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스피릿이 있고, 역사를 빼앗기는 순간 그 정신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역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에게 역사가 위대한 것은 위대한 정신, 즉 얼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이 사라진 역사는 허울 좋은 껍데기 역사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고조선의 의미가 그렇게 다가온다. 당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역사 따위는 안중에 없어도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잘 먹고 잘 살게 된 후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 너무 허망할 것이다. 물질로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채워지고 나면 정신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선진 국가들이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고작 3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 국민들은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미국인들보다 자부심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고조선을 말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스피릿에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코리안 스피릿’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역사는 짧지만 그 짧은 역사의 대부분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해 왔고, 앞으로도 미국의 역사가 증명해 왔던 것처럼 세계사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 그러한 믿음이야말로 지금의 미국을 만든 힘의 원천일 것이다. 한국은 자국 역사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있을까? 믿음이 강하려면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사의  이해가 중요한 것이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은 무조건적인 믿음보다 강력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신, 즉 ‘아메리칸 스피릿’이라면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를 통해 발현된 ‘프런티어’ 라고 하는 도전과 개척의 정신을 말한다. 이것은 신분이나 학력 등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깃발만 먼저 꽂으면 되는 것이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는 깃발 꽂기 식의 개척정신은 광활한 지역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생동감 넘치게 만들었지만 이러한 미국의 정신, ‘아메리칸 스피릿’이 살아있는 미국의 건국 역사는 원주민들이었던 인디언들에게는 침략자들에 의한 잔혹한 수난사이자 멸망사이기도 하다. 이것은 미국의 ‘아메리칸 스피릿’에 묻힌 인디언들의 멸망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함이며, 역사는 항상 상대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신인, ‘코리안 스피릿’ 무엇인가?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단군의 통치이념이기도한 ‘홍익정신’이다. 이러한 ‘코리안 스피릿’인 ‘홍익정신’이 발현된 역사가 고조선의 역사였다. 이것은 ‘천지인’정신에 입각한 조화와 상생을 바탕으로 모든 우주 만물을 다 아우르는 정신이었다. 이것이 ‘코리안 스피릿’이 발현된 고조선의 역사이고, 한국사의 첫 출발이었다.
 

이제 우리 역사의 여명기라고 할 있는 고조선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역사인식과 주관적인 역사의식이 필요할 때 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통한 그들의 일방적인 논리가 세계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것도 다 아는 내용이다. 다 아는 현실인데 그 현실 속에서는 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것은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가 작용한 탓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역학 구도 속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미국의 역사교과서에는 한국에는 고유한 문화가 없고 중국과 일본 문화의 아류라고 소개된 바 있었다.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의 역사 교과서에도 일본이 역사 왜곡한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한국사에서 고조선은 그 동안 핵심적인 연구 과제였고, 많은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많이 알려졌지만 사료는 너무 부족하다. 역사교과서에서 할애하는 지면도 고작 1~2쪽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반만년 역사 중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고조선의 역사를 한두 쪽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이 황당하고, 한두 쪽으로 끝낸다는 것이 허망하다.
 

고조선의 역사 논쟁은 많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논쟁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논쟁은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논쟁을 위한 논쟁이거나 논쟁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자랑스러울만한 고조선의 역사는 어떠한가. 고조선은 현재의 베이징 인근에서 요서 및 요동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기반으로 하고 북방 종족들의 중심축이자 이합집산의 터이며 유목문화와 농경문화가 융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고조선의 붕괴 후 크게 두 갈래로 분리되었다. 한쪽은 서쪽으로 중국 대륙으로 나아가고 다른 한쪽은 한반도와 일본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고조선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이른바 재야사학으로 객관적인 역사적 근거보다는 주관적인 역사의식이 강조되어 그 동안 억눌려 있었던 피해의식에 보상차원으로 확대해석하고자 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강단사학으로 일컫고 있는 보수사학으로 이들은 고조선의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니까 고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사학계가 그것이 보수사학계이든 재야사학계이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야사학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역사적 고증이 어렵다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이고 보수사학은 유구한 고조선의 역사 중 그 일부만 갖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인 것이다.

역사는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어야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그 역사적 해석은 주체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다. 중국에는 55개 소수민족이 있다. 그래서 중국은 그 동안 집요한 역사공정을 통해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55개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켰고, 그에 따라 만주인이나 몽고인들과 같이 한 때는 대륙의 지배자였지만 이제는 한낱 소수민족으로 전락되어 그 정체성마저 사라지고 있다.
 

분명 고대에는 고조선과 그 후예들이 갖고 있었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그 역할을 오늘에 되살려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 북방으로부터 비롯된 민족의 기원을 밝히고, 고조선의 중심영역이었던 요서 및 요동, 그리고 한반도 지역의 역사 문화적 변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통해 고조선 이후 갈라진 고조선 후예들의 역사 문화적 계승과 발전을 확인하여 때로는 대륙의 지배자로, 때로는 동아시아 발전과 균형에 새로운 역할을 하기도 하였음을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 기반 하에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기초로 하여 고조선의 후예들이 어떤 방식으로 분화해 나가고 서로 협력하면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형성해 왔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한다. 이것은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기보다는 그렇게 분류가 된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동이족으로 분류되는 종족들 중에는 선비와 숙신 등 이후에 중국 대륙의 지배자로 등장하기도 하였던 종족들이 있었다.
 

이제 고조선의 역사를 좀 더 시야를 넓혀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 옛 선조들이 세계의 역사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여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여 분화해 나갔고 각각 새로운 나라들을 어떻게 건설하였는지, 그리고 나아가 현재는 그 후예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 도발에 대응하면서 민족의 재발견을 통한 더욱 큰 차원의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스피릿이고, 후대에 전달해야할 정신적 유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기 4346년 7월 15일

학교법인 한문화학원 법인팀장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