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마흔이 되면 '불혹(不惑)'이라,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고 했다. 그런 마흔이거늘, 이 나라의 40대는 10대가 된 자식과 예순을 넘긴 부모 사이에서, 치고 올라오는 직장부하와 위에서 누르는 상사 사이에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대한민국에서 40대 남자들이 모이면 확인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학번도 군대 기수도 아니다. 바로 연봉, 집 평수, 그리고 타고 다니는 차종이다. 얼마를 벌어 몇 평에 살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를 보고 그 모임 내에서의 서열이 정해진단다. 그런데 과연 숫자로 평가된 이 나라 40대들의 인생, 행복할까.

 이 질문에 40대 중반에 들어선 서울국학원 정영일 활동가(은평국학원 사무처장)는 한마디 했다.

 "성공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높은 연봉에 넓은 집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겠죠.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행복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그런 성공은 가장이 건강만 잃어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겁니다. 한순간이죠.

 저도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집사람이 만족하고도 넘칠만한 돈을 벌어갔었죠. 가족에게 헌신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내 가족이 이렇게 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은 헌신했다고 하는 저도, 집사람도, 가족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더군요. 그때 질문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이 헌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그때 만난 것이 국학입니다."

▲ 서울국학원 정영일 활동가. 그는 서울 첫 구국학원인 은평국학원의 사무처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큰돈을 버는 것으로 가장의 책무를 다 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런데 숫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영일 사무처장은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모두가 행복해질까.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사 지킴이 운동이 막 시작될 때였다. 2002년 7월 개원한 국학원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이 나서 중국대사관과 서울 탑골공원 등 각지에서 다양한 시위를 벌이며 중국에 항의했다. 우리 역사 지키기 100만 서명운동도 펼쳐졌다.

 정 처장은 2005년 청와대 앞에서 국학원 회원들과 함께 동북공정 규탄 1인 시위에 참가하면서 국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 경호처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 처장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더니 검문소에 있는 의경에게 "단군은 신화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정말 놀랐습니다. 아니 충격 그 자체였죠. 대한민국에서도 그 정신이 가장 바르게 서 있어야 할 청와대의 검문소 직원이 우리 민족 역사의 뿌리인 단군을 신화가 아니냐고 묻다니요.

 저는 적어도 청와대 같은 곳에 일하는 사람이라면 바른 민족관, 국가관, 역사관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청와대 직원의 질문을 들었던 그 순간, 왜 동북공정이 일어났고 우리 사회가 얼을 잃어버린 채 이렇게 피폐해졌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나도 안 지키는 내 역사를 누가 빼앗아 간다고 한들 할 말이 없겠더라구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지 않았다면, 청와대 검문소 직원이 그에게 '단군이 신화 아니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 처장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런 사회 문제는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해줄 줄 알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우리 정신과 역사가 홀대받는 현실을 보고 나니 국학운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국학원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대한민국이 얼을 찾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정영일 처장은 국학 활동가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그는 수도권을 주름 잡는 웃음명상트레이너로 학생들부터 군인, 어르신들까지 웃음과 힐링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강의하는 명강사다. 뿐만 아니라 브레인트레이너로, 또 은평구 국학평화봉사단 회장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눈코 뜰 새가 없다는 말이 딱이다 싶다.

 정 처장이 이렇게 다양한 직책을 갖고 활동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국학을 전하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 정영일 사무처장은 브레인트레이너, 웃음트레이너로 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 처장은 지난 4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제1회 브레인엑스포'에 발표자로 참석했다. 정 처장은 이날 포럼에서 '웃음 명상-세상을 바꾸는 힘'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박한유 객원기자]

 "국학원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인 선도문화를 복원하고 현실에 맞게 재창조해서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연구, 교육하는 단체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물론이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모든 분야를 다 담을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이 국학원입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 곧 국학이죠. 에너지를 정확하게 써야 합니다. 자기 꿈이 뭔지, 항상 정확하게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정 처장의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1년 안에 그가 사무처장으로 있는 은평국학원에서 1,000명의 회원을 조직화하는 것, 홍익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지역 문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정 처장은 인구 60만 명의 은평구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또 기획하고 있다.

 "서울은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강한 도시죠. 그런데 개인에서 공동체로 그 문화를 잘 이동시키면, 또 얼마든지 무한한 가능성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곳도 서울입니다. 저는 분열된 사회에서 국학이 연결고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국학 활동하면서도 환경이 참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홍익'의 마음을 갖고 싶어하고 자신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한다는 것, 국학을 원한다는 것을 체험해요."

 정영일 사무처장처럼 설령 남들보다 더 높은 연봉에 더 넓은 집에 더 좋은 차를 타지 못하더라도 행복하다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다.

 "저의 원동력은 바로 국학원을 설립하신 일지 이승헌 총장님입니다. 저는 이 총장님을 제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는데요, 그분은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린다'는 마음으로 목표한 모든 일을 이뤄오셨죠. 그 길을 저도 따라가는 중이에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겠죠. 하지만 '국학'은 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니까요. 은평국학원, 서울국학원, 그리고 전국국학원의 많은 분들이 계시죠. '홍익'이라는 그 뜻을 보고 함께 가는 길이기에 오늘도 기운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