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이 되살아나고 있는가? 이는 생태학자나 환경운동가뿐만 아니라 자연으로의 '진정한 여행'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관심사이다. 한국의 여러 강 가운데 북녘의 압록, 두만강 외에 남녘 동강만큼 우뚝우뚝한 산굽이를 감고도는 우렁찬 흐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동강이 지난 2000년까지 댐 건설 여부로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래프팅업자와  관광객으로 자연환경이 동강나는 홍역을 치렀다. 따라서 댐 건설을 백지화한 이후 앞으로 동강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동강에 쏠렸던 세인의 이목이 동강의 흐름을 어느 쪽으로 가름할지는 동강에 사는 사람들과 환경, 관광 당국, 이 땅의 자연을 후손에 물려줄 우리 모두의 관심거리이다.

▲ 강원도 영월 동강

'강으로의 여행'은 자연주의 여행 가운데 생명의 활기를 가장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강은 언제나 산과 더불어 있어서 두 생명집합체가 서로 호흡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강변길 여정은 산새 물새, 들짐승 물고기, 산꽃 들꽃 물풀 같은 '길손 친구'를 끊임없이 만날 수 있어서 아무리 걷거나 달려도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의 기운이 에너지로 우리 몸에 들어오고 있음을 말한다.

영월 동강은 강원도의 높고 기다란 산골을 요리조리 거치는 것이어서 강원도 산과 강의 자연생태, 그곳 산마을 강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주저리 주저리 걸치고 있다. 5~6월에 비오리 가족이 새끼들을 무등 태우고 "날 살려라… !" 강을 질주하는 모습이나 수달이 제 머리만 한 조개를 얻어 들고 한밤중에 좋아서 까불어대는 모습이 선하다. 꽃밭 여울(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숯검은골(영월읍 거운리), 양지마을, 음지마을(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아랫보리실(기화리), 금새둥지(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신배나무골(고성리), 절두꼬데이(정선읍 광하리) 등 땅 이름은 그 속에 걸쭉한 삶의 이야기들이 농익어 배어있음을 알 수 있겠다. 더 나아가 '어라연 황쏘가리 이야기' (옛날 어라연에서 정 아무개라는 사람이 낚시를 할 때 갑자기 큰 뱀이 한 마리 튀어나와 그의 몸을 칭칭 감았다. 곧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웬 황쏘가리 한 놈이 펄쩍 솟더니 등에 난 톱날 지느러미로 뱀을 쏘아 정씨를 구했다. 그래서 정선에 사는 정씨들은 쏘가리를 먹지 않는다.), 호랑이가 사람 잡아먹은 이야기(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도끼비에 홀린 이야기(한 영감이 술에 취해 고개를 넘는데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 '영감님, 울 집에서 자고 가시오' 딱 그래더래요. 그 여자하고 유유동락을 했는데, 허깨비한티 홀랜기지 뭐. 깨어보니 나자빠진 고목 딱따구리 구멍이 망가져 있더래요… ,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정선에 와 운다는 이야기(길이 험해 올 때 울고 산수에 정이 들어 갈 때 울고… , 정선군 정선읍 광하리) 들은 땅 이름만으로는 충분히 담을 수 없는 사연들을 풀어 전하고 있다. 밤에 민가 귀틀집 코굴방에서 얻은 이런 이야기를 귀에 걸고 해맑은 자연속 강변길 산길을 가는 여정은 '동강 따라가기'만이 주는 감동이다.

▲ 동강 가수리느티나무.

나는 20001년 5월 마지막 주말 동강이 본격 시작된다는 곳 정선읍 가수리에서 예전 동강 떼꾼들이 떼죽음을 당할 만큼 뗏목 부리기가 가장 어려운 대목이었다는 황새 여울(평창군 미탄면 마하리)까지를 가 봤다. 두 곳은 다 2000년 '우이령보존회'와 '동강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모임'이 뽑은 '동강 12경'에 들어있다.
가수리가 12경에 든 것은 7백 년 묵은 느티나무 때문이다. 가수분교 교문 오른쪽 우뚝한 곳에 있는 이 나무는 높이 30미터, 둘레 7미터나 된다. 무슨 나무라기보다는 거대한 건축물 같은데, 거무튀튀한 몸통에 푸르디푸른 녹음 옷을 걸치고 바람에 살아 너울대는 모습이 성스럽다. 3일 전 이곳에선 무슨 조사를 하던 환경운동단체 회원들을 마을 사람들이 감금하는 일이 벌어졌다. 개발과 보존의 부딪침이었다.

황새 여울(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은 가수리에서 영월읍에 이르는 동강의 중간쯤에 있다. 물살이 센 여울목에 뾰족한 바위들이 널려있어 바위에 부딪히는 물고기를 먹기 위해 황새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바위들이 절경을 이루지만 예전엔 영월 거운리의 된꼬까리와 함께 뗏꾼들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여울목 한가운데에 물살이 쏠리는 '승문이바우' 라고 하는 큰 바위가 있어 뗏목이 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들어가면 뒤엉키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셨나... "  황새여울과 된꼬까리 지나기는 저승문 피하기와 같은 것이었기에 떼꾼 남편을 둔 아낙네들의 근심이 정선아리랑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뗏목이 줄지어 내려가던 1950년대 말 황새여울에서 죽거나 불구가 된 떼꾼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내로라하던 정선 떼꾼 털보 김상식, 남한강에서 소문이 자자하던 난봉 떼꾼 최동칠도 여기서 죽었다고 한다. (<동강 아리랑>, 진동선 지음, 수문출판사 냄, 22쪽).

