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7만년 역사 6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조선(朝鮮) 제8대 우서한(于西翰) 천왕(天王)의 역사 -

[국자사부 유위자(有爲子)의 헌책(獻策)]

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국자사부(國子師傅)로 있던 유위자(有爲子)가 계책을 바쳐 올려 말하기를, “생각컨대, 우리 신시(神市)는 한웅의 개천(開天) 때로부터 무리를 받아들여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계율(戒律)로 세워서 교화(敎化)하였으되, 천경(天經)과 신고(神誥)는 조칙(詔勅)에 의하여 위에서 짓고, 의관(衣冠)과 대일(帶釰)은 아래로 즐거이 본을 보였으니, 백성들은 죄를 짓지 않고 함께 다스려져 들에는 도둑이 없어 저절로 편안하며, 온 세상의 사람들은 질병이 없어 스스로 오래 살고, 굶주림 없이 스스로 넉넉하며,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달을 맞아하여 춤을 추매, 멀리까지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고 흥하지 아니한 곳이 없었으니, 덕의 가르침은 만 백성들에게 더하여 노래하는 소리가 사해(四海)에 넘쳤사옵니다. 이러한 청이 있사옵니다(惟我神市 實自桓雄 開天納衆 以佺設戒 而化之 天經神誥詔述於上 衣冠帶釰樂効於下民 無犯而同治 野無盜而自安 擧世之人 無疾而自壽 無歉而自裕 登山而歌 迎月而舞 無遠不至 無處不興 德敎加於萬民 頌聲溢於四海 有是請).”하였다.

국자사부(國子師傅)는 국자랑(國子郞)의 사부(師傅)를 가리킨다. 단군조선 시대에 국자랑이라는 기관이 있었던 것이 되는데, 고려(高麗) 시대에도 같은 제도가 있었다. 신라시대의 화랑(花郞)이라는 제도에 해당한다. 국자랑은 글자 그대로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하여 심신수련(心身修練)으로 교육시키는 기관이 된다.

천제(天帝)의 아들이 천제자(天帝子)이며 천왕랑(天王郞)이 되는데, 한웅천왕(桓雄天王)이 한인(桓因)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천왕랑(天王郞)이었으며 천웅(天雄)이기도 한데, 서자부(庶子部) 대인(大人)으로 직을 수행하다가, 서기전3897년경에 한인천제의 명(命)을 받아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난(亂)을 진압하고 이화세계(理化世界),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펼친 것이 된다.

서기전239년에 백악산아사달을 차지한 해모수(解慕漱)가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며 실질적인 천왕(天王) 노릇을 하였는데, 이 천왕랑이 곧 천왕(天王)의 자격(資格)이 있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천제(天帝)는 단군조선의 천왕(天王)을 존칭한 것이 되며, 하늘로 돌아가신 천왕(天王)을 천제(天帝)라 부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천경(天經)은 천부경(天符經)을 가리킨다. 천부경은 무극(無極), 천지인(天地人) 삼태극(三太極), 다시 무한순환하며 변화하는 무극(無極)의 원리로써 역(易)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81자로 된 소위 조화경(造化經)이다. 신고(神誥)는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가리키며 천지인의 정의와 천지인 합일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366자로 된 소위 교화경이다. 이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참전계경(參佺戒經)과 더불어 늦어도 한국(桓國) 시대의 중기가 되는 서기전6200년경 이전에 정립된 것으로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갓을 쓰고 칼을 차고 다닌 것이 된다. 갓은 머리에 쓰는 모자인데, 벼슬(冠)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일반백성들이 차고 다니는 칼은 진검(眞劍)이 아니라 무딘 칼로서 수련을 위한 칼이 된다.

특히 갓(冠)은 단군조선 시대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에 글자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아마도 절풍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새의 깃(羽)을 갓(冠)의 옆쪽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백성들은 죄를 짓지 않고 함께 다스려져 들에는 도둑이 없어 저절로 편안하며, 온 세상의 사람들은 질병이 없어 스스로 오래 살고, 굶주림 없이 스스로 넉넉하며,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달을 맞이하여 춤을 추매, 멀리까지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고 흥하지 아니한 곳이 없었으니, 덕의 가르침은 만 백성들에게 더하여 노래하는 소리가 사해(四海)에 넘쳤다 하는 것에서, 배달나라 시대는 법은 있으나 법이 필요 없으며, 심신수련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농사법으로 풍년이 들어 풍족한 생활을 하며, 풍월(風月)을 즐기던 지상낙원(地上樂園)과 다름없는 홍익인세(弘益人世)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국자사부 유위자는 도해 천왕께 배달나라 시대에 행해진 교화(敎化)와 덕치(德治)를 본 받자고 방책(方策)을 올린 것이 된다. 이리하여 이후 도해(道奚) 천왕께서는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여 배달나라 시조 한웅천왕(桓雄天王)의 상(像)을 걸고 거발한(居發桓)이라고 부르며, 천지인(天地人)의 큰 도(道)와 큰 일(事)을 칭송하고, 한웅천왕의 교화(敎化)와 덕치(德治)를 칭송하였던 것이며, 이를 돌에 새겨 후세에 영원토록 전해지게 하였던 것이다.

[대시전(大始殿) 건립]

서기전1891년 경인년 겨울 10월에 명을 내려 대시전(大始殿)을 세우도록 하고 매우 장려하도록 하였다. 옛 천제한웅(天帝桓雄)의 상(像)을 받들어 모셨는데,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여 마치 큰 해와 같았으니 둥근 빛이 있어 온 우주를 비추며, 박달나무 밑 한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셔 진짜 신(神)과 같았으니 둥근 원의 중심이 있어 천부인(天符印)을 지니셨으며, 대원일(大圓一)의 그림을 누전(樓殿)에 표(標)하여 걸어 놓으니 이를 일러 거발한(居發桓)이라 하였다. 사흘 동안 재계하고 이레 동안 강연(講演)연하시니 위풍(威風)이 사해(四海)를 움직이듯 했다.

그 기원하는 마음을 표(標)한 글에 이르되,
“하늘은 현묵(玄黙)으로써 그 큰 도(道)는 보원(普圓)으로, 그 큰 일은 진일(眞一)로 삼고,
땅은 축장(蓄藏)으로써 그 큰 도(道)는 효원(効圓)으로, 그 큰 일은 근일(勤一)로 삼고,
사람은 지능(知能)으로써 그 큰 도(道)는 택원(擇圓)으로, 그 큰 일은 협일(協一)로 삼으니,
그리하여 일신강충(一神降衷)하고 성통광명(性通光明)하며 재세이화(在世理化)하고 홍익인간(弘益人間)한다(天以玄黙 爲大其道也 普圓 其事也 眞一 地以畜藏 爲大其道也 效圓 其事也 勤一 人以知能 爲大其道也 擇圓 其事也 協一 故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하였다.

이에 이 글을 돌에 새겼다.

