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에는 (사)국학원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회의가 있었다. 학술회의 제목이 "국학을 통해서 바라본 한국 상고사 인식" 이었다. 중국사서나 일본사서 등 다른 나라 사서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재야사학에서 주로 언급하는 위서 논란 여지가 있는 사서들만으로 한국 상고사를 인식하고자 한다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고유한 사유체계 속에서 한국 상고사를 인식하고, 역사의 영속성이 인정된다고 할 때 ‘홍익인간’이라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 어떻게 우리 역사 속에서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유사』 『제왕운기』『동국이상국집』『응제시』『조선경국전』『동국사략』『삼국사절요』『동국통감』『미수기언(‘동사’)』『수산집(‘동사’)』등 고려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관찬사서부터 개인문집에 이르기까지 고조선에 대한 다양한 사서들이 존재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향후 국학이 전개해 나갈 역사인식에서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국학은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에서 상고사란 고대사 중에서도 한국사의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역사를 말하며, 뿌리 역사라고도 한다. 뿌리 역사는 그 나라 역사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역사로 정체성 확립과 연관이 있다. 뿌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으면 바로 잡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뿌리 역사에 대한 교육을 통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뿌리 역사에는 그 나라, 그 민족에게만 있는 고유한 사유체계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관련된 요즈음 표현으로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러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정한 우리다움에 접근할 수 있다. 국학이 우리 역사에 관심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에서 그 뿌리가 되는 상고사의 하한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도 쟁점이 될 수 있겠다. 넓게는 고대사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간적으로 너무 범위가 넓어지면 찾고자 하는 우리다움의 실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좀 더 범위를 좁혀 나가다 보면 국학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분류를 한다면 그 기준은 기원전 4세기, 연나라 장수 진개의 동정에 따라 단군조선이 2,000여리 동쪽으로 이동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계기로 고조선이 점차 세력을 잃게 되고 붕괴되어 가게 된다. 고조선은 멸망이라기보다는 주변 거수국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동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나라들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고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동예, 옥저, 삼한 등이 있다. 결국 고조선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지배력이 약화되고, 그 지배체제가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여러 나라들이 성장과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우리 역사의 첫 분화과정이자 전환기적인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기원전 4세기 진개의 동정 이전을 상고사로 보고, 그 이후를 고대사의 범주로 넣고자 하는 것이다. 위의 논리대로 라면 한국 상고사는 고조선사를 말하는 것이 된다. 고조선의 건국연대는 조선 초기 관찬사서 중 하나인『동국통감』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이 되고, 상고사의 시대적 범주는 기원전 24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 즉 약 2000년간을 말하는 것이 된다.

국학을 통해서 바라본 한국 상고사 인식은 다시 말하면 국학을 통해서 바라본 고조선의 역사 인식이다. 국학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것은 국학의 관점으로 조명해 보겠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이해하겠다는 뜻이 된다. 이제 우리 역사의 주인공은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그 동안은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은 고려시대부터 비롯된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그것인데, 특히 『제왕운기』로부터 시작된 삼조선(단군ㆍ기자ㆍ위만)체제는 고려 말에 성립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1895년 이후 근대 역사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근대개혁운동의 일환으로 근대적인 역사교과서가 학부(오늘날의 교육부)주도로 간행되었다. 이러한 근대 역사교과서들은 대체로 고려 말 이후 성립된 삼조선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1892년에 간행되어 식민사관의 원조이자 이후 일본의 한국고대사에 대한 사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의 『조선사』의 영향을 받아 삼조선 체제 속에서 단군은 신화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기자를 부각시키거나 위만을 단군조선을 계승한 인물로 묘사하며, 위만조선을 고조선 자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연구들을 통해 ‘기자동래설’이 부정되었고, 그에 따라 기자조선은 한국사에서 배제되었다.
근대 역사교과서(1895~1910)와 현대 역사교과서(1990년대 이후)의 외형상 두드러진 차이는 바로 단군ㆍ기자ㆍ위만조선의 삼조선 체제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역사교과서에서는 왜 아직도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을 일체화시키는 가이다. 위만조선의 존재를 단군조선을 계승한 고조선 그 자체로 인식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단군 조선의 중심지가 요령지방에서 비롯하여 한반도 대동강 유역까지라고 한다면 그것을 계승한 위만조선이 한 무제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그 자리에 한군현이 설치되었다면, 한군현의 위치가 한반도 북부로 비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동안 연구를 통해 한군현의 위치가 한반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에 역행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사기』「조선전」에 나오는 조선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위만조선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고조선이 멸망하여 그 자리에 한군현이 설치되었다는 식민사관의 발상이 여전히 유효하고, 위만이 연나라에서 조선으로 들어올 때 상투를 틀고 조선의 옷을 입었으며, 국호를 ‘조선’으로 하고, 조선인들을 고위직에 등용했다는 내용만으로 위만을 동이족 혹은 조선인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논리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로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을 계승했고, 고조선 자체로 인식하여 삼조선 체제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분명『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은 단군조선과 후대에 나오는 기자조선 및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한 개념이었고, 고려 말 이후 성립된 삼조선 체제에서는 고조선이 1392년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고조선의 건국연대도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라 기원전 2333년으로 인식하는데, 역사교과서의 논리대로 한다면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여 성립된 최초 고대국가라고 한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에서 서술하고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 시작 연대는 기원전 1000년이거나 빨라야 기원전 1500년이다. 그렇다면 1333년이나 833년에 이르는 기간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역사교과서는 역사인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과 연관이 있고, 앞으로 역사의식 함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역사인식의 준거틀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뿌리 역사인 한국 상고사는 우리 역사의 첫 출발부터 잘못된 인식으로 출발하면 안 되므로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행 역사교과서는 2009년 교육과정을 통해 2011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교과서로, 초등학교는 국정교과서로 5학년 ‘사회’ 과목에서 한국사를 배운다. 중학교는 ‘역사’라는 과목으로 7종의 검정교과서가 있고, 고등학교는 ‘한국사’라는 과목으로 6종의 검정교과서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2012년 신입생부터 고등학교 ‘한국사’과목이 선택에서 필수과목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역사교과서에서 한국 상고사, 즉 고조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는 각 교과서마다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혹은 “건국하였다고 한다.” 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서술하거나 모호하게 서술하여 한국 상고사에 대한 인식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험 문제를 1~2 문제에 국한하여 출제하는데, 문제가 주로 8조법 등과 같은 지엽적인 지식을 묻는 것에 한정하고 있다. 우선 교사의 지도지침을 마련해서 한국 상고사 시간을 현행보다 늘리고 시험 문제도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를 출제하여 뿌리 역사인 한국 상고사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해야 되는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들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교육개혁은 교과서 개혁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특히 역사교과서의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부나 한국교과서연구재단 등에 역사교과서에 대한 수정 제안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하나의 실천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뿌리 역사인 한국 상고사에 관심을 갖고,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교과서가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에 밑바탕이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단기 4346년 6월 24일    

기고=민성욱 국학박사, 학교법인 한문화 운영팀장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졸업

논문 '한국사에서 말갈 인식에 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