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올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의 연해주, 사할린에서 한민족이 전승하고 있는 무형유산의 현황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와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하여 오는 16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독립국가연합(CIS) 고려인 공동체 무형유산 전승실태 연구 성과 발표회’를 개최한다. 

이번 발표회를 통해서 처음 공개되는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아리랑 가무단’의 공연 영상자료는 소비에트연방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인의 무형유산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와 북한의 예술 교류 흔적을 알 수 있는 영상으로 무용가 최승희의 자녀 안성희의 장구 춤, 월북한 신민요 가수 왕수복의 아리랑 독창 영상 등 1950년대와 60년대 북한 공연예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도 함께 공개된다.

 1860년대 이후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던 고려인들은 다시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이후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전통문화를 가꾸어 나갔다. 그러나 이들 고려인도 현지 문화와 교류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문화를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번 발표회를 통하여 소개되는 고려인의 생활문화와 예술관련 자료들은 자료적 가치를 넘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또 하나의 우리 무형유산이라고 할만하다.

 이번 발표회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와 사단법인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여 진행된다. 발표에 앞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고려인이 공연한 모습을 촬영한 영상자료(카자흐스탄 영상물기록보존소 소장)가 소개될 예정이다.

이날 발표하는 연구 내용을 요약한다.

 <고려인사회의 전통공연예술: 고려극장과 소인예술단> - 임영상(한국외국어대)


 150년의 역사를 준비하고 있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고려인동포사회가 한국사회에 묻고 그 대답을 구하는 최대 화두는 무엇인가? 러시아 연해주 시절부터 우리 한민족은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신문(<고려일보>의 전신 <선봉>, 1923년)과 극단(‘고려극장’의 전신 ‘원동변강조선극장’, 1932년)을 만들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이후에도 고려인사회의 문화중심을 이루어왔다. 특별히 중앙아시아 고려인사회에서 세대를 거치면서 한민족 전통공연예술을 지켜온 고려극장과, 또 고려극장의 배우와 극작가를 배출해온 소인예술단의 역사는 한민족 전통문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개혁개방과 소련의 해체 이후 한국사회와 교류·협력이 이루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해외 전승 한민족의 무형문화의 정수로써 고려극장과 소인예술단의 존재가치와 자료수집 및 활용방안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구전설화의 수집 성과에 대하여> - 이복규(서경대)

그간 수집된 중앙아시아 고려인 구전설화는 제1차 수집분이 90편, 제2차 수집분이 67편으로서, 도합 147편이다. 한반도의 구전설화와 비교해서 가장 다른 점은 한반도 지명전설이 없는 점이다. 한반도를 떠나 사는 데서 말미암은 결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어머니를 용서한 아들' 이야기를 비롯한 일련의 이야기에서는 고려인 특유의 '버려짐' 또는 '제거당하기'란 트라우마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같은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 대상을 용서하겠다는 정신 및 주체적인 정신은 여러 가지 모습의 대립과 갈등이 상존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높은 정신 자세가 아닐까 한다.

한편 가장 비중이 높은 유형은, "바르고 그르기" 유형인데 이는 한반도 구전설화와 동일한 양상이라서, 한민족으로서의 가치관적 공통점을 확인하게 한다. 그간 수집된 147편 설화 자료 하나 하나가 가지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반도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계속 연구해, 한민족간의 문화적 교류와 통합의 자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카자흐스탄·키르기즈스탄 고려인 사회와 무형문화유산> - 강현모(한남대), 이병조(한국외대)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에 있는 고려인의 무형문화유산은 아직도 많이 전승되고 있다. 이번에 조사한 무형문화유산의 자료는 카자흐스탄에서 294편, 키르키즈스탄에서 256편이다. 이들 자료들은 지역별로 중복된 것도 있고, 기억이 일천하여 표상적인 내용만 전승되는 것도 있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삶의 궤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즉 고려인들은 강제 이주된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자연환경과 소비에트 사회적 구조적 질서에서 민족문화유산을 나름대로 유지하여 왔다. 지역의 보편 음식으로 국수를 만들었으며, 민간신앙이나 일생의례들은 변형되었지만 나름대로 전통을 지켜왔다. 또 세시풍속도 기후와 계절적 차이가 있지만, 시기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반면에 공예 분야의 전승은 거의 단절된 실정이다. 조사된 무형문화유산들은 지역별로, 제보자별로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고려인 사회에서 고려말〔언어〕의 단절은 전통문화유산의 전승이 설 자리를 잃어 단절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고려인들의 전통무형문화유산이 한민족 문화로서의 공통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전승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된 무형문화유산의 자료 가치는 한반도 자료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한민족간의 문화적 교류와 통합의 자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러시아 고려인 사회와 무형문화유산> - 안상경(충북대), 이병조(한국외대)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연해주의 고려인 및 러시아 사할린의 한인들은 각기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삶의 근간에 공히 한민족의 무형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물론 삶의 공간으로서 기후나 지리, 어떤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서 한민족의 무형문화유산이 변형 또는 단절되었지만, 그 기억을 쫓다보면 결국 100여 년 전에 우리 땅에서 전승되었던 우리 무형문화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의 ‘전통적 공연예술(연행)’ 분야를 통해 볼 때, 여성기념일(양력 3월 8일), 큰전쟁해방된날(양력 5월 9일), 러시아10월혁명기념일(양력 11월 7일) 등 전혀 새로운 날에 로시아춤(러시아춤), 우즈벡춤(우즈베키스탄춤)을 추기도 하지만, 그 날에 부채춤, 북춤, 고리춤과 같은 한민족다운 춤도 추고 있다. 설(양력 1월 1일)이나 단오(음력 5월 5일)를 기해서는 고려인들이 한데 모여 우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우리 노래를 부르며, 우리 춤을 춘다. 그 뿐만 아니라 러시아 사할린의 한인 사회에서는 성주신앙, 터주신앙, 삼신신앙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점치는 사람’을 통해 무속신앙마저 전승되고 있다.

이제는 감성적인 차원에서 저 먼 땅에 우리의 고려인과 한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삶의 근간에 남아 있는 무형문화유산의 실체 파악 및 보존과 계승 방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