이와 같이 단군조선 제11대 도해(道奚) 천왕은 국자랑의 사부(師傅) 유위자(有爲子)의 헌책을 받아들여 배달나라 개천시조 한웅천왕(桓雄天王)의 교화(敎化)와 덕치(德治)를 본받아 홍익인간의 낙원시대를 만들기 위하여, 한웅천왕을 기리기 위하여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도록 하고, 몸소 개천교화(開天敎化)의 원리인 천지인(天地人)의 도(道)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대시전(大始殿)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크게 시작한 한웅천왕을 모신 신전(神殿)이다. 불교(佛敎)로 말하면 사찰(寺刹)의 대웅전(大雄殿)에 해당한다. 원래의 역사로 따진다면, 원래 절(寺)이라는 곳은 시간에 맞추어 업무를 보면서 삼성(三聖) 또는 삼신(三神)에게 기도하는 곳으로서 삼성각(三聖閣) 또는 삼신각(三神閣)이 있는 곳이다.

즉,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우리 역사에서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여 지상낙원을 만드신 한국(桓國)의 한인(桓因), 배달나라 개천시조 한웅(桓雄), 단군조선 개국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 즉 삼성(三聖)의 초상화를 받들어 모시고 기리며 절(拜)하던 곳인 것이다. 또 삼성(三聖)으로서 하늘로 돌아가시어 삼신(三神)이 되셨으니, 마고(麻姑) 이후 황궁(黃穹), 유인(有因), 한인(桓因), 한웅(桓雄), 치우(治尤), 단군왕검을 삼신(三神)으로 모시는 것이다.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여 마치 큰 해와 같았으니 둥근 빛이 있어 온 우주를 비추었다는 것은, 한웅천왕이 도를 깨달은 각자(覺者) 즉 부처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박달나무 밑 한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셔 진짜 신(神)과 같았으니 둥근 원의 중심이 있어 천부인(天符印)을 지니셨다는 것은, 배달나라를 처음 시작한 박달나무 아래 무궁화 꽃이 만발한 단(壇)위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마치 천상(天上)의 신(神)이 하강한 모습이며,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상징하는 원방각(圓方角)의 도형(圖形)을 그린 표식을 지니셨다는 것이다.

천부인(天符印)은 곧 천부삼인(天符三印)인 바, 도형(圖形)으로는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원방각(圓方角)이며, 증거물(證據物)로는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이며, 말씀으로 된 가르침으로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된다.

천부삼인의 증거물이 되는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은 그 역할의 상징성으로 인하여 배달나라 정치기구로서는 풍백, 우사, 운사에 해당한다. 즉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한 부인(符印) 즉 증거물인 것이다.

거울은 천성(天性), 방울이나 북은 천음(天音)으로서 천법(天法), 칼은 천권(天權)을 상징한다. 즉, 거울은 하늘과 하늘의 대표격인 태양(太陽)이자 천성(天性)인 인간의 본성(本性)을 상징하며 항상 본성을 되돌아 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하늘의 법 즉 천법(天法)을 새기고, 방울 또는 북은 하늘의 소리 즉 천음(天音)으로서 이치에 따르는 하늘의 법 즉 천법(天法)을 상징하며 하늘의 법을 실행함을 의미하고, 칼은 천성(天性)을 어기어 천법(天法)에 위반하는 악행(惡行)을 처단하는 천권(天權)을 상징하며 세상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리하여 거울은 나라의 법을 세우는 입법관(立法官)인 풍백(風伯), 방울이나 북은 법을 시행하는 행정관(行政官) 또는 시정관(施政官)인 우사(雨師), 칼은 법을 위반하는 악행자를 처단(處斷)하는 사법관(司法官)인 운사(雲師)를 각 상징하는 것이다.

한웅천왕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늘나라 즉 한국(桓國)의 가르침을 폈으니, 곧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다. 천부경(天符經)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원래 하나이며 하나로 되돌아 가는 역(易)의 원리를 81자로 가르치며, 삼일신고(三一神誥)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무엇이며 사람이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는 법을 366자로 가르치고, 참전계경(參佺戒經)은 하늘의 법과 땅의 법과 인간세상의 법에 합치하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가르침을 366조목으로 가르치는 경전(經典)이다.

한웅천왕의 상(像)을 그린 대원일(大圓一)의 그림을 누전(樓殿)에 걸고 거발한(居發桓)이라 하였는데, 대원일(大圓一)은 보원(普圓), 효원(效圓), 택원(擇圓)의 삼원(三圓)을 하나로 이르는 것이며, 거발한은 크게 밝고 환하다는 의미로서 한웅천왕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일신(一神)이 내리어 속이 충만하시고(一神降衷), 천성(天性)이 통하여 밝고 밝으며(性通光明,) 천지인의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려(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펼치신 천웅천왕(桓雄天王)이 곧 세상을 밝히는 광명(光明) 그 자체인 것이다.

[마한(馬韓) 대성산(大聖山)의 대시전(大始殿) 건립]

서기전1891년 경인년 마한(馬韓) 아화(阿火) 시대에, 때에 도해(道奚) 천왕이 바야흐로 뜻을 세워 개화평등(開化平等)을 다스림으로 삼았으며, 명을 내려 대시전(大始殿)을 대성산(大聖山)에 세우고 큰 다리를 대동강(大同江)에 세웠으며, 삼홀(三忽)로 전(佺)을 삼아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儀式)을 정하고 삼륜구서(三倫九誓)의 가르침을 강론(講論)하게 하니 한도(桓道) 문명(文明)의 번성함이 나라 밖까지 들렸다.

도해(道奚) 천왕은 마한(馬韓) 아화(阿火)에게 명하여 마한의 수도인 백아강(白牙岡) 지역의 대성산(大聖山)에 한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신 대시전(大始殿)을 세우게 하고 대동강(大同江)에 다리를 놓게 하였다. 이는 한웅천왕 시대의 홍익인간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던 것이 된다.

삼홀을 기준으로 미혼의 자제들을 모아 참전(參佺)의 도(道)를 닦게 하는 전(佺)을 삼아 소도(蘇塗)를 설치하고, 소도 옆에는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소도에서는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을 행하고 경당에서는 삼륜구서(三倫九誓)를 비롯하여 6예(藝)를 닦게 함으로써 홍익인간 문명이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 된다.

삼홀(三忽)은 즉 세 고을(골, 忽, 卒)을 의미하며, 홀은 대략적으로 지금의 군(郡) 단위의 크기가 되는 지역이 된다. 즉 일정 단위의 지방에 소도를 설치하고 그 옆에 경당을 설치하여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소도제천의 의식을 행하게 하고 심신수련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심신수련의 실체적인 과목으로는, 경당에서 육예(六藝)로 닦던 독서(讀書), 습사(習射), 치마(馳馬), 예절(禮節), 가악(歌樂), 권박일술(拳撲釰術)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는 과목인데, 습사는 활쏘기 익히기로서 이(夷)라는 글자와 곧바로 통하며, 예절(禮節)로써 예의지국(禮儀之國)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또, 활쏘기인 습사와 말달리기인 치마와 주먹치기인 권박과 무딘 칼로 익히는 검술(劍術)인 일술로써 무예(武藝)를 숭상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가악으로써 노래와 음악을 중시하고 즐겼음을 알 수 있는 바, 단군조선 시대에 나라의 기둥이 될 청소년들이 심신수련(心身修練)으로 문무(文武)와 음악적 예술을 겸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도(蘇塗)에서 치르는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은, 한국(桓國) 시대에도 행해지던 것을 한웅천왕(桓雄天王)이 배달나라를 열고 재현(再現)하였던 것이 되는데, 일월수화목금토(日月水火木金土)라는 칠성신(七星神)에게 하루하루 제(祭)를 올리는 의식인 것이다.