가슴 조이며 황새여울을 지나고 한참 뒤 다시 어라연 아래 된꼬까리에서 살아난 떼꾼들은 물살과의 싸움에서 이긴 축배를 거운리 전산옥이나 덕포주막에서 들고자 했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냈으니/ 영월덕포 공지 갈보 술판을 닦아놓게... /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지어 놓았네/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
서울까지 떼를 한두 번 타면 1년은 먹고 살 '떼돈을 벌었던' 떼꾼들, 그들의 한설인 정선 아리랑 가락이 끊긴 지 오래, 지금 동강 굽이굽이마다 다시 '떼돈을 벌기 위해' 똬리를 튼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래프팅업자이다. 그들은 곳곳에 고무보트를 산더미로 쌓아놓고 강물이 붇기를 기다린다. 그와 더불어 조립식 숙박시설도 황급히 들어서고 있다. 댐 건설 백지화를 떼돈 벌 기회로 노리고 있는 그들의 눈초리에 동강의 운명이 까맣게 비치고 있다.

■'동강 12경'과 동강 지키기
'동강'이란 이름을 단 물줄기는 가수리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그 위쪽에선 임계 쪽의 골지천과 평창 발왕산이 내는 송천이 정선 아우라지에서 합수하여 조양강이란 이름으로 내려온다. 조양강은 오대천과 동대천을 달고 가수리에 이르러 동남천 물줄기와 합수해 비로소 동강이 된다.
동강은 가수리에서 내려와 '물이 아름다운' 수미 마을을 경계로 영월 땅으로 흘러든다. 51km를 더 흘러 평창 쪽에서 내려오는 서강과 영월읍에서 몸을 섞고,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경기도 양평에 이른다. 양평 두물머리(양수리)는 이 남한강과 인제, 양구의 소양강 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이라는 '두 물이 만나는 합수머리'이다. 여기서부터 두 물은 하나로 합쳐진 한강이 되어 서울을 지나 서해라는 '윤회의 세상'으로 몸을 푼다.

▲ 동강 수미마을 야생활

우이령보존회와 '동강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 모임'은 동강 명승지 가운데 상류로부터 12곳을 '동강 12경'으로 뽑았다. 1경-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풍경, 2경-운치리 수동(정선군 신동읍) 섶다리, 3경-나리소와 바리소(신동읍 고성리~운치리), 4경-백운산(고성리~운치리, 해발 882.5m)과 칠족령(덕천리 소골~제장마을), 5경 고성리 산성(고성리 고방마을)과 주변 조망, 6경-바새마을 앞 뼝창(절벽), 7경-연포마을과 홍토담배 건조막, 8경-백룡동굴(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9경-황새여울과 바위들, 10경-두꺼비바위와 어우러진 자갈, 모래톱과 뼝대(영월읍 문산리 그무마을), 11경-어라연(거운리), 12경-된꼬까리와 만지(거운리) 등이다.
'12'경을 뽑아 알리는 것은 동강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여 동강 사랑을 북돋우자는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동강 12경'이라는 주제가 자칫 사람들을 마구 불러들여 자연을 훼손하고 특히 동강 파괴의 장본인이라 할 래프팅업을 더 부채질할 우려도 있다. 환경운동단체들이나 '동강을 아끼는 사람들'이 '래프팅 막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

외국의 경우 자원이 풍부한 아마존 강이나 양쯔 강 등 큰 강을 제외하고 한국에서처럼 고기를 함부로 잡거나 래프팅 같은 격렬한 휘젓기를 하는 곳은 없다. 엄격한 규제와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동강처럼 자연이 수려하지만 작은 강에서의 래프팅은 그곳에 사는 수생 동식물을 내쫓거나 '열악한 환경' 쪽으로 길들이는 자연질서 파괴행위이다. 사람들이 동강을 감상하기 위한 접근은 자연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강가에 없던 길을 내어 마구 먼지를 일으키면서 내달리는 것과 아무 때 나, 어디서나 강에 들어가 휘젓고 고기를 잡는 행위 앞에 '동강 사랑'은 한낱 무색한 구호로 들려온다.

■가수리와 황새여울 가기
정선읍 가수리는 정선읍 소재지 남쪽에 있는 강변 마을이다. 정선읍에서 다리를 건너 외곽도로로 남쪽으로 20분쯤 내려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시속30km로 30분쯤 내려가면 가수리에 닿는다. 가수리에서 강변길로 계속 남하하면 수미마을을 지나 40분 뒤에 영월읍으로 이어진다. 서울가는 지름길이다.
진탄나루, 황새여울, 문희마을 등에 가려면, 평창읍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20여분 가서 미탄면으로 들어간다. 다시 정선쪽으로 5분 정도 가다가 태영석회라는 간판이 나오면 우회전성 직진한다. 한탄리, 기화리를 지나 마하리에 이른다. 마하리에서 비포장 강변길로 나가면 기화천과 동강이 만나는 삼각지 진탄나루가 나오고, 거기서 좌회전하여 1km 쯤 가면 바위가 널려있는 황새여울, 다시 1.5km쯤 가면 막다른 길 건너편에 백사장과 문희마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