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전 화폐를 보면 고조선이 보인다!
명도전 화폐를 보면 고조선이 보인다!
  • 윤관동 기자
  • kaebin@ikoreanspirit.com
  • 승인 2012.10.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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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서[4]

#코리안스피릿 특별연재-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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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전 화폐, 고조선 VS 연나라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가 노비로 삼는다.
단 스스로 면하려면 1사람 당 50만 전(錢)을 내야 한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고조선 8개의 조목 중에 현재 알려진 3조목에 해당하는 법률이다. 이 가운데 도둑질을 했는데 죄를 면하고자 하는 자는 50만전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바로 고조선의 활발한 상업과 대외무역을 증거하는 '화폐'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 실에 들어가 보면 여러 청동유물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명도전明刀錢'이라는 화폐다.

이 화폐에 대해서 국사학계는 '전국시대 연나라(기원전 323-222년)에서 만들어진 청동제 화폐'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고조선실에 전시된 '명도전'(=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불과 100년간 존속했던 연나라 화폐를 당시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던 적대국가 고조선에서 통용되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명도전은 표면에 '명明'자 비슷한 글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은 일본 학자가 붙였고, 연나라 화폐라고 규정한 것은 중국 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연나라의 국경이 압록강까지 이르렀고 만주지역 대부분이 연나라의 영토였다는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칼 모양의 이 화폐는 내몽고 적봉에서부터 대릉하 상류의 요양은 물론 평북 영변군 세죽리, 평북 위원군 용연동 등 한반도 북부에서도 수백, 수천 점씩 대규모로 출토된다.

이에 대해 <고조선, 사라진 역사>의 저자 성삼제는 “고조선과 연은 전쟁을 치뤘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물자를 조달해야 하는데, 고조선이 전쟁 중인 연나라의 화폐를 받고 물자를 공급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화폐 이론에 비춰봐도 고조선 지역에서 발굴되는 막대한 양의 청동화폐가 연나라의 화폐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의문을 달았다.

그는 "고조선은 청동검, 청동거울 등 다른 고대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청동기 기술과 문화를 가진 나라가 화폐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다"라고 덧붙였다.

명도전에 대한 연구는 지난 2000년 박선미 연구원이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 ' <기원전 3-2세기 고조선 문화와 명도전 유적>'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논문은 명도전 유적 분포와 러시아 학자 유 엠 부찐이 그린 '조선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명도전 출토 지역분포도(박선미,'기원전 3-2세기 고조선 문화와 명도전 유적', 2000년)

이어 중국 길림대학 역사학과 장박천(張博泉) 교수는 2004년 <북방문물北方文物) 학술지에 <명도전연구속설>이라는 주제로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무렵까지 만주 지역에는 3종의 화폐가 있었다. 즉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가 그것이다. 첨수도는 끝이 뾰족한 것이고 원절식은 화폐를 묶기 위해 구멍을 원으로 낸 것, 방절식은 구멍이 사각형으로 된 것을 말한다. 이들 화폐 가운데 첨수도는 고죽 또는 기자고 관련 족의 화폐이고 원절식은 (고)조선의 화폐이며 방절식은 연나라 화폐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많은 명도전이 원절식이고 실제 국사 교과서에 실린 명도전 사진도 손잡이 가운데가 동그랗다.

그러나 2005년도에 성삼제가 펴낸 <고조선, 사라진 역사> 이후 명도전에 관한 고고학적인 성과는 답보상태다. 그가 "고조선 영토에서 출토되는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다라는 명제가 참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단지 명도전이라는 청동화폐에 새겨진 여러 가지 글자와 문양에 대해 중국 학자들이 해독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역사저술가 허대동은 그의 저서 <고조선 문자(2011년)>에서 명도전 화폐에 새겨진 문자는 고조선 문자라고 주장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찬구 철학박사는 3년간의 연구 끝에 펴낸 <돈(2012년)>을 통해 고대의 유물인 첨수도(尖首刀)에서 한글로 보이는 두 글자인 '돈'과 '노'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을 한글의 기원으로 본다면 중국 갑골문자 3500년 못지않은 역사로 소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본보 7월 13일자 기사 바로가기 클릭) 

중국인의 고조선 대거 이주, 왜?

고조선은 수준 높은 청동기 문화와 대외무역을 통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기> <화식열전>에 의하면 연나라는 예, 맥, 조선, 진번과의 교역을 통해 이익을 관장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조선) 부왕이 죽자 그 아들 준왕이 즉위한 후 20여 년이 지나 중국에서 진승과 항우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 제 조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차츰차츰 준에게 망명함으로 준은 이들을 서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 삼국지, 위서동이전, ‘한조’

진나라 말기 전쟁에 시달리던 중국 백성들은 대거 고조선으로 피난을 왔다는 기록 또한 고조선의 경제생활이 풍족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는 ‘고조선기에 만들어진 한민족의 이념에 대하여(2012년)’라는 논문을 통해 중국세력들이 끊임없이 고조선 지역인 만주로 대거 이동했다고 주장했다.(본보 7월 26일자 기사 바로가기 클릭) 

고조선을 건국한 민족은 맥족(貊族)이 주축이었으며, 이 맥족에 대해 황하유역에 살던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의 전국시대 정치가 중에 백규(白圭)란 사람이 자기 나라의 세법(稅法)을 고치는데 5% 세법을 제시한다. 여기에 대하여 맹자(孟子)는 매우 불쾌하게 얘기를 하면서 그것은 맥국(貉國)의 세법이라 힐난하면서 맥국의 국가 시스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때 맹자는 맥국은 아무것도 없는 나라이고 조상에 대한 제사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5% 세법으로 되지만 위나라나 황하유역국가들은 모든 것이 제대로 된 나라이기 때문에 세금을 적게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맹자가 사는 곳은 철저한 조직의 통치를 받는 곳이고  맥족이 다스리는 나라는 철저한 행정조직보다는 인화(人和)를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백규는 인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맥국의 세제를 따르려 하는 것이다.

복 교수는 “역사기록을 보면 전국시대 말고도 그 후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서한(西漢) 때의 위만(衛滿)세력도 그런 예라고 볼 수 있다”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황하유역사람들이 살던 곳은 경제적으로는 살기 좋았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나 정치제도에서는 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살기 편한 지역으로 이동했던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강인욱 부경대 교수는 한국고대사학회 학회지인 ‘한국고대사연구’ 최신호에 고조선은 모피무역의 중심지였다고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 2012년 우수논문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강 교수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치가인 관중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 ‘관자’(管子)에 등장하는 문피(文皮. 호랑이와 같은 얼룩무늬 맹수의 가죽) 기록, 동물뼈와 고대 화폐 명도전 출토 지역 등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고조선이 모피무역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해냈다.

강 교수는 동물뼈 자료를 분석해 모피류 동물이 현재의 산지인 백두산 일대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압록강 중상류 지역에 널리 분포했음을 밝혀냈다.

또한 압록강 중상류 일대에서 발굴된 명도전 출토 유적을 모피무역과 관련된 중계무역의 증거물로 제시했다.

5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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