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원장 서영수)은 9일 단국대 죽전캠퍼스 인문관 210호 소극장에서 '동아시아 철기문화와 고조선'을 주제로 제42회 동양학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서영수 동양학연구원장은 ‘고조선사 연구의 쟁점’이라는 주제로 “고조선은 세계의 유수한 고대 문명국가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아사달阿斯達’로 불린 초기初期 국가國家로부터 출발하여 진한秦漢 등 중원의 통일제국統一帝國과 정면으로 맞섰던 ‘대고조선왕국大古朝鮮王國’ 시대로 발전한 생동하는 구체적인 실체”라고 말했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원장 서영수)은 9일 단국대 죽전캠퍼스 인문관 210호 소극장에서 '동아시아 철기문화와 고조선'을 주제로 제42회 동양학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종합토론하는 모습.

서 원장은 고조선의 역사를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감안해 ‘선고조선시대-고조선 왕국(초기,중기,후기)시대-후(위만)조선 시대’로 체계화해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철기문화가 수용되던 시기에 위만조선이 성립되는데, 위만조선을 세운 만왕(위만)은 연 나라 출신의 망명객이 아니라 요동지역에서 상당한 정치세력을 형성한 고조선계 인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위만조선을 중국의 식민지 정권으로 봤던 일본학계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발표문에서  󰡔사기󰡕의 ‘조선왕 만滿은 고연인故燕人이다.’의 사료에 나오는 ‘고故’자는 원래 古(옛)와 본本(본래)의 뜻이 있으나 사기에서는 ‘옛(古)’의 뜻으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만왕은 전국시대 연이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후퇴하였던 요동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인물로 ‘고연인故燕人’이란 사마천이 한漢 위국侯國의 연인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 발표하는 오강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서 원장은 “한국의 철기시대를 상징하는 세죽리-연화보 유형의 물질문화가 이들(위만조선)의 세력 기반이 아닐까 생각된다”며 “위만조선은 어느 정도 관료제를 갖춘 국가로 사기의 표현 그대로 방 수천리(方數千里)의 대국으로 한제국과 맞섰던 나라로 그 위상이 재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표자로 나선 오강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청동기-철기시대 요녕·서북한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고조선‘을 주제로 기원전 6-4세기 요령 지역에 두 개의 고조선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요동 지역과 요서 지역에 각각 연맹체를 구성한 '요동 고조선'과 '요서 고조선'이 존재했으며 두 고조선은 상호 교류하면서 경쟁 관계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고조선이 기원전 3세기 초 연나라와 갈등을 빚다가 전쟁을 벌이게 됐다”며 “이 전쟁으로 요동 고조선도 갈등에 휘말리게 되면서 요서 고조선은 연나라에 편입되고 요동 고조선은 영역 축소와 함께 평양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 발표하는 박선미 서울시립대 박사
박선미 서울시립대학교 박사는 ‘위만조선의 고고학적 문화 일고一考’를 주제로 기원전 2세기와 그 전후 평양 일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분석해 위만조선이 고조선계 토착계와 연ㆍ제ㆍ조의 중국계 이주민으로 구성된 다종족(multy-ethnic groups) 국가였다고 밝혔다.

위만조선 시기 평양 일대에는 토광직장묘, 토광목관묘 토곽목곽묘 등이 조영되고 있었고 세형동검, 동모, 동과를 위주로 하는 세형동검문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진과나 방울류 등의 외래 청동기가 첨가되고 검ㆍ도끼ㆍ끌 등의 철기도 다수 부장되고 있었다.

박 박사는 “특히 철기에서는 도끼, 끌, 낫 등의 농공구류가 장검 및 단검 등의 무기류보다 양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점이 확인된다”며 “토기는 화분형토기와 배부른단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토착계 토기문화를 보여주고 있었고, 교역으로 들어왔을 옥ㆍ유리ㆍ수정제 장신구가 상대적으로 다수 부장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기원전 2세기 대 평양 일대에 있었던 정치체(위만조선)가 이전의 세형동검문화를 계승하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발표하는 이청규 영남대 교수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남한의 초기 철기문화에 대한 몇 가지 논의’를 주제로 기원전 3~2세기 후기 고조선과 위만조선이 북부지역에 있을 때 한반도 남부에 고고학적으로 입증되는 정치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했다. 당대의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름이 어떠하든 남한의 여러 정치체가 고조선과 교류했다고 고고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는 “남한지역에서 남성리군을 담당하는 적석목관묘 사회는 생업 중심의 대내적 혈연적 공동협력체제에 그 의존도가 높은 종전의 지석묘사회와는 전혀 다르다”며 “대외적인 갈등을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첨단기술을 보유한 위계적인 조직체제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이종수 단국대 교수는 ‘송화강 유역 초기 철기문화와 부여의 성립 과정 고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중국, 몽골, 일본, 러시아 학자들은 한국의 고대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 동북지역, 일본, 러시아 연해주·두만강유역, 몽골 초원의 철기문화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을 보면 중국 동북 지역내 연진한燕秦漢 장성長成과 초기 철기시대 문화(주영강, 중국ㆍ길림대학변경고고연구센터), 하노이(Khanui) 강 계곡에서 발견한 초기 철기 시대의 고고학 유물들(에르텐바타르 몽골 국립울란바타르대), 일본 초기철기문화의 특질-야요이시대 야금(冶金)없는 금속문화(무라카미 야스유키(村上恭通) 에히메대학 동아시아 고대철문화연구센타·법문학부), 연해주의 철기시대 문화(Vostretsov Yury, 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고고민족학연구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