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섬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죽도(竹島)'이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우리 나라의 유인도 485개 가운데 죽도가 스무 군데나 된다. 충청남도 서천군과 홍성군에 각각 하나씩 있고 전라북도 옥구군에도 죽도가 있다. 섬 많은 전라남도에는 고흥군, 진도군, 신안군에 각각 하나씩 죽도가 있다. 물론 전라남도만큼 섬이 많은 경상남도 통영군에도 죽도가 하나 있다. 심지어 유인도가 둘밖에 없는 경상북도 울릉군의 유인도 하나가 죽도(다른 하나는 울릉도)이다.

여기에 무인도인 죽도까지 더하면 도대체 우리 나라에 얼마나 많은 죽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섬에서는 소나무, 동백, 후박나무 등이 잘 자라지만, 온난 다습한 해양성 기후를 좋아하는 대나무들이 우리 나라 섬을 비켜 갔을 리 없다. 조상(입도조)들이 섬에 들어갈 때는 뭔가 살 만한 것을 보고 들어갔을 것이고, 섬 이름을 지을 때도 사람 이름 지을 때와 마찬가지로 섬사람들의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규정해 줄 만한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 홍성죽도.

죽도는 대나무가 많은 섬이니 최소한 그 대나무를 엮어서 발이나 바구니를 만들어 팔아도 생계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또 고기잡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데도 대나무가 많으면 절대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나무는 예로부터 사군자 중의 하나로 대접을 받았다는 점도 섬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죽도'라는 섬 이름을 붙인 이유가 됐음직하다. 뭍 사람들로부터 '섬놈, 섬놈'하며 놀림을 당했던 섬사람들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자신들의 징표로 삼는 일은 그들의 긍지를 높여 주었을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내가 만나 본 죽도 사람들은 어느 죽도에 살건 대나무의 미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대나무의 곧음은 정직과 입신(立身). 마디가 곧고 굳으며 정결한 간격으로 맺혀 있음은 정절(貞節)과 의리, 대나무의 굳음은 강직과 굳은 의지, 몸통과 가지, 잎이 한결같이 녹색인 것은 평화와 일편 단심, 대나무 속이 비어 있음은 대도(大道)와 공심(公心)을 뜻한다.
대나무는 또 병을 얻어 생명을 다할 때에는 꽃을 피워 끝을 아름답게 맺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처럼 사군자 가운데서도 으뜸인 대나무 숲 속에서 자나깨나 대나무를 쳐다보고 상큼한 죽향(竹香)을 맡으면서 죽풍(竹風)에 살결을 맛사지당하며 사는 죽도 사람들에게는, 대나무와 '죽도'라는 섬 이름이야말로 그들의 삶 자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 멀리서 바라본 죽도.

죽도에 있는 대나무들은 왕대와 시누대, 그리고 산죽의 일종인 조릿대 등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대개의 경우 죽도에는 어느 섬이든 이 세 가지 중 한 종류의 대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세 가지 대나무가 섞여 있는 경우는 드물다. 경상남도 통영군 한산면 한산도 남동쪽 3㎞지점에 있는 죽도에는 왕대나무가 많다. 이 섬은 옛날에는 그냥 '대섬'이라고 불렀으나 행정 명칭상 '죽도'가 돼 버렸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구화리 구암 나루터 남쪽 2.3㎞지점에 있는 죽도에는 시누대가 많다.
우리 나라에 죽도라는 이름의 섬이 많다 보니, 가장 북쪽에 있는 죽도는 대나무의 북방 한계선과 그 위치가 대략 맞아떨어진다. 북위 37。6‘, 동경 130。9’에 있는 울릉군 죽도가 그곳이다. 그런데 이 울릉도 옆 섬 죽도에 관해서는 중요한 얘깃거리가 있다.

대나무가 많기로는 일본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집 주위는 물론 산과 들이 온통 쭉쭉 뻗어 올라간 대나무 숲 천지다. 일본의 대나무는 우리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줄기의 굵기가 두 뼘을 넘는 왕대나무이다. 그런 대나무들이 들판, 산속 할 것 없이 여기까지서 자라 있는 모습이 일본 대나무의 위용을 말해 준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대나무는 보잘 품이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성이 있어서 죽염을 만들 때에는 습한 공기에서 자란 일본 대나무가 한국 대나무의 효과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하여튼 대나무가 많다 보니 섬나라 일본에도 '죽도(다케시마)'가 우리 나라만큼이나 많은 모양이다. 그들도 '죽도'라는 이름에 별난 애착을 갖고 자기 나라 섬 이름의 등록 상표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때에는 꼭 독도의 옛 이름이 '죽도'였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달리 말하면 '죽도'라는 섬 이름이 일본 섬들의 고유한 이름이라고 강조하면서 독도의 옛이름이라는 '죽도'에서 일본 섬으로서의 동질성을 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도는 '죽도'라는 이름과는 눈 씻고 봐도 사돈의 팔촌간도 못 된다.

