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은 세속을 초월하여 장생불사하는 사람이다. 또한 공간으로서 하늘이나 공중에 날아오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 김현수 경기대 교수
김현수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대우교수는 22일 충남 천안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도교와 선도> 학술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대회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원장 조남호)와 한국도교학회(회장 김윤수)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다.

김 교수는 ‘신선의 비행(飛行)’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공중을 나는 행위와 관련해서 신선의 관념이 서양과는 다른 동양적 사유의 산물이자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영화로 비교해서 주목을 받았다.

서양 - <해리포터>와 <아이언맨>

<해리 포터(Harry Potter)>는 조앤 K. 롤링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8편이 제작된 영화 시리즈로 4억 부 이상이 팔린 원작만큼이나 세계적 흥행 성공으로 유명해졌다.

첫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에는 극중 주인공 해리 포터가 자신이 마법사인지도 모른 채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하여 마법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경기하는 가상의 퀴디치(Quidditch) 월드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세 시대였다면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나는 일은 마녀에게나 가능한 행위라 여겼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 능력은 하나님 이외의 권능을 지닌 사악한 존재로부터 연원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그것을 부여받아 악마적 존재로 판단된 마녀는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범한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나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과학의 시대에 더구나 마법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공상[판타지(fantasy)] 영화 속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빗자루 비행은 마력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타고 날고 싶다는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이는 인간이 그 자체로는 공중을 날 수 없으며 날 수 있는 도구에 올라타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신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아이언맨3>은 역대 한국 개봉영화 흥행 1위 <아바타>의 관객 동원수를 앞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신드롬이라 할 만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아이언맨>에는 <해리 포터>와 같이 평범한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공중을 나는 방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이테크 슈트는 최첨단 과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양자는 날 수 없는 인간이 공중을 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도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와 달리, 빗자루와 하이테크 슈트는 올라타거나 몸에 장착하는 차이 외에도 동력의 유무라는 차이를 보인다.

빗자루가 마력을 동력으로 삼는 최첨단 마법과학의 산물이 아니라면, 동력을 갖추지 못한 평범한 빗자루일 뿐이며 상식의 수준에서도 공중을 날거나 고도 및 방향을 조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반면, 하이테크 슈트는 손과 발, 등에 추진체를 장착하여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서양적 관점에서 본다면, 합리성을 기준으로 신화에서 철학으로의 이행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양 - <와호장룡>과 <영웅>

<와호장룡(臥虎藏龍 ;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은 19세기 말 청나라를 배경으로 강호의 중심에 서 있던 무당파의 수제자 리무바이가 푸른 여우에게 독살 당한 사부 앞에서 강호의 덧없음을 느끼고 떠나기 전에 선대부터 전해오는 보검 청명검을 사매인 수련에게 부탁하면서 전개된다.

 
영화 후반부에 대나무 위에서 펼쳐지는 초상비草上飛는 당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는 피아노줄에 의지하여 촬영이 이루어졌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빠져들어 이러한 장면의  허구성을 지적하거나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적어도 동양인의 사유 속에 수련을 통한 고도의 경지에서 인간이 날 수 있는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비행하거나 그에 준하는 행동이 가능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웅(英雄)>은 전국7웅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대립하던 전국시대, 강력한 군대로 이미 절반이 넘는 중국대륙을 평정한 진秦나라의 왕 영정贏政이 암살의 위협 속에 1만 명이 넘는 왕실의 호위 군사를 두고 자신의 주위 백보 안에 그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전설적인 무예를 보유한 은모장천과 파검, 비설을 두려워하던 차에, 미천한 지방의 백부장 무명이 정체 모를 세 개의 칠기상자를 가지고 찾아와 영정을 직접 알현하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영화 중반 영정이 설명하듯이, 무명과 비설 간의 결투 이후 다시 파검과 이루어진 머릿속 대결에는 산중 호수에서 검으로 수면을 튕겨 오르는 수상비水上飛가 등장하며 물 안쪽에서 촬영하여 좀 더 사실적 묘사에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비행(飛行)의 원형을 찾아서

김현수 교수는 신선의 비행과 관련하여 “그 원형의 단초를 <신선전神仙傳>이나 <노자도덕경하상공장구老子道德經河上公章句> 서문에 실려 있는 하상공河上公의 고사古事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상공은 그 성명을 알 수 없으나 한漢 효문제 때 강기슭에서 풀을 엮어 움막을 만들어 살며 항상 노자의 <도덕경>을 독송讀誦하였다.