즉, 첫날은 태양신인 일신(日神)에게, 두쨋날은 달신인 월신(月神)에게, 세쨋날은 수성신인 수신(水神)에게, 네쨋날은 화성신인 화신(火神)에게, 다섯쨋날은 목성신인 목신(木神)에게, 여섯쨋날은 금성신인 금신(金神)에게, 일곱쨋날은 토성신인 토신(土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것이다. 일월수화목금토의 기(氣)를 소위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 한다. 기(氣)는 신(神)의 작용으로서 만물(萬物)의 생장소병몰(生長消病歿) 등 변화(變化)의 원천(源泉)이다.

경당에서 가르침을 받는 삼륜구서(三倫九誓)는 세가지 윤리와 아홉가지 맹서를 가리키는데,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행해졌던 덕목들이다.

세가지 윤리덕목인 삼륜은,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효(孝)를 다하고, 사회에서 배움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나라에서는 군신간의 충의(忠義)를 다한다는 도(道)를 말하며, 곧 군사부(君師父) 일체의 도(道)를 지향한다.

아홉가지 지키고 행할 맹서(盟誓)의 덕목인 구서(九誓)는, 가정에서 효(孝)를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友愛)있고, 스승과 벗과는 믿음(信)이 있으며, 나라에는 충성(忠誠)하고, 무리에게는 겸손(謙遜)하며, 정사(政事)에는 밝게 알고(明知), 전쟁터에서는 용감(勇敢)하며, 몸과 행동에는 청렴(淸廉)하며, 맡은 일에는 의로움(義)을 다한다는 것이다.

삼륜구서의 덕목은 오늘날에도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실천해야할 귀중한 윤리의 덕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간윤리의 덕목으로서 삼륜구서가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세우고 하늘을 연 때부터 이어져 온 배달조선의 윤리강령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효충신용인(孝忠信勇仁)의 삼한오계(三韓五戒)가 나오며, 사친이효(事親以孝), 사군이충(事君以忠),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진무퇴(臨陣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高朱蒙聖帝)의 다물오계(多勿五戒)와 신라 화랑도(花郞道)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나오는 것이며, 하은주(夏殷周) 시대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덕치(德治)를 실현하던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문화적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인간윤리(人間倫理)가 춘추시대 공자(孔子)와 한(漢), 송(宋)을 거치면서 소위 유교(儒敎)의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정립된 것이다.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고 삼홀(三忽)로 전(佺)을 삼아 소도(蘇塗)를 설치하고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을 행하며 삼륜구서(三倫九誓)를 닦고 6예(藝)를 익히는 등 심신수련(心身修練)으로 문명을 부흥시키니, 한도(桓道) 문명(文明)의 번성함이 나라 밖까지 들렸다 하는 바, 그리하여 곧 이어 하(夏)나라의 왕 근(厪)이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던 것이다.

한도(桓道)는 한배달조선(桓檀朝鮮)의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등 도(道) 문명(文明)을 가리킨다. 하(夏)나라가 마한(馬韓)에 조공을 한 것으로 보아 하나라는 천왕격의 나라가 되는 마한보다 아래인 천자국(天子國)임이 드러나는 셈이다. 즉 하나라는 마한, 번한의 아래에 해당하는 일반 제후국에 불과한 것이 된다.다만,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수시로 반역한 역사가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단군조선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 된다.

[하왕(夏王) 근(厪)이 마한(馬韓)에 조공(朝貢)하다]

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하나라 왕 근(厪)이 사신을 보내 마한(馬韓)에 방물(方物)을 바쳤다.

하나라 왕 근(廑)은 제14대 왕으로서 서기전1900년부터 서기전1879년까지 21년간 재위에 있었는데, 하나라의 수도였던 언사(郾師)에서 보아 마한(馬韓)은 번한(番韓)보다 바다 멀리 떨어진 것이 되는데, 마한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보아 배를 타고 간 것으로 보인다.

우(禹)가 단군조선에 반역함으로써 하(夏)나라 건국시조가 된 이후에 단군조선에 조공(朝貢)을 한 예로는 서기전2133년에 제4대 오사구(烏斯丘) 천왕 시절에 해당하는 하나라 제5대왕 상(相) 시대와, 서기전2077년 번한(番韓) 호갑(虎甲) 시절에 해당하는 하나라 제7대왕 소강(少康) 시대와, 서기전1891년 마한(馬韓) 아화(阿火) 시절에 해당하는 하나라 제14대왕 근(廑)의 시대가 되는데, 그 외에도 교류 내지는 조공의 역사가 많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이처럼 하(夏)나라가 단군조선 진한(眞韓)이나 번한(番韓) 또는 마한(馬韓)에 조공을 한 것으로 보아, 하나라 스스로 단군조선의 제후격인 천자국(天子國)임을 깨닫고 예(禮)를 갖춘 것이 되며, 이로써 하나라는 안으로 정세가 안정되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번한(番韓) 탕지산(湯池山)에 삼신단(三神壇)을 쌓다]

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번한(番韓) 계전(季佺)이 도해(道奚) 천왕의 명을 받아 탕지산(湯池山)에 삼신단(三神壇)을 설치하고 관리들의 집을 이사하게 하였는데, 탕지(湯池)는 옛 안덕향(舊安德鄕)이다.

이때 탕지산에 삼신단을 설치하고 번한의 수도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탕지(湯池)를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하고 있으니, 탕지를 수도로 삼은 이후에 삼은 안덕향은 번한(番韓)의 오덕지(五德地)인 오경(五京) 중에서 중경(中京)에 해당하는 개평(開平)이 된다. 개평은 지금의 고하(沽河)와 난하(灤河) 사이에 위치하는 당산(唐山) 부근에 있다.

번한(番韓)의 수도는 서기전2333년 단군조선 개국 당시에는 난하 동쪽에 위치한 험독(險瀆)에 두어 동경(東京)에 해당하며, 서기전2311년 순(舜)이 요(堯)임금에게 등용된 뒤 3년차가 되는 때에는 산동반도의 남쪽에 있던 낭야성(琅耶城)을 개축하여 가한성(可汗城)이라 하여 남경(南京)으로 남은 것이 된다.

