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담화에서 언급한)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쪽(국가)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이렇게 말했다. 아베 총리 취임 후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귀를 닫고 지속적인 엔저(円低) 정책으로 끌어올린 경제를 발판 삼아 일본이 급격한 우경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전제했던 무라야마 담화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일본)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때, 국가의 정책을 잘못해 전쟁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존망을 위기에 빠뜨렸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 매우 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 1995년 8월 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 중 일부

 무라야마 담화는 지난 1995년 8월 15일 세계 제2차대전의 종전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당시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담화문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행한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로 당시 내각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이후 정권에도 계승되면서 일본정부의 공식적 역사관으로 인용되곤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계를 갖고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이는 어디까지나 전쟁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침략 행위"라며 그 범위를 한정 짓고 있다. 침략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사죄를 찾아볼 수 없다.

 평화적으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은 무라야마 담화도 이같은 한계가 있거늘, 이번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이마저도 완전부정하면서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단정했지만, 유엔 총회에서는 침략의 정의를 결의안으로 남겨두고 있다.

 "침략은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주권, 영토 보존이나 정치적 독립성에 반해 무력을 행사하는 것 또는 유엔 헌장과 상충되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 1974년 12월 14일 '침략'에 대해 정의한 유엔 총회 결의안 3314호의 부속문서

 아베 총리가 모르고 있는 '침략의 정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 총화 결의안 3314호의 부속문서에 명시된 이 정의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규정에도 원문이 인용되어 있다. 국제사회가 침략 행위와 침략 범죄를 처벌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정부가 공식 발표를 했고 유엔도 명백히 밝히고 있는 '침략'의 정의에 대해 유독 현재 일본정부만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일본 극우 정치 세력의 역사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하여 일본 정계를 장악한 극우 정치 세력은 현재 일본의 역사관을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미국 점령군이 주변국을 침략하고 일본군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던 것과 같이 과거 일본이 잘못했던 역사를 인정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극우 정치 세력이 주장하는 일본의 역사관은 바로 '일본 무오류 사관'이다. 일본의 역사는 무조건 옳고 무조건 자랑스러워야 한다는 것.

 이러한 역사 인식은 수년째 이어져 오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통해 해마다 우리나라에도 보도되고 있다. 이들 교과서는 '일본의 한국강점은 합법이다'라고 하면서 과거 '침략전쟁'을 '대륙진출'로 명시하고 있다.

 지난 23일 일본의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이는 단일규모로는 사상 최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정부의 극우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정치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쟁범죄자로 처형된 14명이 안치되어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일본 정치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영령의 명복을 비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본에는 국내법상 전범이 없다"며 "각료들이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를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는 한민족의 고대역사를 두 눈 뜨고 있는데 코 베이듯 중국에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다. 이제 일본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