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비하지 않으며….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 13장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두 뺨을 적셨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그립고 좋았는지 몰랐다. 26년 전 신귀자 씨가 만난 성령체험이었다.

신 씨는 ‘하나님의 영이 말씀을 통해 나를 인도했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남편을 위해 단식기도를 했고 시부모의 종교도 바꿔놓을 만큼 신앙 생활에 정성을 다했다. 교회에서 중등부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고 12구역 50세대를 통솔하는 지역장이었다.  그가 9년 전 단무도를 만나 삶의 진로를 바꿨다. 단무도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바꾸었나, 궁금했다.

서울 종로구 안국역 2번 출구에 나와 건널목 건너 단무도 안국도장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신귀자 부관장(59세)은 손자를 둔 할머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고 활기가 넘쳤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화술에 놀랐고 머리 높이까지 발차기를 보여준 그의 무예실력도 탄성을 지르게 했다. 단무도는 참 재밌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는데, 신 부관장의 삶은 더욱 흥미로웠다.(단무도에 대해서는 1편 기사 참조) 

▲ 신귀자 단무도 안국도장 부관장

몸에서 찾은 ‘진리’

“‘우리 몸이 진리입니다’라는 말씀을 듣고 제가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성경에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목사님은 예수님은 진리이고 우리는 진리라고 하지 않으세요.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회개해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 아들로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고….”

신 부관장이 2003년도에 신사도장에서 처음으로 김현 대한단무도협회장과 상담했을 때 이야기다.

그는 교회를 다니는 동안 헌금을 많이 냈다. 천만 원도 낸 적도 있고 생활 자체가 십일조로 이뤄졌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단무도 1년 교육비를 결제하고 나서 너무 기뻤다고 한다.

“제 입에서 평화의 찬송가가 나오는 거에요. 너무 기뻤죠. 돈을 썼는데 이렇게 기쁘기도 처음이었어요.”

등산하면 앞의 사람을 따라갈 수 없었다. 숨이 가빠서 몇 번이고 쉬기를 반복했다. 단무도는 그의 호흡이 깊어지고 체력을 좋아지게 만들었다. 건강만 찾은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찾았던 진리도 증조부가 독립운동하신 역사도 바로 찾게 되었던 것이다.

신 부관장의 고향은 경북 문경이었다. 그가 7살이던 어느 날 새벽에 교회를 가야 하는데 어머니가 안 깨웠다고 하루 종일 울었다.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결혼하고 서울에서 시작했다. 성경을 수백 번도 넘게 읽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을 통해 그가 만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었다. 1988년부터 교회에서 부흥하는 기운이 꺼져가는 것을 느꼈던 그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잘 알려주는 작은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곤혹을 치렀던 것은 남편이었다.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작은 교회로 옮긴다니까 ‘사모님께서 이단 삼단으로 빠졌나 보다’고 했죠. 우리 남편(장로)이 정식으로 신앙 공부한 사람이라고 막아줬어요.”

작은 교회에서 만난 목사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말해줬다. 동생의 동창생은 옛날에는 단전호흡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것도 듣게 되었다.

직접은 아니었지만 목사를 통해 접한 단학 관련 정보는 그를 수련의 세계로 이끌어준 계기였다. 남편이 또 한 번 놀라지 않았겠냐고 물어봤다.

“그때 마음이 많이 안 좋아졌겠죠. 이전에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절하는 것도 못하게 했는데, 부모 공경하는 것이라고 괜찮다고 하니 몇 번이고 뒤집어졌죠. 과묵하면서도 (저를) 사랑해줘요. 저를 바라봐줘요.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아무튼 감사해요. (그래도) 저를 믿으니깐 요. 우리 작은 딸이 단무도를 하면서 밝아지니깐 남편이 좋아했어요. 큰딸은 피아니스트인데 결혼해서 사위와 함께 단무도 유단자가 되었고요.”

그는 <단학> 책을 3번 정독하라고 했을 때 그날 집에서 모두 읽었다. 진리를 우리 몸으로 대입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고 기억했다. 지도자도 어려워서 빌려주지 않은 <상단전의 비밀>은 직접 사서 읽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궁금했던 점이 풀렸다. 성경도 수백 번도 넘게 읽었던 그였다. 우리 역사도 찾게 되면서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부도지’를 통해 인류의 시원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가슴에서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역사 강의를 듣는데 할아버지 생각이 나오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밤에 잠을 못 잤어요. 증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셨거든요. 역사의식이 투철하신 분이셨어요. 전에 어머니가 서울에 자주 올라와서 광복회관을 다니실 때 저는 모셔다 드리고 교회에만 빠져있었죠.”

그의 증조부 신경희(申景熙 1849∼1907)는 을미사변에 격분해 1896년 정월 예천군에서 기의(起義)한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서 참모관으로 종군했다. 1907년에는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적탄을 맞고 적에게 생포됐다. 끌려가는 도중 탈출하여 산중에서 치료하던 중에  별세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한 사람도 귀하다

신 부관장은 지난 2004년부터 검찰청, 국방부, 교육과학기술부, 행정안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단무도를 지도해왔다. 그가 지도한 팀은 중앙부처 국학기공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실력도 출중하다.

그 비결은 수련하러 오는 회원이 한두 사람뿐이어도  결코 쉰 적이 없는 성실함이었다.

“공직자들은 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에요. 귀중한 분들이죠. 성경에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거든요. 이분들의 본성은 귀하잖아요. 수련을 통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회원이 주변 회원에게 ‘그 사람 이상하니까 가까이하지 마세요’라는 부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그분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기운을 줬어요. 귀하기 때문에 아무 조건 없이 최선을 다했어요. 활공을 해줬어요. 갑자기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그동안 죄를 많이 지었다고 말하시더라고요.”

그녀의 회원사랑은 국방부가 끝나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요청이 오는 등 지금도 끊이지 않는 단무도 마니아를 만들어내고 있다.

겨울철 건강관리비법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즘처럼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 건강관리하는 비법을 전수받고 싶었다.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동작으로 가르쳐달라고 했다.

▲ 뱃심이 좋아지는 기마보

■ 기마보

기마보는 다리를 벌리고 양발에 고르게 힘을 주며 자세를 낮춘다. 무게 중심은 척추 끝에 둔다. 고관절에 힘을 빼고 뒤꿈치에 체중을 실어야 한다. 이 자세에서 뒤꿈치를 밀며 호흡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상체는 힘을 빼고 10번 정도 반복한다. 호흡은 자신의 몸에 맞게 한다. 아랫배에 저절로 힘이 생긴다. 다리도 힘이 생기고 상체는 가벼워진다.

▲ 허리가 좋아지는 요고 돌리기

■ 요고 돌리기

두 발은 11자로 하고 꼬리뼈를 살짝 당겨서 회전을 걸어준다. 호흡은 내쉬면서 하다 보면 가슴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허벅지가 압력이 되고 다리가 팽팽해진다. 이 자세는 몸 전체에 집중해야 된다. 집에서 20~30분 정도를 하면 허리가 좋아지고 수승화강((水升火降)이 이뤄진다.

신귀자 부관장은 단무도는 ‘하체단련’하는 동작이 많다면서, 정충이 되면 가슴이 열리고 신수가 훤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10분만 해도 땀이 날 만큼 운동량이 되었다. 고생한 얼굴이 아니라 신수가 훤해지는 얼굴이 되고 싶다면 지금 시작해보시라.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