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에 내렸다.

날씨는 화창했다. 등산복을 입은 시민이 도봉산을 향하고 있었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도봉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천진사(天眞寺)까지 1시간이 걸렸다.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왼쪽(능원사 방면), 오른쪽(도봉서원 방면) 2가지 길이 있다. 이날은 능원사 방면으로 올랐다가 도봉서원 방면으로 내려왔다. 비교해보니 오른쪽 길이 더 편안했다. 시간도 10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 서울 도봉산 천진사 단군상
절이 가까워지자 단군상이 보였다. 절 정문 위로 단군상 얼굴 부위가 보일 정도다. 신문과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9미터에 이른다. 직접 살펴보니 밑에 단상을 포함한 크기로 보인다.

천진사 주지 능인 스님(75세)은 단군상 건립은 국당 스님(속명 전흥인, 1924~2003)이라고 밝혔다. 절의 창건주이기도 하다.

능인스님은 단군상 건립연대를 1930년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24년생인 국당 스님이 10대 시절에 단군상 건립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경향신문과 이강오 전 전북대 교수가 연구한 <한국신흥종교총람>에는 1967년으로 나온다.

절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 산신각, 요사채(승려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지은 집)가 있었다. 위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미륵상과 창건주 국당 스님 공덕비, 천불사를 만날 수가 있다. 천불사 안에는 국당 스님과 그의 스승 해문 스님 초상화와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사제 간의 일화에 대해 “강원도 유점사에 있던 해문 스님이 탁발을 나갔는데 어린 국당 스님을 보신 거죠. 관상을 보니 출가를 하지 않으면 험한 일을 당하겠다고 생각하신 거에요. 부모의 승낙을 받고 유점사로 데려갔다고 해요. 그래서 출가하시게 된 거에요”라고 능인 스님은 말했다.

유점사(楡岾寺)는 강원도 금강산의 내금강 지역에 있는 사찰이다. 금강산 4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능인 스님에 따르면 “해문 스님은 양산 통도사 조실에 오르신 분”이라고 밝혔다.

도봉산 단군상, 전국에서 찾는다!

▲ 천진사 단군상을 건립한 국당 스님
국당은 매년 10월 3일에 천제를 올렸다고 한다. 국당의 제자 능인 스님은 “한배검 할아버지라고 하시잖아요. 스님이면서도 (국조 단군을) 제일 많이 숭배하셨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어떻게 단군상을 세우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능인 스님은 “부처님과 단군을 모시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거든요. 국당 스님이 단군에 관한 현몽(現夢: 죽은 사람이나 신령이 꿈에 나타남)을 꾸신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도봉산에 오실 때 단군상을 세우고 싶어 하신 것으로 알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당의 단군상 건립을 단순히 꿈으로만 보기에는 미스터리다. 그의 비문을 살펴보면, 일제시대부터 “단군성상을 모셔놓고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달래며 민족정기를 일깨웠다”고 나온다. 일제로부터 수차례 투옥을 당했다. 그의 삶 자체가 단군과 민족정신으로 일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경향신문은 1967년 10월 3일 자 기사에 “단군성상의 동상제막식이 3일 하오 2시 서울도봉동산 29 단군성상봉안소인 천진궁에서 단군교 3백여교도들과 많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라며 “단군기원4천3백년을 기념 단군성상건립회(회장=김봉금)가 작년 7월 기공 천진궁 뜰에 건립했다. 높이 9미터의 진조대리석으로 된 이 단군상은 전흥인씨가 조각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국당이 단군상을 제작했지만 단군교 측에서 건립자금을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전화인터뷰에서 “이강오가 지은 <한국신흥종교총람>을 보면 1967년에 전흥인이란 사람이 도봉산 삼성전을 세운 기록이 있다.”라며 “이후에 절이 인수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국당 스님에 대해 천진사 측의 주장과 다른 점이 많았다. 이에 관해 비교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도봉산에서 내려다 본 천진사와 단군상 전경

단군상 건립 이후 전국에서 절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단군상에 참배하고 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당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절에서 단군상을 세운 것을 두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 능인 스님은 “다른 스님들은 뭐라고 안 그래요. (그런데)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왜 절에 단군을 모시느냐고 하는데, 당신은 조상도 없느냐라고 하죠.(웃음)”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천진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인터넷에 네이버 다음 천진사라고 쓰면 많이 나온다고 해요. 여기 오는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댓글도 올리고, 그래서 많이 오는 것 같아요.”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통합 차원에서 단군성전 건립 계획은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로 계속 무산됐다.(기사 바로가기 클릭 )

서울에서 단군상을 볼 수 있는 곳은 사직공원 내 단군성전을 제외하고 도봉산 천진사가 유일했다고 볼 수 있다.

태조왕건이 건립한 개태사에도 '단군영정'

충남 개태사(開泰寺)는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천호산(天護山)에 있는 절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936년에 창건했다. 이곳 정법궁에는 단군영정이 있다.

이에 대해 정양산 주지 스님은 “왕건은 사찰을 짓고 상량문을 쓸 때 ‘위대한 부처님이시여 하느님이시여 모든 천신이여’라고 올렸다”라며 “단군도 모든 천신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법궁에서 단군 관련 행사는 하지 않는다. 단지 “10월 3일 개천절 전후로 서울 단군숭모회에서 제사를 지낸다.”라고 정양 스님이 말했다.

개태사의 개태가 개천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룡스님은 “개태사라는 곳에서 3년 넘게 살았다. 개태라는 것이 개천이다. 고려 왕건이 도선국사의 명을 받고 개성에서 원찰을 짓지 않고 논산 개태사에서 원찰을 지었다. 도선국사 하신 말씀이 ‘삼한의 맥을 조화시킬 수 있는 데가 거기니깐 원찰을 지어라"라고 했다. 그곳은 부처님 위주로 모신 것이 아니라 환인, 환웅, 단군 역대 왕조를 모신 곳이다.”라고 밝혔다.(기사 바로가기 클릭 )

▲ 경북 성주군 대한불교태극종총본산아리사 내에 있는 환인, 환웅, 단군(제공=백보 스님)
경북 성주군 대한불교태극종총본산아리사는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있다. 

백보 스님(54세)은 출가한 지 20년이다. 조계종 동산 스님 밑에서 공부했다. 2005년 태극종단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지난 13일 전화인터뷰에서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도들에게 근본 뿌리가 없으면 그대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각자의 믿음이 있기 이전에 내가 있어서 믿음이 있지 않나.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종교가 필요 없다. 종교는 참되게 살기 위한 가르침이고 스승이 아니겠는가? 그 스승이 있기 이전에 근본 뿌리 가르침이 있었다.”

그는 12년 전에 천부경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했던 것. 백보 스님은 “공부하다보니 나의 고통이 천부경에 나오더라. 어떠한 경문도 천부경만한 경문이 없다”고 말했다. 방법론에서 차이가 날 뿐이지 근본 의의는 같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홍익문화운동협회가 전국에 세운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을 절에서 인수한 사례가 있다.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2리 무량사와 부산 서구 서대신동 보국사가 대표적이다. 보국사는 배정초등학교가 폐교하면서 그곳에 세워진 단군상을 인수했다고 한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