당시 문제가 노자의 도를 애호하였으나 의미가 통하지 않는 곳이 있어 의문을 갖게 될 때 다른 사람들 또한 해결해주지 못하자 신하 가운데 하상공의 이야기를 아뢰고 이에 사자를 파견하여 의문스런 부분의 뜻을 물어오게 한다.
그러나 그는 도道와 덕德은 존귀하여 물어서는 알 수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를 전해 듣고 훌륭한 답변이라 여긴 문제는 하상공의 처소로 가서 직접 만나고자 하였으나 그가 움막에서 나오지도 않자 사자를 시켜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님이 없고 왕의 백성 아님이 없으며 왕은 도道, 하늘, 땅과 더불어 큰 존재 가운데 하나인데 그대가 비록 도道를 지녔다고 할지라도 짐의 백성으로 스스로 복종하지 않고 어째서 고고하게 구는가? 짐은 백성이 부귀하거나 빈천하게 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잠시 후 하상공은 손바닥을 가볍게 맞잡자 앉은 채 허공에 올랐으며 땅에서 100여 척이나 떨어져서야 허공에 그대로 멈춰 한참이 지나자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며 말하기를, “나는 위로는 하늘에 이르지도 않고 가운데로는 사람에 얽매이지도 않고 아래로는 땅에 거처하지도 않으니 어찌 백성에 속하겠는가? 그대는 나를 부귀하거나 빈천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문제는 크게 놀라 그가 신인神人임을 깨달았다.

하상공의 전설은 허공에 오르는 일이 운기雲氣나 천지의 바른 기운을 탔기 때문인지 바람을 부려서인지 구체적 방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손바닥을 가볍게 맞잡는 행위만으로 앉은 채로 허공에 오르고 땅에서 100여 척이 떨어진 후에는 그대로 멈추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신神으로만 날고 있지도 않으며 날개옷을 착용하거나 몸의 일부가 날개옷으로 전화轉化되지도 않고 발돋움을 통해 오르는 것 또한 아님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허공에 오르기 위해 육체적인 동작을 요구하지 않는 하상공의 전설은 지극히 동양적 사유 전통에 기인한 신선 비행의 원형에 가깝다고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영화에서도 묘사되는 일반적인 묘사나 이해는 여전히 힘을 써서 다리의 근육을 움직여 지면이나 수면 등을 가볍게 박차고 오르는 한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그 원형의 추적은 동양적 사유에 부합하는 신선 비행의 원의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김경수 성균관대 외래교수는 “오늘날 철학이 현실 문제를 외면한 채 공리공담에 빠져있으며, 철학논문 역시 대부분 현실과 무관한 논의들로 일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성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때마침 발표자의 논문은 일상적 주제를 가지고 철학적 담론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 논문이 보다 의미 있는 학술논문으로 이어지려면, 이 일상적 주제를 얼마나 심도 있는 학술적 논의로 이끄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서양에서는 기구를 통해 날 수 있다고 본 반면에, 동양에서는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그 자체가 난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이것은 정확한 구분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슈퍼맨은 분명히 어떤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자유자재로 날며, 논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동양의 경우에는 날개옷[羽衣]이나 구름과 같은 것에 의존해 날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필자가 한 때 좋아하던 무협소설에 간혹 절정고수들이 허공답보를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고도의 기술 역시 고도의 기 수련을 통한 결과이다. 그런데 본 논문에서는 어째서 서양에서는 기구나 슈퍼맨과 같은 초인들을 상정한 반면에, 동양에서는 어째서 기 수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느냐에 대한 논의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선조의 주역과 참동계의 연구와 의학’에서 “선조는 자신의 아픈 몸을 의술에만 맡기지 않고, 성리학의 수양론적 관점에서 자신의 신체를 살피고, 양생을 시도하였다. 여기에서 주역과 참동계가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치유적 관점이 동의보감에 반영되었다. 또한 성리학적 기초위에서 잡술로 빠질 수 있는 양생술의 방향을 바로 잡았다. 이것이 조선중기의 과학적인 의학관이었던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이밖에 종려의 수련론 고찰(최재호 성균관대), 태상감응편연구(정우진, 경희대), 임아상의 삼일신고 주해 연구(이승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등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