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건국연대는 모든 역사교과서가 약속이나 한 듯 기원전 2333년이라고 되어 있다. 분명 사서마다 연대가 다른데, 유독 1485년 서거정이 편찬한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모든 역사교과서가 고조선 건국 배경을 설명할 때 공통적인 내용이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고조선 건국 연대는 아무리 빨라도 청동기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청동기 시작 연대와 고조선 건국 연대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이미 교과서 수록 내용 중 첫 시작부터 모순을 갖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역사교과서에서는 단군신화 대신에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야기라는 표현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신화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신화가 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는 그 동안 한국사의 주체가 한국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한국사는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화라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인식을 통한 역사의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고조선이라는 용어가 갖는 함의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조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삼국유사』를 거론한다. 분명 『삼국유사』는 고조선을 풀어나가는 열쇠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고조선에 관한 역사인식에 따라『삼국유사』의 수록 내용을 취사선택할 때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늘날의 고조선은 대체로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즉 삼조선과 1392년에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거론하면서 고조선을 오늘날 사용하는 의미의 고조선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자조선은 거론 자체를 안 하면서 위만조선은 부각을 시키고 있다. 교과서 수록 내용으로 보면, "위만 왕조의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농업과 수공업의 발달을 가져 왔고, 그에 따라 상업과 무역도 발달하여 점차 강력한 국가가 됨에 따라 중국의 한나라 무제가 위협을 느껴 고조선을 공격하여 결국 고조선이 멸망하였으며, 한무제는 고조선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군현을 설치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한군현의 위치와 연관이 된다.

요즈음은 그 동안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국내 학계에서는 한군현의 위치를 한반도로 보지 않고 있다. 고조선의 중심지역이 요령지방과 대동강 유역이라는 교과서 내용에 따르면 학계의 통설과 상반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중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조선전」의 내용을 고조선, 즉 단군조선으로 이해한 결과이다. 『사기』「조선전」의 내용은 위만조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위만국에 관한 것이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 내에 있었던 오늘날의 요서지역에서 고조선이 이동하고 나자 기자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위만이 국호만 계속 '조선'으로 사용하였을 뿐 고조선, 즉 단군조선과는 다르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위만조선을 고조선의 역사로 보는 이유로, 첫 번째, 위만은 고조선으로 들어 올 때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왕이 된 뒤에도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위만은 고조선 토착민을 높은 지위에 많이 오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위만을 동이족 계통 혹은 조선인으로 보고, 그가 단군조선을 계승했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연관성은 인정되지만 위만조선이 고조선 그 자체임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응제시주』,『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우리나라 사서에 있는데도 중국 사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모든 우리나라 사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된 단군왕검의 건국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홍익인간이라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을 밝혀 주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단절이 아니라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동예, 옥저, 삼한 등 여러 나라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고려, 조선, 대한민국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의 영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마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고 한류 열풍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도 근대개혁을 위해 등장한 개화기의 근대 역사교과서로부터 오늘날의 현대 역사교과서에 이르기 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제도상이나 형태상의 변화가 주를 이루었고 실질적인 내용의 변화는 미약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고조선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에서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몇 자가 안 바뀌었지만 이것은 큰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즉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까지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한민국의 뿌리역사인 고조선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교과서에 반영되어 대한민국 교육이 진정한 개혁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을 통한 민족적 자존감과 국가적 자부심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교과서 개혁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하며, 특히 역사교과서의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민성욱 국학박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졸업

         국학박사(논문 '한국사에서 말갈 인식에 관한 연구')

            학교법인 한문화학원 법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