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 한가운데 서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 한가운데 서다
  • 강현우 희망기자
  • cybersultan@daum.net
  • 승인 2013.04.07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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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오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차를 몰았다. 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사무실과 그리 멀지 않아 부담이 적었다. 도착하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어떠한 보물들이 숨어있을까. 그 보물들을 감상하고 휴대전화기에 담을 생각하니 마치 놀이동산에 온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석기 시대 유물부터 둘러보았다. 돌칼과 돌도끼를 보면서 자못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인류가 도구를 사용한 최초의 흔적이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개량하여 새것을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애초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최신형 컴퓨터나 심지어는 인공위성까지도 모두 저 돌칼과 돌도끼의 신세를 지고 있다.

 삼국시대로 넘어오면서 신라 시대의 금관들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뛰어난 세공 솜씨를 자랑하는 금관들을 보며 선조의 정교한 손기술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금관을 본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토록 아름답고 정교한 금관이 어떻게 그 당시에 가능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저 화려한 금관을 쓰고 용상(龍床)에 앉아 있는 왕의 모습. 때로는 한없이 자애(慈愛)로운 미소로, 때로는 추상(秋霜)같은 위엄으로 만백성의 고단함을 어루만졌을 것이다.

 한편, 금관의 화려한 문양 이면(裏面)에는 당시 세공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수많은 날을 고독과 싸우며 마치 한 땀 한 땀 자식의 옷을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그들은 세공작업에 청춘과 열정을 쏟았을 것이다. 그들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 있었기에 신라의 금관은 한반도의 울타리를 벗어나 전 세계인의 마음을 홀려버린 것이다. 시뻘겋게 달궈진 금 조각을 힘차게 두드리는 쇠망치 소리가 천 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내 귓전을 울린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런 금관들이 지역적으로는 신라에만, 시기적으로는 5세기부터 7세기까지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특히 신라가 중국 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7세기 중엽 이후로는 더는 발견되지 않았다. 신라의 금관을 버리고 중국식 면류관을 사용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 < 신라 시대 금관 >

고려 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정해서인지 확실히 불교 작품이 많았다. 그 중 탱화는 색채 예술의 극치다. 불교가 담백하고 소박하다는 것은 탱화를 보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모든 화려한 빛깔을 총동원한 듯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당시에는 백자의 ‘꾸미지 않은’ 고결함과 청자의 비췻빛 순미(純美)함이 같이 존재했다. 탱화는 갓난아기의 순수함에 감추어진 한껏 차려입은 새색시의 눈부심이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 < 불교 탱화 >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보았다. 붉은 빛깔의 관복 속에 드러나는 위엄은 한 왕조를 창업한 사람의 위대함을 표현해 주기에 충분했다. 이성계는 고려말 민중들의 영웅이었다. 홍건적과 왜구의 토벌에 항상 선봉장이었다. 그러던 그는 요동정벌을 명한 우왕의 명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죽이고 정권을 잡는다. 그러면서 그는 왕을 갈아치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는 과연 진정으로 왕이 되고 싶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은 민중들의 요구와 시대의 대의에 따라 왕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패자는 역적이 되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반동세력이 된다.

 

▲ < 태조 이성계 영정 >

동서고금을 통틀어 혁명이나 반란 뒤에는 항상 그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성계에게는 무학대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이성계를 부추겨서 고려 왕조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하게 한 1등 공신이다. 만약,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실패했다면 ‘반란의 주모자’로 몰려 제일 먼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불변하는 역사의 법칙이다.

  잠시 지나면 ‘절개(節槪)의 상징’ 정몽주의 영정이 나를 기다린다. 포은 정몽주. 선죽교의 참사. 널리 인구에 회자하는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 역사의 진실이 어떠했든 간에 정말 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는 정몽주의 충성심을 흠모했던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

 한편, 정몽주는 왜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당시 그는 많은 백성으로부터 지지와 신망을 받았던 대표적인 신진 관료였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이성계와 이방원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대세가 이성계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후에도 그는 조선의 건국에 반대했다. 결국에는 선죽교 위에서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써 청사에 길이 빛날 고려의 충신이 되었다.