또, 서기전2049년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서효사(誓效詞)를 지은 때에는 번한의 수도가 안덕향(安德鄕)인 개평(開平)으로 중경이 되며, 탕지는 구안덕향이므로 서기전2049년 이전에 수도로 삼았던 적이 있는 곳으로서 북경(北京)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다시 서기전1891년에 탕지를 수도로 삼은 것이거나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을 둔 곳이 된다..

그리고 번한 수도인 오덕지의 하나가 되는 서경(西京)으로는 고구려 요서10성 중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되는 한성(汗城)이 거의 틀림없다. 서기전323년에 연(燕)나라가 왕을 칭할 때 번한의 읍차(邑借)이던 기후(箕詡)가 스스로 번조선왕이라 칭하며 보을(普乙) 천왕에게 윤허를 구할 때, 처음에는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며 연(燕)나라에 대비하였다 하는데, 이 번한성(番汗城)이 한성(汗城)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만약 당시 번조선의 수도였던 험독(險瀆)에 머물며 연(燕)나라에 대비하였다면 굳이 번한성(番汗城)이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번한의 오경(五京)은 서기전2333년, 2311년을 거쳐 2049년 이전에 약 300년 사이에 정립(定立)된 것으로 되며,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서보(西堡)로서의 기능을 번한(番韓)이 다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번한의 수도는 저울추(秤錘)처럼 서쪽 즉 요순(堯舜), 하은주(夏殷周)의 군사적 정세에 따라 동서남북중의 오경(五京)을 오가며 조절(調節)한 것이 된다.

번한의 수도가 되는 오덕지(五德地)의 산에 삼신단(三神壇)을 축조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이 된다. 오덕지 외에 번한 관경에 속하는 산동 서쪽의 태산(泰山)에도 제천단이 있었는데, 아마도 단군왕검이 염제신농국의 후계국인 단웅국(檀雄國)의 비왕으로서 섭정을 할 때인 서기전2357년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사이에 몸소 천제(天祭)를 올렸던 것이 되고, 서기전2267년 태자부루(太子扶婁)가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할 때 번한(番韓) 낭야(琅耶)로 하여금 하늘에 제를 올리게 한 이후, 노(魯)나라 땅에 속하게 된 뒤에는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봉선(封禪)을 행하는 등 진한(秦漢)을 거치면서 태산을 제천행사지로 숭앙한 것이 된다.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웅씨군(熊氏君)에게 설파한 도(道)]

유위자(有爲子) 선인은, 배달나라 시대인 서기전2700년경의 도학자(道學者)였던, 자부선생(紫府先生)의 학문을 이은 분이다. 단군조선의 마한(馬韓) 땅이 되는 한반도의 묘향산에 은거하던 때에 웅씨군을 방문하자 웅씨군이 도(道)에 관한 가르침을 요청하였고, 이에 유위자 선인은 웅씨군에게 도(道)를 설파(說破)하였다. 아마도 유위자 선인이 단군조선 도해(道奚) 천왕 시절의 국자랑 사부가 되기 이전의 젊은 시절이 될 것이다.

웅씨군(熊氏君)은 웅씨(熊氏)인 작은 임금(君)을 뜻하는데, 서기전2333년경 단군왕검 천왕께서 마한에 웅백다(熊伯多)를 봉한 이후 마한의 임금은 서기전1286년까지 웅씨가 이은 것이 된다. 유위자 선인은 서기전1891년경에 국자랑 사부(師傅)로 계셨으니 늦어도 서기전1950년경 출생이며 서기전1727년에 돌아가시어 최소한 약 220세이상 사신 것이 된다.

서기전1891년경 유위자 선인이 도를 말씀드린 마한의 웅씨군은 아화(阿火, 서기전1938년~서기전1864년)이다. 유위자 선인은 도(道)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道)의 큰 원천은 삼신(三神)에게서 나왔으니, 도는 이미 상대도 없고 명칭도 없고, 상대가 있으면 도가 아니며, 명칭이 있으면 또한 도가 아닙니다. 도는 무상(無常)의 도이며 때에 따르니 이에 도가 귀한 바입니다. 칭하되 무상(無常)의 칭이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이에 칭이 실재(實在)하는 바이며, 그 밖이 크지 않고 안이 작지 않으니, 도는 이에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하늘에는 틀(機)이 있으니 내 마음의 틀에서 보고, 땅에는 모습이 있으니 내 몸의 모습에서 보며, 사물에는 다스림이 있으니 내 기(氣)의 다스림에서 봄이니, 이에 하나를 잡아서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신(一神)이 내리는 바 이는 사물의 이치이며 이에 천일(天一)이 물을 낳는 도리입니다. 성통광명(性通光明)은 삶의 이치이며 이에 지이(地二)가 불을 낳는 도리입니다.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마음의 이치이며 이에 인삼(人三)이 나무를 낳는 도리입니다.

대개 대시(大始)에 삼신(三神)이 삼계(三界)를 만들어 물로써 하늘을 본 따고 불로써 땅을 본 따고 나무로써 사람을 본 땄으니, 무릇 나무라는 것은 땅에 뿌리를 두고 하늘로 나오는 것은 또한 처음 사람이 땅에 서서 나와 능히 하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時有爲子 隱於妙香山 其學出於紫府先生也 過見熊氏君 君請爲我陳道乎 對曰 道之大原出乎三神也 道旣無對無稱 有對非道 有稱亦非道也 道無常道 而隨時 乃道之所貴也 稱無常稱 而安民乃稱之所實也 其無外之大 無內之小 道乃無所不含也 天之有機 見於吾心之機 地之有象 見於吾身之象 物之有宰 見於吾氣之宰也 乃執一而含三 會三而歸一也 一神所降者 是物理也 乃天一生水之道也 性通光明者 是生理也 乃地二生火之道也 在世理化者 是心理也 乃人三生木之道也 盖 大始三神造三界 水以象天 火以象地 木以象人 夫 木者柢地而 出乎天 亦始人立地而出 能代天地).

유위자 선인은, 도(道)의 큰 원천은 삼신(三神)에게서 나왔으니, 도는 이미 상대도 없고 명칭도 없고, 상대가 있으면 도가 아니며, 명칭이 있으면 또한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삼신(三神)은 일신(一神)을 나누어 칭하는 말이며 물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一)은 곧 무(無)에서 시작하고 무(無)에서 끝나므로 상대가 있을 리 없으며, 명칭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즉 무극(無極)은 일극(一極)이기도 하며, 무극은 절대적인 유(有)로서 상대적인 무(無)로 칭할 뿐인 것이고, 일극(一極)은 하나뿐인 극(極)이므로 상대가 없어 무극이며 원래 무(無)이나 상대적인 유(有)가 되는 것이다. 결국 무와 유는 같은 것이나 상대적인 구분일 뿐인 것이다.

이에 신(神)은 곧 무(無)가 되나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유(有)이며, 그리하여 신(神)을 그 원천으로 하는 도(道)는 상대가 있기 이전의 도이며 명칭이 생기기 이전의 도인 것이다.

