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동양학연구원에서 만난 서영수 원장은 고조선 역사는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고조선 유물에서 벗어나 공항이나 가까운 곳에 전시관을 마련하고 교양강좌 등을 통해 국민과 만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홍산문화에서 발전된 하가점 하층문화를 통해 고조선 이전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한국사의 시원을 고조선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환웅족과 연결해서 보다 폭넓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서영수 동양학연구원장

■ 고조선 이전의 역사, ‘환웅족’의 실체

- 홍산문화의 발견으로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는 주장이 많아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고인돌이 나왔다고 우리 민족이 여기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다. 인과(因果)를 증명해야 된다. 홍산문화가 우리와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자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많은 책이 나오고 관심도 높지 않은가?

“하가점 하층문화의 경우에도 석성이 나오는데 그것을 고구려와 연결시켜 보더라. 1500년의 시공(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뛰어넘나? 그런 고리를 아직까지 찾지는 못했다.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역사가 상상과 다른 것이다. 심증은 여러 가지 있지만 증거를 제시해야 된다.”

- 우하량 여신도 마찬가지인가?

“접근을 잘해야 한다. (홍산문화에 나오는) 그 모두를 우리 것으로 보면 좁혀진다. 우하량 여신이 있고 웅녀 여신이 따로 있다고 해야 풍부해진다. 이것도 저것도 웅녀다? 부여의 곰나루도 웅녀인가?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웅녀로만 살았나?(웃음)”

-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에서 하가점 하층문화를 환웅족으로 본다고 했다.

“하가점은 마을이름이다. 하가점에서 발굴된 문화유적을 보면 홍산 토기가 가장 밑에 있고 하가점 하층과 문화적으로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하가점 상층과 하층은 문화적으로 이질적이다. 하가점 하층문화 붕괴시기와 요서 요동에 청동기문화가 확산된 시기는 단군신화에서 환웅족이 내려온 시기와 맞다. 이때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선진문화와 곰을 숭배하는 토착문화가 결합한 것으로 고고학 현상과도 일치한다.”

■ 동북아역사재단이 중요하다는데, 독립된 ‘건물’도 없다!

- 고조선에 대한 관심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오면 고구려 후손인지 고조선 후손인지 어떻게 아느냐? 국민도 모른다. 우리 역사를 국내외에 알려야 한다. 박물관에 있는 유물 몇 점 가지고는 안 된다.”

- 학술논문도 있지 않은가?

“교수들의 논문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 논문을 누가 봅니까? 현장이 있어야 한다. 학자들은 돈을 주지 않아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 아침에 안 되고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 동북아역사재단도 있지 않은가?

“고구려연구재단이 없어지고 동북아역사재단이 생겼다. 예산도 많이 축소되고 중요한 기관이라는데 독립된 건물도 없다.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가 고구려 박물관을 짓는다고 할 때 둘이 합해서 잘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두 곳 다 취소됐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두사미(龍頭蛇尾)다. 국가에서 신경쓰지 않으면 못한다. 민간기관에서 무슨 돈으로 하느냐? 중국은 바로 하지 않냐?”

- 전시관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여기에 고대 유물이 없으니까 더욱 필요하다. 없으면 복사라도 해서 가져와야 한다.”

- (그런 점에서) 독도기념관은 바로 만들었다.

“고구려는 여기 없으니까 그렇다. 백제나 가야는 국가가 안 해도 지역에서 하더라. 고구려는 말만 해놓고 아무것도 없다. 박물관도 고조선실이 없었다.”

▲ 서영수 동양학연구원장은 홍산문화에서 발전된 하가점 하층문화를 통해 환웅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동북공정, 통일한국을 대비한 ‘프로젝트’

- 최근 만리장성 공정까지 중국의 역사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과 우리는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 중국은 땅의 역사다. 우리는 사람의 역사다. 미국도 땅으로 본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국적을 준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일어난 역사를 땅으로 본다. 터키와 우리나라는 땅의 역사로 볼 수 없다. 터키 반도의 역사는 오늘날 터키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다.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옛날 여기 살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인도 인류학적으로 50%이상 북쪽에 살았다.”

- 그런 점에서 동북공정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동북공정의 주요 테마는 고대부터 조선, 청대까지 다 있다. 우리는 고구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나라 때 조선과의 국경 문제 등 후반부가 더 많다. 앞으로 통일한국을 대비해 일어나지 않을 일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관심이 없다.”

- 한국이 고구려연구재단을 세울 때, 중국은 이미 고구려를 넘어 고조선을 연구했다는데?

“고구려를 부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중국이 고조선의 뿌리인 고구려를 연구하는 이유는, 역으로 고구려가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에서 세운 나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조선이 기자가 와서 만들었다고 하면 당연히 그 옛 땅을 회복하고 다스린 고구려도 중국이 된다는 논리다. 강력한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조선 역사를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다.”

■ 고조선보다 청동기 학자가 많은 이유?

▲ <고조선사 연구 100년> 책을 들고 있는 서영수 동양학연구원장

- 국립중앙박물관은 예전에 고조선실이 없었다.

“우리의 역사가 잘못된 것은 한반도 남부 기준으로 역사를 편년한 것이다. 그러니깐 고조선은 없는 것이다. 눈으로 안 보이니깐 실감을 못한다. 역사의 범위를 요동으로 확대하면 고조선실이 생긴다. 중심지를 잡고 거꾸로 생각해야 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하상주실은 없고 청동기실만 있나? 그런 것은 아니다.”

- 고조선실에 들어가 보니 ‘요령식동검’이라고 되어있던데?

“요령식동검이라고 쓰면 안 된다. 고조선식 동검이라고 해야 된다. 그런 것이 역사의 무대에서 고조선의 중심지들이 벗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고조선사가 소홀히 취급될 수밖에 없다.”

- 학계는 어떻게 보나?

“고고학계에는 고조선이 실체가 없다고 본다. 청동기 학회 회원은 굉장히 많다. 고조선 학회는 거의 없다. 역사연구의 체계가 잘못된 것이다. 중심체를 잡아야 한다.”

- 재야나 일반인들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해소해주지 못해서 그렇다. 연구자가 적은 이유도 있고, 역사의 현장이 여기에 없고 북한이나 중국에 있다. 북한은 갈수도 없고, 중국은 직접 발굴도 못하고 피상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거기에 관련된 학자를 불러도 오지도 않는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조명할만한 분위기도 되어있지 않다. 홍산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제대로 연구한 사람은 없다. 고조선에 관한 전문 연구자는 10명 정도이다.”

- 그렇다면 고조선 연구는 어떻게 보는가?

“뭉뚱그려서 모든 것이 고조선의 역사라고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아니면 현실에 안주했다고나 할까? 그나마 고고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고조선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맙다. 고조선연구회에 젊은 연구자들이 우리와 달리 엄밀하게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전망이 밝다고 본다.”

■ 서영수 원장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문학박사
단국대 사학과 교수, 고조선사연구회장, 동양학연구원장

'고조선의 국가형성 계기와 과정'(2005)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과 우리의 대응', <광개토왕이 중국인이라고>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공저)> 등 주요 논문 및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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