▲ 죽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

아직까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는 국내 학자, 언론의 어떤 주장에서도 그러한 지적이 없었는데, '죽도'라는 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허구성에 대해 필자가 여기에 새로운 주장을 하고자 한다.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죽도'는 독도가 아니다. 독도에는 대나무가 한 그루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이 허무 맹랑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들이 말하는 진짜 '죽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울릉도 동쪽 앞바다에 있는 죽도(관음도)를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섬을 다니면서 충청남도 홍성에서 정말 대섬다운 죽도를 만난 일이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에서 건너다 보이는 섬, 그만그만한 것들이 여덟 개가 줄지어 서 있는 섬이 바로 그 '죽도'다. 그 죽도는 천수만 한가운데에 떠 있다. 천수만이라고 하면 안면도가 남쪽으로 길게 꼬리를 내려 서해 바다를 막아 주어 이루어진 '바다 호수'이다. 간월암과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간월도가 이 천수만 안에 있다. 그런데 간월도와 안면도는 알아도 천수만의 죽도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죽도가 안면도나 간월도와는 달리 천수만 한 가운데에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뭍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 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천수만의 많지 않은 섬 가운데 안면도와 간월도는 이미 다리나 방조 둑으로 뭍과 이어졌으므로, 서산 갯마을의 정취가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은 죽도밖에 없다. 죽도는 외모가 아주 특이한 섬이다. 이름 그대로 머리 위에 무성한 시누대 밭을 이고 있어서 생기가 가득하다. 세 개의 어미섬 주위에 다섯 개의 새끼섬이 호위병처럼 둘러서 있는데, 여덟 개의 섬이 똑같은 형태로 검푸른 시누대 밭을 이고 있다. 마치 흑인들의 머리카락처럼 발 디딜 틈 없이 칙칙하다. 그 대나무는 시누대 종류지만 보통 시누대보다는 가늘고 조릿대보다는 굵다.

▲ 물고기를 파는 아낙네들.
     
 

죽도 주변 바다는 늘 호수처럼 잔잔하다. 서해 바다에 아무리 거센 파도가 일어도 안면도가 방파제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구도 주변 바다에서는 잔잔한 물을 좋아하는 대하(큰 새우)가 무진장난다. 크기가 15~20㎝쯤 되는 죽도의 대하는 9월 초순부터 이듬해 1월말까지 한창 많이 난다.
대하는 매우 특이한 회귀성 어족이어서 초여름인 5월에 죽도 주변에서 알에서 깨여 안면도 바깥쪽 내파수도 근처에서 자란 뒤 고향인 죽도로 돌아온다. 대하 성어기인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죽도로 건너가는 홍성군 서북면 남당리 포구에 가면 주말마다 죽도 대하를 사 먹으려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그들은 대하를 구워서도 먹고, 날것으로 머리를 싹둑 잘라서 몬도가네식으로 잘도 먹어댄다. 마치 대하를 먹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 같다. 더 싱싱한 대하를 먹거나 전어, 병어 같은 생선을 구하기 위해 죽도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한낮의 죽도 마을에는 몇몇 노인들밖에 남아 있지 않다. 아이들은 모두 뭍으로 유학 가고, 일할 만한 사람들은 부부 동반으로 고기잡이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죽도 노인들의 첫인사는 '밥 먹었수?'이다. 죽도에는 정기 여객선이 없고 식당도 없다. 물때에 맞추어 어선을 얻어 타고 건너가야 한다. 그러니 물때를 잘 모르고 들어온 사람들이 다시 남당 포구로 건너가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배를 쪼르르 굶고 있어야 한다. 노인들이 밥 먹었느냐고 물어 보는 것은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라 뭍 사람들의 그런 배고픈 설움(?)을 생각해서 하는 얘기다.

■ 충청남도 홍성 죽도, 죽도 가기

홍성 죽도는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에서 안면도 쪽(서쪽)으로 1.5㎞ 지점에 있다. 서울에서 온양․홍성을 거쳐서 간다. 기차를 타고 광천에서 내려서 갈 수도 있다. 홍성이나 광천에서 남당리행 버스를 탄다. 남당 포구에서부터는 죽도 사람들의 어선을 얻어 타야 한다. 따로 배를 빌리면 왕복 5만~10만원이다. 죽도에 민박 집이 있고 남당리에는 여관과 식당이 많다.
죽도는 어미섬과 새끼섬 여덟 개가 늘어서 있기 때문에 󰡐모세의 기적󰡑 현상이 하루에도 두 번씩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 물이 빠지면 바닷속에 가라앉았던 길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다상식>

물음 : 엘니뇨와 라니냐란 무엇인가?
 

답 : 스페인어로 '아기예수', '남자아이'란 뜻이며, 2년 내지 10년마다 주기적으로 남미의 페루 에쿠아도르 연안에서 수온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함.

엘니뇨(El Nino)란 스페인어로 '아기예수', '남자아이'란 뜻이며, 2년 내지 10년마다 주기적으로 남미의 페루 에쿠아도르 연안에서 수온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현상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현상은 주로 연말에 시작되어 수개월 이상 지속되며, 이 때에는 남동쪽에서 적도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약화되어 페루 연안 및 적도 부근에서 바다 밑 부분의 찬물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솟구침' 현상이 사라진다. 따라서 이 찬물에 포함되어 있는 풍부한 영양염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곳의 멸치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이다.

엘니뇨가 생기는 원인은 단순히 페루연안의 무역풍이 약화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열대 태평양 전체에서 대기와 상호작용하여 서태평양의 따뜻한 물이 페루연안(동태평양)까지 이동하는 데에 있으며, 이로인해 고기압과 저기압의 중심위치가 바뀌어 대기순환의 형태가 달라지므로 기상이변이 발생한다. 따라서 열대 및 아열대 지방의 홍수나 가뭄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습도 변화에 따른 산불 확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상변화는 강수량 변화에도 영향을 주어 농작물이나 토양에 이익 또는 손해를 주기도 한다.
반대로, 라니냐(La Nina)는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란 뜻인데 무역풍이 평년보다 강해져서 열대 서태평양의 따뜻한 물의 세기와 범위가 넓어지고 동태평양이 평년보다 더 차가운 표층수온을 형성하는 상태를 말한다.
태평양의 동서 열대해역 사이에 표층수온이 평년보다 크게 차이가 나는 라니냐 현상의 직접적인 대기 영향에 관해서는 아직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전 한겨레신문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