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축제가 있다. 바로 브라질의 리우 쌈바 카니발, 독일의 옥토버페스티벌, 일본의 삿포로 눈꽃 축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축제가 넘쳐난다. 머드, 나비, 연등, 인삼, 젓갈 모래 등등 그 종류도, 주최하는 도시도 다양하다. 1년 365일 쉬지않고 열리는 축제 수가 수백 개에 달하니 이쯤되면 축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단군상 훼손 사건이 일어났던 1999년(단기 4332년) 개천 축제는 그야말로 '단군'이 주인공이었다. 단군 복장을 한 여섯 명의 단군 사절단이 1999년 개천 축제의 최고 인기인이었다.

 과거 우리민족은 어떤 축제를 즐겼을까. 《삼국지(三國志)》의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에 따르면 "정월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때는 형벌과 옥사를 판결하고 죄수들을 풀어준다"고 서술하였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삼한의 시월제(十月祭)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추수가 끝난 10월 초에 열린 축제라는 것이다. (영고는 수렵생활을 하는 부여의 풍습에 따라 10월이 아닌 12월에 열렸다)

 고대국가들이 10월 상달에 치렀다는 축제를 통해 한 가지 공통점을 더 찾을 수 있다. 하늘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사를 올리고 며칠을 춤추며 놀았다는 민족의 잔치, 바로 국조 단군이 나라를 세운 ‘개천(開天)'을 축하하는 민족 대축제였던 것이다.

 개천에 대한 마음은 나라를 잃은 대일항쟁기에는 민족을 지키기 위한 염원을 담아 중국 땅에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통해 ‘건국기념일’로 명맥을 이어가기에 이른다. 인간공동체인 신시(神市)를 열고 첫 국가인 고조선을 건설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됨을 의미한 것이다. 이후 나라는 찾았지만 급격히 밀려든 외래 문화와 외래 종교에 의해 개천절은 어느새 달력 속 붉은색 숫자로만 남게 되었다.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축제로 삼고 삼일절과 광복절에는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석하지만 개천절은 아는 이들만이 찾아 하늘에 마음을 올리는 그런 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 1987년 9월 26일에는 성조단군숭봉국민대회가 열렸다. (제공=국학원)

 국학원을 창립한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 총장은 우리의 개천절을 민족의 큰 축제로 되찾고자 1987년 당시 홍익문화운동연합 회원들과 함께 나섰다. 매년 거르지 않고 잔치를 연 지도 올해로 26해째를 맞이했다. 우리 민족의 생일이자 역사의 시작점인 개천절은 어느새 국민 축제를 넘어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시작은 신문 기사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서울시가 88올림픽을 앞둔 1985년 사직공원 내에 국조 단군성전을 신축하려하자 일부 기독교 단체가 극렬히 반대했고 결국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이승헌 총장은 사재를 털어 1987년 8월 25일 안호상 박사 등 민족 원로들과 함께 ‘민족정신광복운동본부 창립총회’를 열었다. 9월 26일에는 ‘성조단군숭봉국민대회’를 개최하고, 10월에는 강화도 마리산을 찾아 천제를 올리고 개천절 행사를 열었다. 국민 대축제의 시작이었다.

▲ 1992년 개천절은 축제와 함께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어 국민들은 물론 학계에서도 개천과 단군을 다시 부각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제공=국학원)

 매년 놓치지 않고 개천절이 되면 강화도 마리산에 오른 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개천절 행사와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서울 올림픽공원, 천안 독립기념관, 대전 엑스포공원 등 사람이 모일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잔치판을 벌였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언론에서도 민간이 주도한 개천절 축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이 모이면 하늘에 닿는 법이다. 1996년 대전 MBC와 공동으로 개최해 1만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개천절한문화국민축제’를 시작으로 개천절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에는 369기의 통일기원 국조단군상이 건립되었다. 민족의 구심인 국조 단군이 온 국토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 개천절 행사부터는 규모는 물론이고 행사 내용에서도 이전과 달라졌다. 한문화운동본부가 주축이 되어 마련한 ‘4333 개천한민족대축제’에는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당시 영부인(現 미 국방장관)이 축전을 보내는가 하면 각국에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와 사절단이 행사에 참여했다. 명실공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이 이 땅을 넘어 전 세계에서 실현된 것이다.

▲ '2002 세계지구인축제'가 단기 4335년 개천철을 맞아 10월 3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10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대한민국이 붉은 물결로 들썩였던 2002년 개천절에는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전국에서 10만여 명이 참석한 ‘개천절 경축 2002 지구인 축제’를 열었다. 2002년 개천절부터 세계지구인연합(WEHA)이 행사를 후원하면서 개천절은 대한민국만의 축제가 아닌, 전 지구인의 축제로 거듭나게 된다. 그 해 미국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힐링소사이어티>의 저자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이승헌 총장(당시 세계지구인축제 공동대회장)은 “홍익인간 정신이 곧 인간사랑 지구사랑”이라고 전했다. 이때부터는 개천 행사 참가자의 구성도 글로벌화되었다. 가까이 일본부터 멀리 미국과 유럽에서도 한민족의 개천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개천절에 맞춰 ‘제2회 세계 지구인 축제’가 충남 천안 국학원에서 열렸다. 미국 일본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 8개국 1천여 명의 외국 축하사절단을 포함한 1만여 명이 참석했다. 무엇보다 2008년 개천 행사는 지상 21m 규모의 국내 최대 국조단군상이 세워진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개원식이 함께 열려 그 의미가 더했다.

 

 국민 축제로서의 개천절은 2011년 ‘제4회 으라차차 코리아-코리안스피릿 페스티벌’을 통해 방점을 찍는다. 전 세계 8개국 1천여 명의 외국 참가자들을 포함해 전국에서 10만여 명의 국민이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김창환 조직위원장은 “개천절은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만인이 행복한 복지국가, 고조선이 개국한 날”이라며 “개천절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온 국민과 세계인이 함께 축하하는 한민족의 생일잔치”라고 전했다.

 2012년 국민축제 개천절은 ‘제5회 으라차차 코리아-홍익대한민국 대축전’을 타이틀로 개천 당일에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행사를 개최한 뒤 10월 6일 충남 천안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서 전국 축제가 개최된다. 주제는 ‘힐링(Healing)‘이다. 개인의 힐링이 가족, 사회, 나아가 국가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듯, 민족의 구심점이 되는 ‘홍익인간’ 정신을 바로 세움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이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개천(開天)’을 두고 하늘이 열린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좀 더 깊은 뜻을 갖고 있다. 한민족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따르면 이는 ‘모든 사람의 뇌에는 이미 하늘이 내려와 있다’는 뜻의 ‘강재이뇌신(降在爾腦神)’ 사상이 있다. 개천이란 보이지 않는 하늘인 사람의 마음을 열어 환하게 비춘다는 말이다.

 개천절은 개천, 즉 마음을 열어 환히 비추는 날이다. 나를 개천하고 주변 사람들과 개천하며 하나가 되는 날, 더 나아가 사회와 사회, 나라와 나라가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나와 민족과 인류를 두루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을 이 땅에 펼치는 축제의 날이다. 비록 아직은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나라와 나라가 싸우고 있지만, 단군의 정신이 담긴 개천절이 진정한 인류의 축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되는 날이 올 것이다.