 

▲ < 정몽주 영정 >

여기서 조선에 참여한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각자의 입장과 가치관이 있으니까. 조선에 참여하는 충분한 명분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역성혁명의 대의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본다. 입으로는 민중을 외치면서도 결국 속으로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길을 선택하는 것을. 그들에게 민중은 핑곗거리이며 자기 논리의 피난처에 불과하다. 조선의 건국을 위하여 밤낮없이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방원이 그랬고, 정도전이 그랬고, 하륜이 그랬다. 그들이 보는 백성은 정몽주가 보는 백성과 달랐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하나일진대 어찌 백성은 둘일 수 있겠는가.

 한반도의 역사가 그렇듯 조선 역시 많은 변란을 겪었다. 진실로 안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 중 하나가 병자호란이다. 대대손손 전해지는 삼학사(三學士)의 절개는 백미(白眉)다. 주화파(主和派)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에 끌려가서도 척화(斥和)를 주장하며 조선인의 당당한 기개를 보였던 그들의 높은 애국심을 존경하는 것이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그들의 서릿발 같은 글귀가 마음에 큰 파도를 일으킨다.

 

▲ < 윤집 글귀 >

박물관에서 찍은 여러 사진 중에서 동양화가 으뜸이다. 오래된 묵향(墨香)이 그림에서 진하게 배어 나온다. 여백(餘白)의 아름다움이 나를 쉬게 하고 명상시킨다. 그 여백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쉼터이자 평화의 공간이다.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를 온전히 ‘나’이게 만든다.

 소의 게으른 울음소리를 들으며 밭을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잠시 후에 ‘아무런 예쁠 것도 없는, 그래서 더욱 예쁜’ 아낙이 새참을 머리에 이고 논두렁을 열심히 달려온다. 그 새참에는 방금 담근 김치가 있다. 갓 볶아낸 멸치가 있다. 갓 딴 고추가 있다. 갓 담근 고추장이 있다. 갓 딴 고추를 갓 담근 고추장에 찍어서 아삭 한 입 베어 물면 온갖 시름이 하늘 위로 날아갈 텐데. 시골의 농사짓는 풍경이 농부들에게는 뼈 빠지게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낭만을 주기도 한다.

 

 

 동양화의 주된 소재는 사군자(四君子)인데,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매화(梅花)와 난초(蘭草)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드디어 꽃을 피운다. 매년 3월이면 여기저기서 매화축제가 열린다. 봄을 알리는 꽃 중에서 매화만큼 매력있는 꽃이 또 있을까. 사실 매화는 겨울에 눈 속에서 피기 시작한다. 그래서 ‘설중매(雪中梅)’라고도 한다. 그 후 3월에 만개(滿開)를 하여 진정 봄을 알린다. 그 겨울의 춥고 매서운 칼바람을 온 몸으로 견디며 기어코 꽃을 피워내는 인내. 그래서 매화의 꽃말이 바로 ‘인내’, ‘고결한 마음’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난초다. 난초는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강하다. 곧게 뻗은 잎은 선비의 기개와 정신을 상징하고, 짙은 향기는 선비의 수행 향기이자 절조의 향기다.

 

▲ < 매화도 >
▲ < 대나무와 난초도 >

마지막 행선지 출구를 빠져나오니 배고픔과 피곤이 몰려왔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옆을 보니 아빠 손을 잡은 아이가 기념품을 사달라며 계속 칭얼댄다. 예쁜 엽서라도 몇 장 살까 하여 가게 들어가 보았다. 알록달록, 형형색색, 올망졸망. 가게 점원의 미소가 마치 연꽃을 든 부처님의 미소처럼 고와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석양이 그림자를 길게 뻗고서 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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