또, 도는 무상(無常)의 도이며 때에 따르니 이에 도가 귀한 바이고, 칭하되 무상(無常)의 칭이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이에 칭이 실재(實在)하는 바이며, 그 밖이 크지 않고 안이 작지 않으니, 도는 이에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는 바, 일(一)은 무(無)에서 시작하여 상대적인 유(有)가 되어 수억만번을 오고가며 다시 무(無)로 되돌아가는 무상(無常) 그 자체로서 항상(恒常)스런 모습이 없어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도는 명칭을 붙이기 이전의 무상(無常)의 칭으로서 번잡하게 명칭을 쓰지 않으므로 백성들의 마음이 귀착하는 바가 없어 편안하게 하는 반면에, 그 근본은 변하지 아니하는 절대적 존재로서 실재(實在)하는 것이며, 도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므로 그 밖이 생각할 수 없는 정도로 무한하다 하지 않는 것이므로 크지 않다고 하는 것이며, 모든 만물의 원천으로서 모두 담고 있으므로 그 안이 작지 않다고 하는 것이고, 도가 모든 만물을 포함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늘에는 틀(機)이 있으니 내 마음의 틀에서 보고, 땅에는 모습이 있으니 내 몸의 모습에서 보며, 사물에는 다스림이 있으니 내 기(氣)의 다스림에서 봄이니, 이에 하나를 잡아서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는 바, 틀(機)은 골격으로서 그 의도된 바가 꾸며진 것인데, 하늘이 만물을 만들 때 그 의도대로 틀을 만드니, 사람이 사람의 골격을 가지고 사람 모습을 띄게 되는 것처럼, 하늘이 의도하는 틀을 사람의 마음의 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또 땅에는 하늘의 틀로 만들어진 모습들이 있으니 곧 내 몸과 같이 하늘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모습이 있는 것이며, 모든 사물에 기(氣)가 순환을 하니 이는 내가 내몸과 내마음으로 기를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며, 기(機)와 상(象)과 기(氣)는 삼위일체인 것이다.

천기(天機)의 일부가 사람의 심기(心機)이며, 지상(地象)의 일부가 사람의 육신(肉身)이며, 물재(物宰)의 일부가 사람의 기재(氣宰)인 바, 심기신(心氣身)이 원래 하나로서 셋으로 나누어지고 셋을 포함하여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며, 심기신의 원천인 성명정(性命精)이 다시 원래의 하나(一)로 되돌아 가므로,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는 것이다.

일신(一神)이 내리는 바 이는 사물의 이치이며 이에 천일(天一)이 물을 낳는 도리이고, 성통광명(性通光明)은 삶의 이치이며 이에 지이(地二)가 불을 낳는 도리이며,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마음의 이치이며 이에 인삼(人三)이 나무를 낳는 도리이다라고 하였는 바, 물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하늘에서 비나 이슬이나 서리나 눈처럼 보이는 물이 되어 땅으로 내리므로 하늘이 물을 낳는다 하는 것이며 하늘님, 일신이 땅으로 내리어 사물을 만드는 이치가 된다.

또, 불은 땅에서 하늘로 향하여 타므로 땅이 불을 낳는다는 것이며 하늘의 태양처럼 본성을 통하고 밝게 비추므로 생명을 있게 하는 이치가 되며, 나무는 땅으로 내리듯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솟아 오르고 사람이 또한 땅을 딛고 하늘로 향하여 서 있으므로 사람이 나무를 낳는다고 하는 것이며,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마음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므로 마음의 이치라 하는 것이다. 이는 천지인(天地人)의 삼태극의 원리를 천일(天一), 지이(地二), 인삼(人三)의 이치로 나누어 말한 것이 된다.

삼신(三神)이 만든 삼계(三界)는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인데, 물로써 하늘을 본 따고 불로써 땅을 본 따고 나무로써 사람을 본 땄다고 한 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이치를 변화형상(變化形象)의 모습으로 설명한 것이며, 보이지 않는 신(神)을 음(陰), 보이는 사물(事物)을 양(陽)이라 하고 사람은 천지 음양의 조화로 나타난 존재로서 중(中)에 해당하는 바, 나무(木)가 천지 음양의 조화로 생긴 사람과 같은 모습이 되어 중(中)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여기 유위자 선인의 도에 관한 말씀에서, 삼신오제론(三神五帝論) 중 오제(五帝)에 대응하는 오행(五行)의 원리를 바로 보게 된다. 즉, 북방의 흑제(黑帝)가 물(水)을 관장하며, 남방의 적제(赤帝)가 불(火)를 관장하며, 동방의 청제(靑帝)가 나무(木)을 관장하는 원리가 된다. 북과 남, 흑제와 적제, 물과 불은 상대적인 명칭이며 상대적인 성질을 지닌 존재인데 오방(五方)에 따른 오행(五行)의 배치와 일치하는 것이다.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가 팔괘역을 만들기 이전에 배달나라 초기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일월수화목금토(日月水火木金土)에 따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에서 보듯이 음양오행의 기초 이론이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음양은 곧 천지(天地) 기(氣)의 이치이며, 오행(五行)은 곧 오행성(五行星) 기(氣)의 이치가 된다.

태호복희가 천지운행(天地運行)에 관한 팔괘역(八卦易)을 만들기 이전에 발견한 하도(河圖)가 곧 배달나라의 음양오행도(陰陽五行圖)인 것이며, 음양사상(陰陽四象)의 원리가 성립된 이후에 나온 음양중의 원리를 내포한 천부경(天符經)의 삼태극(三太極)의 원리에서 나온 천지인의 원리로서 최종 음양오행의 원리로 정립된 것이 된다. 즉, 오행은 음양에서 나오는 중(中)에 해당하며 다시 이 중(中)이 음양중(陰陽中)으로 개념이 분화되는 것이다.

음양은 중(中)을 내포한 원리가 되어 중(中)을 낳는 원천이 되는데, 사상팔괘(四象八卦)에서 태음(太陰)과 태양(太陽)에서 파생되어 나온 소음(少陰)과 소양(少陽)이 소위 중(中)에 해당하며, 건(乾)과 곤(坤) 이외의 태리진감간손(兌離震坎艮巽) 6괘는 음양의 조화로 나온 소양과 소음으로서 소위 중(中)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 바, 사상팔괘와 소위 오행(五行)은 방향을 놓고 볼 때는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상팔괘(四象八卦)는 방향과는 거의 무관하게 시간(時間)에 따른 순환변화(循環變化)의 원리를 나타낸 것이고, 오방(五方)의 오행(五行)은 기(氣)의 작용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호복희의 팔괘역(八卦易)에 방향을 배당하는 것은, 하늘에는 방향이 없음에도 지구라는 땅에서 사람이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처럼 방향을 억지로 설정하는 것과 같이 되는데, 굳이 태호복희팔괘역에서 방향을 설정한다면, 지구가 시계침이 도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북, 북동, 동, 남동, 남, 남서, 서, 북서의 순서가 되는 것이다.

