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월드가 지난 2월15일로 창립28주년을 맞았다.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는 동안 단원드가 국가의 정체성회복과 국민건강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단원드가 걸어온 발자취와 중요 활동내용을 살펴본다.

단학선원(단월드의 전신) 제1호 센터가 1985년 서울 신사동에 들어섰다. 단월드 설립자인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 총장이 경기도 안양 충현탑공원(현재 현충탑공원)에서 무료 수련장 운영을 시작한 후 5년 만의 결실이었다.

단월드 설립에 대한 이 총장의 뜻은 분명했다. 세상을 힐링하는 홍익교육 기업이 되길 바랐다. 전라북도 모악산에서 먹지도 눕지도 자지도 않은 채 21일 고행을 하며 얻은 그의 깨달음이 '인간성을 회복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홍익정신 문화의 발상지인 우리나라부터 힐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7년 8월 자신이 집행위원장을 맡아 추진한 '민족정신광복기념대회‘와 ’민족정신광복국민운동본부발기인 대회 및 창립총회'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민족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바로 알자”는 국학운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구심점인 민족정신이 외래문화와 사상・종교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국민도 제정신인 홍익정신을 잃고 물질사회가 빚어내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단월드는 '국학운동을 통한 홍익정신 회복'이라는 이 총장의 뜻을 이어받아 매년 크고 작은 국학행사 운동을 지원했다. 자사의 이윤추구를 최종 목적으로 삼는 여느 기업과는 출발점이 확연히 달랐다. 자사의 이윤추구는 목적이 아닌 홍익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국학운동은 의식이 깨인 사람들이 모여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1997년 8월 독립기념관에는 민족정신광복기념대회를 위해 4만5,000명의 사람이 운집했다. 민족정신을 되찾자는 뜻이 좋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단월드 회원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2003년 12월 단월드는 중국의 동북공정 저지운동을 위한 '고구려지킴이 100만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의 야욕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었다.

고구려지킴이 100만 서명운동은 온 국민의 가슴에 애국심을 일깨워 120만 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어 2004년 1월에는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대응 메일을 발송하는데 네티즌 100만 명이 참가하여 중국의 단독 등재 응모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창출했다.

2008년에는 우리 민족정신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개원에 후원기업으로 나서기도 했다.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 세운 33m 높이의 국조 단군왕검 입상은 '국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개천절을 맞아 단월드는 국학원과 함께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서 개원식과 제2회 세계 지구인축제를 열었다.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등 8개국 단월드 1천여 명의 외국축하사절단을 포함해 1만여 명이 참석한 개천 축하행사였다.

2011년에는 '개천절 요일제 반대 및 단기연호 부활 100만 서명운동'과 '바른 역사정립과 평화통일기원 전국달리기대회'에 참여했다. 2012년에는 '우리얼찾기 100만 서명운동'에 동참하여 13일 만에 100만 서명을 달성하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는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열린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 국민이 신이다' 양심투표 행사를 후원해 '홍익 대한민국을 만드는 홍익 대통령' 당선을 기원했다.

단월드는 3.1절, 광복절, 개천절 등 연중행사 외에도 국학 관련 학술포럼, 바른 역사 알리기 운동, 1달러의 깨달음 운동, 지구시민운동 등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동참해왔다.

국가도 나서서 하지 않는 민족정신 회복운동을 제 사명이라 생각하며 묵묵히 일구어온 날이 올해로 28년이 되었다. 이제 그 노고에 더 많은 국민이 제 얼을 찾고 깨어나기 시작했다. 단월드는 '나라의 참주인인 국민의 신권(神權)을 깨워 홍익 대한민국을 만들 때'가 왔다며 더욱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