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에서 벗어나 독립운동가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자."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에서 열린 국학원 제116회 국민강좌에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근대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 국민강좌서 '근대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

그는 "왜 식민사관이 만들어졌고 유지가 되는지 그 뿌리를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사가 왜곡되게 된 데는 두 세력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 후기의 유학 세력들로 조선 후기 인조반정 이후로 유학자들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우리를 작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소중화 사상이 굳어지면서 우리 역사를 중국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조직적으로 역사 왜곡을 하는 두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 문제는 해방 이후 이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조 반정의 논리는 "조선 사대부(서인)들의 임금은 명나라 황제이며 조선의 임금은 명나라 황제의 신하다. 조선 임금은 조선 사대부와 같은 계급이다. 광해군은 임금(明帝)을 배신했다. 조선 사대부가 광해군을 축출하는 것은 명나라 황제에 대한 충성이다."라며,  즉 소중화 사상에 철저히 입각한 것이다.

또 이완용은 처음부터 친일파가 아닌 항상 권력이 있는 쪽에 있는 인물이며 친미파→ 친러파→ 친일파로 옮겨 다닌, 주체적 정치노선도 없었던 인물이다. 당시 총리 이완용은 경술국치의 공로를 서인계 노론이 아니라 일진회에 빼앗길 것 같아 비서인 이인직을 시켜 밤늦은 시간 몰래 통감부 외사국장(현재의 외교부장관격 이완용의 일본 유학시절 스승)에게 보내어 비밀협약을 추진했다.  당시 이인직이 궁금했던 건,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면 어떤 대우를 해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외사국장은 "조선귀족령을 만들어 귀족으로 만들어주고 특별예산을 편성해서 충분히 대접해주겠다"고 약속하니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의 주인만 "청(중국)에서 일본으로 변하는 것"일 뿐이라 좋아한 인물이다. 이것 또한 인조 반정의 논리라고 이 소장은 지적했다.

이 소장은 "세종대왕이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 때 R과 L, P와 F, B와 V를 다 구분하게 하여 놓으셨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표음문자였는데 1930년대에 일본이 만든 '두음법칙'때문에 구분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하니 아직도 이토 히로부미가 만들어 놓은 조선교육령의 시스템 속에서 한 치도 수정되지 않은 국사와 국어교육을 받고 있다고 통탄하였다.

일제가 조직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게 된 동기는 삼일운동에 있다. 삼일운동이 왜 일어났나 원인을 분석해 보니 바로 역사관에 있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잡지 않으면 계속 통치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통해서 역사 왜곡을 하였다.

▲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행한 『중국역사지리도집』에 표시된 동북공정의 만리장성(사진=이덕일 소장 강연자료)

이 소장은 독립운동가와 식민사학자의 역사관에 대해서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하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만리장성을 살펴보면 중국에서 발행한 『중국역사지리도집』에는 낙랑군의 위치가 만리장성의 위치가 한반도 북쪽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소장은 과거의 중국 고대 역사서에 따르면 낙랑군의 위치가 유주(현 북경)에 속해있고 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며 요동에 있다.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쓰여 있고 있다고 하며 이것만 보아도 동북공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독립운동가와 식민사학자의 역사관으로 바라본 한사군과 낙랑군의 위치(사진=이덕일 소장 강연자료)

또한 일제의 이나바 이와기치와 이병도는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군으로 주장한 것도 잘못 되었음을 지적했다. 과거의 1차 사료들만 잘 살펴 보아도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부족한데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것은 사료를 독점하였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소장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관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며 "일제식민사관이 아닌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으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관이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역사관으로 삼아야 될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