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전역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오전 8시 출근해서 밤 9시가 되어서야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무언가 보상을 해줄 거라는 기대는 부질없는 일임을 입사 2개월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대기업 계열사임에도 다른 직원들은 모두 연봉직이나 연봉계약직인데 저 혼자만 계약직입니다. 저를 챙겨주시던 팀장님도 ‘노력해봤는데 안 되었다, 인사체계가 그렇다.’며 미안해하십니다. 고졸 주제에 사무직만 고집하는 제가 잘못인 건가요?“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학진학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고졸자들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5%로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들 2/3이 전문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을 꼭 가야만 하는 것일까?

영국 타임스 계열 매체인 ‘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이 지난 10월 공개한 2012-13년 '타임스 대학평가'에서 우리나라 포항공대(50위), 서울대(59위), KAIST(68위), 연세대(183위) 등 4곳이 200위 내에 포함됐다.
미국 76곳, 영국 45곳, 다음으로 많이 랭크된 국가가 12곳으로 네덜란드였다. 흥미롭게도 네덜란드에는 총 18개의 연구중심 대학과 43개의 실무중심 대학이 있다. 실무중심대학은 말 그대로 실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대학이기 때문에 논문을 발간하지 않는다. 논문을 발간하지 않는 대학은 순위에 포함되지 않으니 결국 네덜란드는 18개의 연구중심대학 중 12개의 대학이 세계 200위 안에 드는 수준 높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학생 적성 조기에 발견해 맞춤교육 실시

네덜란드는 중·고등학교를 통합해 운영한다. 학생들은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직업준비중등학교(4년 과정), 일반중등학교(5년 과정), 대학준비학교(6년 과정) 등 세 가지 유형의 학교에 진학한다. 직업준비 중등학교에서는 직업 교육을 받고 졸업한 뒤 바로 취업을 한다. 일반중등학교 졸업자는 응용과학대학에 진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연구중심대학에는 대학준비학교 졸업자만 진학할 수 있다. 각 학교의 진학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국가가 치르는 학업적성검사인 ‘시토(Cito)’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종류의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대학에 진학 할 건지, 진학한다면 어떤 종류의 전공을 할 것인지 결정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선택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대학준비학교에 진학하려고 입시 경쟁이 있을 법도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학업적성검사를 준비하는 사교육도, 경쟁도 없다. 이는 네덜란드 학생들의 중등학교 진학을 성적순으로 우열을 가르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탁월한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 적합을 따지기 때문에 시험 준비를 할 수가 없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전경 (사진=암스테르담 페이스북)


이처럼 초등학교 입학 이후 국가에서 학업성적, 적성,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각 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상위 교육기관으로 진학한다. 때문에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이 거의 없다. 다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는 졸업을 위한 졸업시험, 논문 등의 요구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학부 과정 3년을 3년 안에 졸업하면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 한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네덜란드 대학교에는 공부할 학생들만 간다. 네덜란드 유학생 최현아(26) 씨는 "대학생들이 술 먹고 수업 빠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운동을 하거나 때론 놀기도 하지만 대부분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대학을 나왔든 안 나왔든 학력으로 차별하지 않는 건 서유럽 국가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네덜란드 역시 저학력자라 무시하거나, 고학력자라고 해서 우러러보는 문화는 아니다. 무엇보다 고학력자라고 무조건 소득이 높은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입으로만 따지면 배관공이 교수보다 더 많다. 기업에서도 일반중등학교 졸업장이면 충분한 자리에 굳이 대학 졸업자를 뽑지 않는다. 그래서 엔지니어나 과학 분야 같은 고학력자들을 제외하고는 인문계 고학력자들은 일자리 찾기가 녹록치 않다. 한 예로 공부하는데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심리학자나 치료사 같은 경우는 실업률이 무척 높은 편이다.

네덜란드 교육 시스템은 우리에게 꿈만 같은 일?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학에 가고자 했던 결정적 이유는 대학 졸업자들의 임금 수준이 고졸자들에게 비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학력 간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에서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50~60대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차이가 2005년에 비해 약 40퍼센트 가량 줄어들었다. 이처럼 50~60대에서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줄어든 이유는 보상 체계가 연공서열제에서 성과급 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소수 대학졸업자들이 고소득 직종을 차지하면서 정년까지 높은 임금수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경력보다는 능력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면서 임금격차가 줄어든 것이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은 “90년대 후반 대졸자 임금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하자 높은 임금을 기대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이후 노동시장에 대학졸업자가 늘어나면서 대졸자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져 임금격차가 다시 줄어 이에 따라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우리나라도 높은 소득수준을 기대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교육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창업이나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무엇보다 학력에 대한 선입견의 개선이 시급하다. 한 여론조사에서 고등학생들이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고졸 취업자들에 대해 학력이 아닌 능력에 따른 인사가 단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