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지난 2002년 국학원(國學院)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국학’을 ‘국악’과 혼돈 하는 국민들에게 생소한 국학을 알릴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마저 소홀이 취급되는 국사교육을 보완하고 왜곡되어 가는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는 대중 강좌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저녁 7시가 되면 국민강좌가 열린다. 초창기 몇 년간은 세종문화회관 2층에서 열었다. 그러다 세종문화회관의 사정으로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몇 곳을 거쳐 요즘은 서울의 중심 경복궁 동문에서 바로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대한출판문화협회) 4층에서 진행된다. 그 흔한 승강기 없이 꼬불꼬불한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이 150여 석을 가득 채우고 앉아있다. 간단한 뇌체조를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끝나면 무대에 한 사람이 올라 마이크를 잡는다. 이달의 국민강좌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 국민강좌가 2013년 7월로 10주년, 120회를 맞았다. 지금까지 국민강좌를 통해 시민들에게 역사와 전통문화를 이야기한 강사들. [사진=국학신문사 자료사진, 국학원 제공]

 사단법인 국학원이 주최하고 서울국학원이 주관하는 국민강좌가 올해 7월로 10년의 역사를 꽉 채웠다. 120회 국민강좌가 열린 7월 9일에는 이를 기념하는 사진 촬영이 진행되었다. 장영주 국학원장(대행)과 1대 국학원장을 역임한 장준봉 국학원 상임고문, 성배경 국학원 이사장, 이날 강사로 나선 조용진 얼굴연구소장, 111회 강사였던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위원 등 국학원 관계자와 국민강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 자리에 섰다.

 장영주 원장은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뿌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시작된 것이 국민강좌”라며 “지난 10년 동안 국민강좌에 참석해준 시민들의 성원으로 이렇게 10년을 맞이하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 중에는 20대를 고스란히 국민강좌와 함께 지내며 30대에 이른 청년도 있었고, 매회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한민족 상고사(上古史) 박사’라 불리기를 자처하는 백발의 청년도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돋보인 인물은 바로 국학원 장준봉 상임고문이다. 1대 국학원장으로 국민강좌를 기획하고 발족시킨 주인공인 장 고문은 지난 120회 국민강좌 중 117회에 참석한 ‘최다 출석자’이기도 하다.

 국민강좌 10년에 대한 소회를 묻자 장 고문은 “국사(國史)가 주인공인 국민강좌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한민족의 상고사가 널리 알려지는 등 국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는데 다소나마 기여하게 되어 기쁘다”했다.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 음모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같은 역사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들에게 시의성에 맞는 전문 지식을 전하고 서로 교류하는 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국민강좌는 2002년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한민족’에 대한 국민의 갈증을 해소하는 창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유일한 역사 전문 대중 강좌였던 국민강좌는 그해 9월 제1회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극 <조선왕조 500년>의 신봉승 작가를 선두로 국내외 내로라하는 각 분야 역사 전문가들이 연단에 섰다. 한민족 고유의 정신문화와 가치, 철학의 전문가들이 국민강좌라는 무대를 통해 시민들과 만나고 토론의 시간을 가지면서 ‘국학(國學)’의 대중화와 공감대 형성에 앞장서왔다.

 특히 최근 청소년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사회 전반의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바른 역사를 알리는 국민강좌는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중요하다. 장 고문은 “국민에 대한 역사 교육을 다양하고 폭넓게 진행하는 전문 강연장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남북 갈등에 남남 갈등까지 첨예해진 오늘날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흐트러진 역사관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강좌의 사명이자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 8월호 <코리안스피릿>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