즉, 태호복희팔괘역의 건태리진곤간감손(乾兌離震坤艮坎巽)을 방향으로 대입하면, 순방향(順方向)으로서 남, 남서, 서, 북서, 북, 북동, 동, 남동이 되는 것이다. 이 방향은 시계침이 도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서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방향이며, 자전으로 생기는 밤낮의 순행 방향이며, 공전으로 생기는 사계(四季)의 순행방향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乾)은 하늘(天)로서 기(氣)이자 태양(太陽)으로 한낮(午), 여름(夏)을 가리키고 남방(南方)이며, 태(兌)는 화산(火山)을 나타내고 소양(少陽)으로 오후(午後), 초가을(立秋)을 가리키고 남서(南西)이며, 리(離)는 불(火)로서 소양(少陽)으로 저녁(夕), 가을(秋)을 가리키고 서방(西方)이며, 진(震)은 벼락을 나타내고 소양(少陽)으로 늦저녁, 초겨울(立冬)을 가리키고 북서(北西)가 되며, 곤(坤)은 땅(地)으로서 토(土)이자 태음(太陰, 달, 月)으로 한밤(子), 겨울(冬)을 가리키고 북방(北方)이며, 간(艮)은 일반적인 산(山)을 나타내고 소음(少陰)으로 새벽, 초봄(立春)을 가리키고 북동(北東)이며, 감(坎)은 물(水)로서 소음(少陰)으로 아침(朝), 봄(春)을 가리키고 동방(東方)이며, 손(巽)은 바람(風)을 나타내고 소음(少陰)으로 오전(午前), 초여름(立夏)을 가리키고 남동(南東)이 된다.

이에 반하여, 태호복희 팔괘역에 대한 중국역(中國易)의 해석은 지구가 자전(自轉)하거나 공전(公轉)하는 방향이 아니라 태양이 출몰(出沒)하는 방향으로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방향이 되어 눈에 보이는 것만을 기준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어 천체 순행원리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주문왕팔괘도(周文王八卦圖)는 태호복희 팔괘역을 벗어난 것이기도 하며 그 방향설정의 면에서 본질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순행원리에 따른 역이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중국역의 풀이에 의하면, 남과 북은 건괘와 곤괘가 맞으나 그 외의 괘는 동과 서로 뒤바뀌어 있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리(離)를 방향으로는 동(東)이라 하고 계절로는 봄(春)이라 하며 소양(少陽)이라 잘못 대입하는 것이 되고, 감(坎)은 방향으로 서(西)라 하고 계절로는 가을(秋)라 하며 소음(少陰)이라 잘못 대입하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건곤(乾坤)의 남북(南北)을 제외한 다른 괘에 해당하는 방향이 모두 뒤틀리게 되는 것이다.

태호복희팔괘역(太皞伏羲八卦易)의 본질은 바탕이 되는 하괘(下卦)가 기준이 되고 중괘(中卦)와 상괘(上卦)가 아무리 양(陽)이라도 하괘가 음(陰)이라면 소음(少陰)의 괘가 되고, 반대로 아무리 중괘와 상괘가 음(陰)이라도 하괘가 양(陽)이라면 소양(少陽)의 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여자가 아무리 남성적인 성질(性質)이나 기질(氣質)이나 체질(體質)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여자이며, 남자가 아무리 여성적인 성질이나 기질이나 체질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남자인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즉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이며, 겉으로만 나타난 현상이나 형상을 기준으로 구분한다면 본질(本質)을 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음양의 원리는 음양중의 원리보다 근원적이 되며 음양은 중(中)을 낳는 원천이 되어, 서기전27179년경 마고성(麻姑城) 시대에 정립된 기화수토(氣火水土)의 원리가 사상(四象)이 되는 건곤감리(乾坤坎離) 즉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음(少陰), 소양(少陽)을 나타낸 것이 되며, 이후 서기전7197년에서 서기전6200년경 사이에 정립된 천부삼인(天符三印)에서 보듯 천지인(天地人) 즉 음양중(陰陽中)의 원리가 정립되어 음양오행의 원리가 기초잡혀졌던 것으로 된다.

오행은 오방(五方)에 배당된 오행성(五行星)의 기(氣)로서 이미 한국시대(桓國時代)에 오방에 배당된 오가제도(五加制度)가 있었던 것에서도 오행의 이론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한편, 삼사(三師)는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 음양중(陰陽中)의 원리에 기초한 제도가 된다.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말씀하신 도(道)에 관한 내용에서 이미 유위자 선인 시대 이전에 천지인, 음양중의 삼태극(三太極)의 원리가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며, 유위자 선인이 자부선생(紫府仙人)의 학문을 이은 것이므로 자부선인도 이미 천지인, 음양중의 삼태극의 원리를 정립하여 놓았던 것이고, 태호복희와 동문으로서 서기전3500년경의 배달나라 선인이던 발귀리(發貴理) 선인이 삼태극(三太極)을 노래한 시(詩)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태극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 천부경(天符經)은 이미 배달나라 시대에 존재하였음이 증명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첨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천지인(天地人) 삼인(三印)의 원리를 가르친 경전(經典)으로서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한국(桓國)의 중기가 되는 서기전6200년경 이전에 이미 정립된 것이 되고, 서기전3897년경에 한웅천황이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가르칠 때 이미 이들 천부삼경(天符三經)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절구(臼)와 띠풀지붕]

서기전1879년 임인년(壬寅年)에 일토산(一土山) 사람인 왕조명(王朝明)이 박(泊) 땅의 민장(民長)이 되어 다스린 공적이 뛰어 났는데, 곡식을 찧는 그릇인 절구(臼)를 제작하고 백성들에게 띠풀(茅)을 뽑아 지붕을 이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이 방법이 편리하여 백성들에게 오래오래 전해졌다.

여기서 특히 절구(臼)는 곡식을 찧는 도구로서 단군조선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에도 절구를 가리키는 문자가 새겨져 있기도 한데, 절구라는 발음이 곧 절구모양을 본따 만든 글자를 읽는 소리로서, 글자의 소리로는 가림토 글자이며 모양으로 보면 상형문자로서 전체적으로 상형식가림토라 할 수 있다.

소위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의 형태로 보면, 상형문자, 상형-표음문자, 표음-상형문자, 표음(가림토)문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절구라는 글자는 상형-표음문자 또는 표음-상형문자가 된다. 상형-표음문자는 원래는 상형문자인데 이를 가림토로 읽히는 글자이고, 표음-상형문자는 원래는 가림토 글자인데 상형식으로 표기된 글자이다.

