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차경신
유관순(1902∼1920)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유관순은 독립운동계의 ‘김연아’다. 그러나 유관순 말고도 222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던졌다. 이 중에서 차경신(1892~1978)은 일본, 중국, 미국 등 가는 곳마다 독립운동을 벌여나갔다.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차경신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한 달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차경신은 1892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다. 선천읍 장로교 학교인 보성여학교를 거쳐 서울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를 졸업했다.

이후 함흥 영생학교, 원산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일본 요코하마 여자신학교 재학 중에는 도쿄 2·8독립선언에 참가한 뒤 김마리아와 함께 비밀리에 귀국했다.

곧이어 간호대 및 의주 청년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뒤에는 대한애국부인청년단(大韓愛國婦人靑年團) 총무 겸 재무를 맡아 군자금 모금에 주력했다.

▲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차경신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사진은 대한여자애국단 창립 17주년 기념식. 차경신은 왼쪽에서부터 6번째 인물이다.

1919년 12월, 국내 여성 독립운동 상황을 시찰하면서 삼도여자총회를 열어 결속을 다졌다. 이듬해 3월 1일에는 평안북도 선천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같은 해 8월 상해임시정부에서 도산 안창호를 도와 국내외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 대한애국부인청년단연합 대표로서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로스앤젤레스 한국어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서 교포 자녀의 민족 교육에 혼신을 다했다. 1932년부터 7년 동안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을 지냈다.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