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神市)의 꽃, 무궁화를 아십니까?
신시(神市)의 꽃, 무궁화를 아십니까?
  • 윤관동 기자
  • kaebin@ikoreanspirit.com
  • 승인 2013.04.05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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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꽃의 계절이다.

거리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특히 눈처럼 화사하게 핀 벚꽃은 카메라 세례를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국화, 무궁화는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7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100여 일간 쉬지 않고 핀다는 무궁화는 사실 봄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래서 3~4월 동안 무궁화 묘목을 심으면 여름에는 꽃을 만날 수가 있다.

▲ 한민족 5천 년 역사와 함께 해온 '무궁화'(제공=산림청)

일부 시민은 식목일 즈음에 외국 꽃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이 무궁화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전에 어릴 적부터 무궁화에 대한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지난 삼일절 좌담회에 참석한 구영숙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강사는 국경일 수업 중간에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이 ‘무궁화 꽃은 못 생겼어요. 벚꽃이 예뻐요.’라는 말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무궁화에 대한 오해는 대일항쟁기 시기에서 찾을 수가 있다. 당시 독립지사들이 광복정신의 표상으로 무궁화를 내세우자 일본은 무궁화는 눈에 피꽃이다.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 또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기는 ‘부스럼 꽃’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무궁화가 예쁘기는 한데, 진딧물 같은 벌레가 많다’라는 말들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이춘강 무궁화연대 회장은 “그것은 무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장미가 무궁화보다 병충해가 더 많다”라고 밝혔다. 특정 식물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무궁화에 대해 우리가 잊어서 안 될 것은 바로 한민족 5천 년 역사와 함께해 온 꽃이라는 데 있다.

무궁화에 대한 기록은 중국사서에 발견할 수 있다.

君子國在其北…有薰華草朝生夕死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

중국 상고대의 지리와 풍속을 기록한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훈화초는 무궁화를 일컫는다.

또한 중국의 고전《고금기古今記》에는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가 되는데, 목근화(무궁화)가 많다."고 적고 있다.

▲ 단군왕검
우리나라의 기록으로는 《단군세기》와《규원사화》에 잘 나타난다.

고려 공민왕 12년 행촌 이암이 강화도에서 지었다는 《단군세기》에 무궁화(桓花)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

16년 정축(丁丑)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환화(桓花)를 많이 심었다.

20년(戊戌)에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여 천지화(天指花)를 심고 아직 결혼을 안한 자제(子弟)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으니 이를 국자랑(國子郞)이라 하였다. 국자랑이 나와 다닐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그때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

소도는 고조선의 제후국에 있는 성지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다. 이곳에는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살며 죄인이 이곳에 도망을 해도 잡지 못하는 신성한 곳이다. 이러한 장소에 심는 꽃인 천지화는 보통의 꽃이 아닐 것이다. 또한 천지화(天指花)의 의미를 살펴보면 지(指)는 ‘가리키다, 곤두서다,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천지화는 곧 하늘을 가리키는 꽃이 된다.

《규원사화》는 조선 숙종 원년(1675)에 북애자가 저술한 것이다. 무궁화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庚寅歲壬儉伐元年種薰華於階下以爲亭
경인년은 벌음 임금 원년이다. 훈화(薰華)를 뜰 아래 심어 정자를 만들었다.

郭璞贊之則曰有東方氣仁國有君子薰華雅好禮讓禮委論理
곽박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동방에 어진 나라가 있는데 군자와 아름다운 훈화가 있고 사양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는 이치로 따진다’고 했다.

이처럼 단군조선시대에는 환화(桓花), 훈화(薰華) 천지화(天指花) 등 다양하게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한국에서 20년을 살다 간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는 자신이 쓴 '풍류한국'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들은 그들의 왕실이나 귀족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조선은 유일하게도 왕실의 꽃인 이화가 아닌 민중의 꽃, 국민의 꽃인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정해졌다."라고 밝혔다.

우리 민족 스스로 아끼고 사랑한 무궁화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함께 알려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 물질만능주의 현실에서 잃어버린 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라는 애국가처럼 나라의 꽃을 심으면서 우리 민족의 얼도 삼천리 강산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도움받은 책. 《무궁화대전無窮花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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