일토산(一土山)은 왕산(王山)의 파자(破字)가 되는데, 왕씨(王氏)의 본거지가 되는 셈이다. 후대인 서기전1122년경에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단군조선으로 망명하여 제후가 되어 기후국(箕侯國)을 다스릴 때, 일토산 사람 왕수긍(王受兢)이 기자의 사사(士師)가 되어 단군조선에서 읽혀지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박달나무판(檀木板)에 새겨 기자에게 주어 읽게 하였다고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왕씨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으로도 전하는데,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제후국의 천자 중 천자로서 오방(五方) 중 중부(中部)의 황제(黃帝)였으며, 그 후손들은 모두 배달겨레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단군조선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었던 것이 된다. 즉, 고대중국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는 황제헌원의 후손들은 물론 배달겨레로서 황제헌원을 이은 나라인 웅국(熊國)에서 사느냐 아니면 웅국을 제외한 그 외의 배달나라 땅에서 사느냐, 요순 하은주의 땅에서 사느냐 아니면 단군조선 땅에서 사느냐의 차이일 뿐 혈연족보(血緣族譜)상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후대에 왕조명의 손자인 왕해월(王海月)도 민장이 되어 배를 만들어 곡식을 운반하는 등 바다무역이 트이게 하였으며, 왕해월의 증손자인 왕명지(王明知)도 민장이 되어 농사를 권장하고 독려하여 농사짓는 때를 어기지 않도록 하였다.

[방물(方物) 진설소(陳設所) - 박람회(博覽會)]

서기전1864년 정사년(丁巳年)에 장소를 마련하여 사방의 물건들을 모아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다투어 헌납하여 진열한 것이 산과 같았다.

이때 소위 만국박람회(萬國博覽會)를 열었다는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시대에 지방 제후국(諸侯國)들과 우방국(友邦國)들의 특산물을 전시하는 박람회장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물론 배달나라의 수도가 되는 신시(神市)라는 말이 신(神)들의 도시라는 말도 되며 저자(市) 즉 시장이 있어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의미가 되는데, 단군조선 시대에도 10년에 한번씩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때, 박람회와 같은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던 것이 되며, 교역이 이루어지는 경제적인 행사 뿐만이 아니라 제천행사를 벌이는 종교적, 공물을 바치는 등의 정치적 행사였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오늘날의 세계박람회는, 인류공영의 목적으로 벌이는 행사인 점에서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개최된 박람회가 그 원류가 되며, 전세계적인 홍익인간 세상을 위하여 신시(神市)라는 경제교류 제도를 계승발전시킨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 할 것이다.

[선사(選士) 20명의 국훈(國訓) 전파(傳播) - 스승(師)의 나라 조선(朝鮮)]

서기전1854년 정묘년(丁卯年)에 백성들 가운데서 장정(壯丁)을 징집하여 모두 병사로 삼고, 선사(選士) 20명을 하(夏)나라 서울로 보내어 나라의 가르침(國訓)을 처음으로 전함으로써 위세를 보였다.

이 기록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古列加) 천왕 시절이 되는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 사람 공빈(孔斌)이 동이사절(東夷使節)이 위(魏)나라를 방문하였는데 그 위세가 등등하였다는 등으로 기록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서기전268년 당시의 동이사절이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사절인지, 번한(番韓)의 사절인지 불명한데 번한과 접한 연(燕)나라가 아닌 위(魏)나라이므로 일단 진한의 사절로 추정되기는 한다. 공빈(孔斌)은 공자(孔子)의 7세손으로 전한다.

선사(選士) 20명을 하(夏)나라 수도로 보냈다는 것에서 당시 단군조선과 하나라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가서 단군조선의 국훈(國訓)을 가르쳐 위세(威勢)를 보였다는 것에서 하나라가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받는 입장으로서, 단군조선이 하나라의 군사부(君師父)의 나라가 되는 셈이다.

당시 국훈(國訓)은, 주나라 춘추시대의 공자(孔子)가 말하였듯이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에 있었던 것을 기록하였을 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하은주의 윤리도덕의 기반이 되었던 가르침으로서 곧 단군조선에서 전파된 것이 된다. 그리하여 삼강오륜(三綱五倫) 등 소위 유교적인 기본 원리는 이미 단군조선에서 하은주의 고대중국에 전수(傳授)되었던 단군조선의 윤리도덕을 응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써 서기전2240년경 단군조선의 초기 중신(重臣)이던 대련(大連)과 소련(少連)의 효(孝)를 공자(孔子)는 예기(禮記)에 인용하면서, 대련과 소련을 동이(東夷)의 아들이라 하며 효(孝)의 본보기로 극찬하고 있다.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가정과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에 관한 인간윤리가 정립되어 있었다. 즉, 삼륜구덕(三倫九德) 또는 삼륜구서(三倫九誓)라는 윤리도덕적 가르침이 배달나라 시대에서 정립되어 단군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며,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은주(夏殷周)로 전파(傳播)된 것이 되고, 이러한 고대중국의 윤리도덕이 공자(孔子)로 이어져 중국 유교(儒敎)의 가르침을 정립한 것이 된다.

선비(儒)라는 말은 조의선인(皁衣仙人)이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는데, 원래 선비라는 말은 배달조선의 선인(仙人)의 무리를 가리키고, 단군조선과 고구려 시대에 소도제천(蘇塗祭天)하고 경당(扃堂)에서 독서(讀書, 글읽기), 습사(習射, 활쏘기 익히기), 치마(馳馬, 말달리기), 예절(禮節), 가악(歌樂), 권박일술(拳撲釰術) 등 육예(六藝)를 닦던 심신수련(心身수련) 단체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송화강 조선소(造船所) 설치]

서기전1846년 을해년(乙亥年)에 송화강(松花江) 기슭에 작청(作廳)을 세우니 배(舟)와 노(楫) 등 여러 가지 물건이 크게 세상에 퍼졌다. 기계를 발명하는 사람들에게 상(賞)을 주었는데, 이때 상을 받은 새로운 발명품으로는, 양우계(量雨計), 측풍계(測風計), 자행륜차(自行輪車), 경기구(輕氣球), 자발뇌차(自發雷車), 천문경(天文鏡), 조담경(照膽鏡), 구석편(驅石鞭), 자명종(自鳴鐘), 경중누기(輕重漏器), 연적(涓滴), 발뇌동용기(發雷動舂器), 소금(素琴), 천리상응기(千里相應器), 목류마(木流馬), 진천뢰(震天雷), 어풍승천기(御風昇天機), 흡기잠수선(吸氣潛水船), 측천기(測天機), 양해기(量海機), 양청계(量晴計), 측우기(測雨機), 측한계(測寒計), 측서계(測暑計), 황룡선(黃龍船), 양수기(揚水機) 등이다.

송화강은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이던 아사달이 소재한 땅에 남북방향으로 올라가다 다시 동쪽으로 흘러 우수리강(牛首里江)에 합류하는 강인데, 이 송화강 가에 배와 노젓는 기구 등 배와 관련된 물건과 그 외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을 설치하였다는 것이다. 송화강은 원래 속말(粟末)이라는 강으로서 소말(소마리, 소머리), 소물, 소믈, 소므르라는 말을 나타낸 이두식 표기이며, 소머리라는 말을 표기한 것이 되는 우수리(牛首里)라는 말과 결국 같은 것이 된다.

