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기에 쌓인 채 ‘하늘을 감동시키는 정성’으로 삶을 시작한 배달겨레의 자녀들은 얼이 서린 ‘어린이’가 되고 얼이 너른 ‘어른’이 됩니다. 점차 늙어감에 극히 존귀한 존재가 되고 마음껏 장생하며 천지의 기운과 천지의 마음으로 삶의 사명을 완수하라고 가르칩니다. 

- 제 323조 극존 極尊 -
 “깨달은 사람은 큰 덕을 받아 큰 자리에 처하여 하늘과 땅을 맡아 사람에게 가르침을 편다.”
 (哲人 賦大德 處大位 司天地 布人族化.)

- 제 325조 상수上壽 -
 “상수란 양생에 있어서 절도가 있으므로 신선의 골격으로 화하는 것을 말한다. 신선은 태양의 정기를 받으며, 이슬을 마시고, 육체는 건강하고 기운은 맑으며, 따뜻한 옷을 휘날리고 단맛을 누린다. 그러므로 머리는 백발이라도 얼굴은 어린아이의 얼굴로 장수를 누린다.”

 결국 우리 선조들은 생을 마감하면서도 하늘로부터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 제321조 제8강령 응應 -
 “응답이란 악한 사람은 재앙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여섯 가지의 과(果)와 서른아홉 가지의 형(形)이 있다. (應者 惡受禍報 善受福報 有六果三十九形) 더불어 자신의 생이 마감이 되더라도 그 삶의 질에 따른 결과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자녀와 부인에게 미친다는 마지막의 형태를 엄중한 경각심으로 고취하면서 참전계경 역시 대미를 장식합니다.”

- 제366조 급자及子 -
 “급자란 아버지의 악함에 대한 대가를 아들이 받는 것을 말한다. 아들은 아비의 재앙을 받고, 악한 사람의 아내는 반드시 남편과 함께 재앙을 겪으며, 남편이 없는 여자는 자식과 함께 재앙을 겪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둔다.” “너의 작은 일거수일투족이 쌓여 결국 태풍이 되어 되돌아온다.” 라는 나비효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치밀하게 가르쳐줍니다. 이윽고 70세부터는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죽는 순간까지 “하늘이시어, 이제 제가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응답을 주소서.“라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대개 47분의 단군, 을지문덕, 김유신 등등 유명한 우리의 선조들이 말년에 산에 들어가 비록 나라를 위한 전쟁이었지만 자기로 인하여 다치고 죽은 군사와 백성, 나아가 적군의 군사, 백성들까지도 그 넋을 위로하면서 자신도 하늘이 부르도록 간절한 단식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려장 풍습’ 으로 자신이 죽음을 창조하는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죽음 마지 문화’ 입니다. 그러기에 고려장 터에서는 뼈가 발견 되지 않고 그 터에서 깨끗하게 굶어 돌아가신 시신을 거두어 따로 봉분을 만들어 안장합니다. 누가 이 위대한 문화를 불효자들의 몹쓸 짓으로 만들었는가? 과연 우리가 먹을 것이 없다고 늙고 병든 부모를 산에 버리는 민족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조차 창조하는 민족입니다.

 한민족의 얼을 깨우는 한얼칼럼 제1강 <참전계경>은 일지희망편지에 실린 '죽음의 창조'로 마무리를 합니다. 인간이 하늘에서 나고 몸집과 나라집, 지구집을 널리 이롭게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한민족 평생의 기획이며 경영인 것입니다. 
 

 죽음의 창조     

- 일지 희망편지

 죽음을 만드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떤 죽음을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 명품인생을 만드는가
뿌리를 모르고 짝퉁이 되는가는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인생을 만드는가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