현재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며 현재를 정확하게 진단하여 미래를 창조하는 역사의 구조적인 틀을 갖고 있다면 그는 역사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매일 생명리듬의 변화를 경험한다.  똑같은 것 같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역사적으로 보면 다르다. 물리적인 형태가 달라진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의식에 따라 우리의 가치는 달라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어떤 행동을 하는 지에 따라 존재가치의 발현이 달라지는 것이다.

"진정 변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자기 역사에 관심을 가져라. 역사는 창조의 원천을 제공한다."

 사소(史所)한 질문, 즉 역사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나는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나?"
 "역사를 얼마나 알아야 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를 알고 있는 것과 알아야만 하는 것과의 차이는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
 "역사를 알면 아는 것만큼 보이고 그때 보이는 세상은 분명 다르다고 하였 는데, 역사가 과연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전혀 쓸모없는 무용지 물일까?"

 역사에 관한 선입견이 있다. 역사는 지극히 거창하고 막연한 존재이고 역사 너머에는 이념이라는 복잡하고 난해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것 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착각이다. 잘못된 역사교육 탓이 크다. 피해의식만 심어 주었던 역사교육은 또 다른 피해의식만 낳을 뿐이다. 왜, 한국인이 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 주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부모가, 학교 선생님이, 자녀와 제자의 손을 잡 고 민족혼이 서려있는 ‘경교장’을 데려가고, 하늘과 연결된 우리 문화를 체 험할 수 있는 마니산 참성단과 태백산 천제단을 데려가는 것이다. 대일항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대일항쟁기념관(독립기념관)과 고유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국학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

 과천지역 관악산 입구에는 단군상과 1대 단군왕검부터 47대 고열가 단 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국조를 소개하는 명소가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장승과 솟대 등도 접할 수 있다. 눈만 돌리면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면 역사교육을 교실에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눈을 돌려 가까이에 있는 우리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 관심을 갖고 그 곳을 역사교실 삼아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 교육이고 그러한 사소(史所)한 관심이 개인과 조직의 역사발전을 도모 하는 것이고 진정한 자기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개인의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개인의 일기가 위대한 역사서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일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해인 1598년까지 7년 동안의 쓴 일기로 전쟁의 참상과 전투 상황 등 전장의 기록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고뇌도 보여주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6월 광주에서 열린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에서 『난중일기』가 새마을운동관련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이 되었다. 이제는 전장의 기록을 뛰어넘어 세계의 기록이 된 것이다. 『난중일기」가 있는 아산 현충사에서는 세계기록유산 등재기념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난중일기』를 자녀에게 보여 주고 싶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일부를 보여 주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임을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동의보감』등과 이번에 등재된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기록물을 포함하여 총 11개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유네스코는 등재이유로 『난중일기』의 경우 해군 총사령관이 매일매일 전투상황과 심경 등을 기록한 보기 드문 기록물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새마을운동기록물의 경우 당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는데 초석이 되었으며 빈곤에 시달리는 인류에게 귀중한 자원이 될 것 같아서 등재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는 항상 그랬듯이 어떠한 변화를 원하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답한다. 조화와 상생을 바탕으로 한 국조 단군의 홍익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변화를 원한다고 말이다.

 단기 4346년 7월 31일

학교법인 한문화학원 법인팀장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