당시에는 주로 노젓는 배를 만들었던 것이 되는데, 이 이전의 단군조선 초기가 되는 서기전2131년에 이미 살수(薩水)의 상류에 조선소(造船所)를 설치한 적이 있기도 하다. 살수는 지금의 요동반도 중부지역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으로서, 살수의 하류가 되는 요동반도 남쪽에 접한 바다는 진한의 남해안이 되는데, 살수의 중류지역은 고구려 시대 을지문덕(乙支文德) 대모달(大謀達)이 펼쳤던 살수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상(賞)을 받은 발명품들을 대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글자 자체에서 대략적으로 어떤 물건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즉, 양우계(量雨計)는 비가 얼마나 왔는지를 재는 측정계기(測定計器)이며, 측풍계(測風計)는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를 재는 측정계기이고, 자행륜차(自行輪車)는 스스로 돌아가며 나아가는 바퀴달린 수레나 차를 가리키고, 경기구(輕氣球)는 공기의 부력(浮力)에 의하여 하늘로 떠오르는 기구(氣球)가 되며, 자발뇌차(自發雷車)는 자동발사되어 터지는 폭발장치를 갖춘 수레 또는 대포(大砲)의 일종이 될 것이다.

또, 천문경(天文鏡)은 하늘을 관찰하는 망원경(望遠鏡)의 일종이 될 것이며, 조담경(照膽鏡)은 인체 내부를 관찰하는 의료기구(醫療機具)가 되고, 구석편(驅石鞭)은 돌을 멀리가지 날리는 새총이나 원반돌리기 등과 같은 원리로 만든 장치가 되며, 자명종(自鳴鍾)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울리는 종(鍾)이나 종이 달린 시계가 되고, 경중누기(輕重漏器)는 물이 새는 정도를 측정하는 그릇 모양의 기구(器具)가 되며, 연적(涓滴)은 벼루에 물을 떨어뜨리는 소형의 그릇이 되는 도구이고, 발뇌동용기(發雷動舂器)는 사람의 힘으로가 아닌 폭발장치에 의하여 방아를 찧는 자동장치로 된 기구(器具)가 되며, 소금(素琴)은 거문고의 일종이 되고, 천리상응기(千里相應器)는 거리를 재는 기구(器具)이며, 목류마(木流馬)는 나무로 만든 목마(木馬)의 일종으로서 걸어가도록 제작된 것이고, 진천뢰(震天雷)는 하늘을 울리며 폭발하는 폭탄의 일종이 될 것이다.

또, 어풍승천기(御風昇天機)는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로 떠 오르게 만든 기구(機具)이며, 흡기잠수선(吸氣潛水船)은 공기를 축적하여 물 속을 잠수하면서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든 배이고, 측천기(測天機)는 날씨나 기후를 측정하는 기구(機具)이며, 양해기(量海機)는 바닷물의 썰물과 밀물 도는 바닷물의 깊이 등을 측정하는 기구(機具)이고, 양청계(量晴計)는 날씨의 맑음과 흐림 등을 측정하는 계기(計器)이며, 측우기(測雨機)는 비가 얼마라 오는지를 측정하는 계기가 달린 기구장치(機具裝置)이고, 측한계(測寒計)는 날씨가 얼마나 추운가를 측정하는 계기(計器)이며, 측서계(測暑計)는 날씨가 더운 정도를 측정하는 계기(計器)이고, 황룡선(黃龍船)은 배의 일종이며, 양수기(揚水機)는 물을 퍼 올리는 기계장치(機械裝置)가 될 것이다.

위 발명품의 명칭에서 계(計)는 양(量)의 정도를 가리키는 침(針)이 달린 소형(小形)의 측정장치(測定裝置)이고, 기(器)는 그릇 모양으로서 양(量)을 측정하거나 담는 기구(器具)가 되며, 기(機)는 계기(計器)를 달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대형(大形)의 장치이거나 작동하게 만든 기계장치(機械裝置)가 된다.

[3월 제천행사(祭天行事)]

서기전1846년 3월에 삼신(三神)을 산(山)의 남쪽에서 제사를 지냈으니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올리고 치사를 드리며 제사를 올렸다. 그날 밤 특별히 술을 하사하시어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술잔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재주들을 관람하셨다. 이 자리가 끝나자 마침내 누각(樓閣)에 오르시어 천부경(天符經)에 대하여 논하시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시더니 오가(五加)를 돌아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는 살생(殺生)을 금하고 방생(放生)하며 옥문(獄門)을 열고 떠도는 사람에게 밥을 주어 살 수 있도록 하며 사형제도(死刑制度)를 없애노라” 하셨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여기서 3월은 음력으로 늦봄으로 특히 3월 15일은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어천(御天日)일이며, 다음날인 3월 16일은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 행사를 여는 날로서 소위 대영절(大迎節)이라고도 하는 날이다. 한편, 10월 상달에는 나라 전체의 온 백성들이 참여하여 삼신(三神)께 한해의 농사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한해를 여는 취지로 제천행사(祭天行事)를 벌이고 가무(歌舞)를 즐기며 문무(文武)를 겨루는 등의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었다.

이때 삼신(三神)께 제(祭)를 올린 산(山)은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있던 송화강 유역의 아사달(阿斯達) 부근에 위치한 산이 될 것이다.

도해 천왕께서 직접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신 것으로 보아, 역대 단군 천왕들이 참전계경(參佺戒經)을 포함한 종교철학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천부삼경(天符三經)을 국자랑(國子郞) 시절부터 배우고 익히고 독송(讀誦)함으로써 심신을 수련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도해 천왕이 살생(殺生)을 금하고 방생(放生)하며 옥문(獄門)을 열고 떠도는 사람에게 밥을 주어 살 수 있도록 하며 사형제도(死刑制度)를 없앰으로써,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일반백성으로 받아들이고 굶지 않도록 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고, 만물이 평등하므로 미물(微物)이나 다른 동물 또는 물고기를 함부로 죽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놓아 살려서 번성하게 함으로써 개물(開物), 홍익제물(弘益濟物)을 실천하였던 것이 된다.

[도해 천왕을 기리는 삼년상(三年喪)]

서기전1835년 병술년(丙戌年)에 천왕께서 붕하시니 만백성이 이를 슬프게 여김이 마치 부모상을 당함과 같아서, 삼년동안 근신하며 온 누리에 음악, 노래소리가 끊겼다.

뒤를 이어 우가(牛加) 아한이 즉위하였다.

도해 천왕은 명신(名臣)인 유위자 선인의 헌책을 받아들여 배달나라 개천 시조 한웅천황을 모시는 대시전을 건립하여 홍익인간, 홍익제물의 이념을 고취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추앙받은 것이 된다.

우가(牛加)는 농사담당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삼사오가(三師五加) 중 요직(要職) 중의 요직이었다고 보이며, 우가(牛加) 아한(阿漢)은 도해 천왕의 태자(太子)가 아닌 다른 아들로서, 태자의 자리가 궐위(闕位)되었거나 즉위(卽位)를 사양함으로써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천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한 인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