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대원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일괄(寶城 大原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 一括)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 1800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보성 대원사 지장·시왕·사자탱화는 조선 영조 42년(1766)에 명부전 봉안용으로 화승 색민(色旻), 유심(有心), 계안(戒眼), 행종(行宗) 등 18명이 조성하였다.  이 불화는 전체의구성이 온전하게 남아 있고, 제작연대와 작가, 작가의 계보를 알 수 있다. 또한 화면의 구도나 색채가 18세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작품성도 우수하여 가치가 뛰어나다.  현존하는 조선 후기 명부전 불화 가운데 지장보살도, 시왕도와 사자도가 함께 남아 있는 드문 예이다. 각 그림마다 제작시기와 봉안처 등을 기록한 화기(畵記)가 있다. 

▲ 보성 대원사 지장보살도. <사진=전남도>

 시왕도는 조선후기  유행한 시왕도 양식을 따랐다.  각 대왕의 배치를 커다란 전각과 성곽에 둘러 쌓인 정원을 배경으로 한 것은 이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상단에는 시왕의 심판 장면을 묘사하고 하단에는 지옥 장면을 배치했다.  그림 좌우 상단에 각 대왕 명칭을 적고 화면 상단에 거대한 대왕과 판관, 사자, 우두신중, 천녀 등을 그렸다.  푸른 뭉게구름으로 나누어 하단에는 지옥에서 벌을 받는 인물들의 형벌 장면을 그렸고 , 제1대왕부터 10대왕까지 인간이 죽어서 재생하기까지 과정을 10단계로 묘사하였다.  각 지옥에는 승려 모습을 한 지장보살이 합장을 하고 지옥중생의 구제를 위해 노력한다.  벌을 받거나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자들 중에는 승려의 모습도 있어 눈길을 끈다. 사모관대를 쓴 관리 복장을 갖추 입은 판관은 시왕의 판결을 적거나 낭독하는 역할을 하며 시왕의 판결을 돕는다. 

사자도는 '직부사자도(直符使者圖)'와 '감재사자도(監齋使者圖)'2점의 사자도를 좌우 끝에 배치하였다.  사자(使者)는 중생을 명부세계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았다. 직부사자는 백마와 함께 표현하고 그 뒤에 하원장군(下元將軍)을 그렸다. 감재사자는 적마, 혹은 청마와 함께 표현하고, 여기서는 청마가 상원장군(上元將軍)과 함께 등장한다.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시왕(十王)은 불교의 명부신앙을 대표한다. 지장시왕도는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대에는 지장과 시왕을 한 화면에 그린 작품이 많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명부와 관련된 모든 존상을 모두 모아 함께 봉안하는 명부전이 성립되어 체계화한 명부신앙이 성립하였다. 이 영향으로  명부전 내부에 배치된 지장보살도와 시왕도를 여러 폭으로 나누어 그리게 되었다.  대개 중앙의 후부 탱화로 지장보살도를 모시고 좌우로 시왕도를 각각 5폭씩 배치하였다.  향우측으로는 홀수의 대왕을 배치하고 향좌측으로는 짝수의 대왕을 배치한다. 마지막에는 명부사자도(冥府使者圖)를 배치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18세기 불화들은 뛰어난 작품성과 제작 승려들의 계보가 밝혀지면서 미술품으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원사의 '지장·시왕·사자탱화'는 오랜 기간 동안 거처를 옮겨가면서도 잘 보존되어 왔다.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은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우수한 작가들로  여러 불화 제작에 참여하였고 작품의 수준도 뛰어나다. 

  조성 이후 계속 보성 대원사 명부전에 보존되어 오다가 1946년 대원사 지장전이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광주 덕림사 명부전에 봉안하였다. 1948년 사회 혼란기에 대원사 명부전이 불에 타버렸으나 극적으로 화를 면하였고, 2003년 4월10일 다시 대원사로 돌아와 200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6호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대원사 티벳박물관이 소장한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